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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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앞에서 초연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세상에 대한 미련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걱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려 하지만 결국은 어쩔 수 없이 죽음과 계속 가까워지는 삶을 살고 있다. 좀머씨.. 그는 죽음을 두려워했을까? 아니면 죽음을 향해 계속 달려간 것일까.

한 순수한 소년의 눈에 비친 좀머씨는 이상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걷기 시작하여 밤늦도록 계속 걷는다. 비가 오나 눈이오나 변하는 건 옷차림뿐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왜 그렇게 걸어야만 하는가.

소년은 그 이유를 자신이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 깨닫는다. 세상과 결별을 선언하며 오른 나무위에서 그는 좀머씨의 모습을 보게 된다. 주위를 부산하게 살피며 고양이를 피해온 쥐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그를 보며 소년은 죽음과 좀머씨와의 관계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소년은 다시 나무에서 내려오게 된다. 죽음을 포기한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소년은 다시 좀머씨를 보게 된다. 호수로 점점 빠져드는 그의 마지막 모습을 말이다. 좀머씨를 말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소년은 지켜보고만 있다. 아마도 좀머씨를 붙잡지 말아야겠다고 느꼈으리라. 그만큼 소년은 성장해 있었던 것일까..

참 짧은 이야기의 책이다. 좀머씨의 이야기 많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 난 읽은 시간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죽음과 삶, 세상과 나, 이 두 관계를 고민할 수 있었다.

난 스스로 내가 죽음을 두려워 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늘 죽음앞에서 초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죽음을 마치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난 죽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아마 난 죽음에 직면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그런 교만한 생각을 해왔었던 거 같다. 절실한 죽음에 대한 공포와 슬픔앞에서도 내가 초연할 수 있을까? 난 그만큼 오늘을 떳떳하게 살고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게 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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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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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처음인 거 같다. 여기에 마이 리뷰를 쓰기 시작한 이후로 말이다. 그래서 인지 더욱 흥미로웠고 짜릿했다. 소설 내용이 그래서 일까... 주인공 그르누이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체취가 없다. 그래서 일까? 그는 이세상 누구보다도 다른 냄새를 잘 맡고 기억할 수 있는 냄새의 천재이다. 그가 세상을 보는 창은 냄새인 것이다. 그는 냄새를 통해 사물을 인식하고, 냄새를 통해 사람을 안다.

자신이 냄새의 천재임을 인식하면서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 향기를 맡으면 누구나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그런 향수를 만들고자 했다. 아마도 그르누이 자신이 그런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해서 일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이야기 전반을 통해서 세번의 오싹한 긴장감을 느꼈다. 이걸 이야기 하면 아마도 스릴러 영화의 결과를 말하는 것이리라.

그르누이는 사랑받고 싶었으리라. 단 한번도 부모의 정, 형제의 정, 친구의 정을 느껴보지 못한 그는 사랑이 무엇인지, 따뜻함이 무엇인지 모른 채, 그런 것을 가진 사람들의 냄새로 그것을 인식한다. 그러기에 그는 사랑을 할 줄 모른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오직 그런 사람이 내는 향기일 뿐이다. 그런 향기를 수집하고, 그런 향기를 얻기 위해 그는 무서운 집착을 보인다. 그것이 내가 느낀 첫 번째 긴장감이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사랑하게 만들었다. 무서운 집착으로 그는 그런 향기를 얻어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괴로워한다. 난 과연 사랑받고 있는 것인가란 질문이 그를 괴롭혔다. 세상 모든 사람이 그를 사랑하고 있는데 말이다. 세상이 사랑하는 자신이 누굴까란 생각에 이른 그는 결국 또다시 혼자가 되는 길을 택한다. 아마도 자신을 찾고 싶었으리라. 여기서 난 두 번째 긴장을 느꼈다. 그는 왜 사랑을 얻고도 자신을 잃어버렸을까..

세 번째 긴장은 말할 수조차 없는 짜릿함이다. 짜릿함은 잘못된 표현이다. 그는 결국 자신을 찾는다. 하지만 또다시 잃어버린다. 그르누이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신에게 냄새가 없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자신을 찾고 싶어했던 거 같다. 하지만 그의 그런 노력은 집착으로 드러난다. 결국 그는 자신을 찾지도 못한 채, 죽음에 이른다.

나는 내가 나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 나의 모습? 나의 주변사람들? 나의 인식? 나는 나의 모습으로 사랑받고 있으며, 나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사소하면서도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난 아마도 그것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난 그르누이와 같은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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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가 된 청소부 - 산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것
바바 하리 다스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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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과 초월한다는 것. 이것은 이 책의 부제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난 초월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과연 지은이가 말하는 초월함이 가치있는 것일까란 질문을 던졌다. 삶에서 초월한다는 것 그것은 과연 무엇에서 초월한다는 것인지, 그리고 초월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짧은 단편들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성자가 되는 길, 눈에 보이는 것의 속임수, 자신의 외부에서 신을 찾는 노력의 허무함, 인간의 욕심, 사회제도의 불합리 등등. 저자는 우리가 우리 외부에서 신을 찾는 노력이 얼마나 허무하고 실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 전편에서 계속 이야기 하고 있다.

신은 우리 안에 있다. 모든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최종적으로 자신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성자, 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성자가 된 청소부 자반은 자신이 저지를 죄를 갚기 위해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오히려 베풀면서 ‘청소’라는 천하지만 귀중한 일을 매일 해나간다.

하지만 결국 그것조차 어떤 집착임을 깨닫고 그 일 자체마저 내려놓는 순간 신이 되어 죽음을 맞이한다. 자반은 무엇인가를 쫒아가지 않았다. 그는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단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그 사회에 봉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청소를 그만두었을까. 그 질문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왜 청소를 그만두었는가.

난 솔직히 자반이 청소를 하고 있던 때가 더욱 아름다웠다. 그가 그 일을 내려놓는 순간, 자반도 결국은 하나의 인간임을, 그도 신이 될 수 없음을 느꼈다. 인간은 누구나 성자가 되고 싶어한다. 저자는 모든 것을 초월하고 비울 때 그 누구도 신이 됤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초월하는 순간, 그 빈자리에 무엇이 들어올지가 의문이다. 인간이 과연 그 빈자리를 아름답게 채울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비울려고 하는 것 자체가 집착이 아닐까. 다른 사람이 나를 성자라고 부르고 안 부르고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난 과연 나에게 솔직할 수 있는가.

인간의 삶은 계속된 집착의 연속인 것 같다. 단지 그것을 초월할려고 노력하는 집착보다는 내가 가진 집착을 선하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더 아름답고 힘든 일이 아닐까. 선하다는 기준을 논하고 싶진 않다. 단지 성자가 된 자반은 과연 성자가 되었는지가 의문스럽다. 그는 아무것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아무런 가치있는 일도 하지 못했다.

자반은 나에겐 성자로 보이지 못했다. 단지 그는 노력한 한 사람일 뿐.. 이 책은 나에게 성자가 되는 법을 가르쳤다기 보다는 ‘인간은 결국 성자가 될 수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오늘도 난 내가 하는 집착들이 선한가를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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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 나무에게서 배운 인생의 소금같은 지혜들
우종영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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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바라보는 필자의 깊은 사색을 느낄 수가 있었다. 필자는 한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나무를 관찰하고 치료하는 일들을 통해서 자신이 느꼈던 바들을 솔직하게 기술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몰랐었던 나무의 여러 속성들을 알 수 있었다. 또한 나무를 통해 배운 필자의 깊은 인생 지혜를 볼 수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산책과 등산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주변의 나무와 풀들에 그리 많은 시선을 주지는 않았다. 늘상 그렇게 있었기에, 늘 그렇게 변함없었기에.. 하지만 이 책을 다 읽은 후, 다음 날 산책을 할 때 나무는 나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나무에게 새롭게 다가갔다고 해야 하겠다.

그 나무들이 서있는 모습, 뻣어나간 줄기의 모양, 여러 나무가 함께 어루러진 모습들을 보면서 인간사가 나무보다 참 못하구나 한 생각이 들었다. 옆 나무에 피해가 없도록 틈새로 뻣어나간 가지모양을 보면서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만 하는 인간사가 안타까웠고, 여러 나무가 어루러진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공간을 오픈하지 못하고 높은 담을 쌓는 인간의 외로움이 씁쓸했다.

필자는 나무를 돌보면서 인내를 배웠고, 나무를 키우면서 육아를 배웠고, 보잘것 없는 나무를 보면서 존재의 소중함을 배웠다고 한다. 그렇게 살아가는 나무의 모습도 부러웠지만, 그런 나무를 보면서 인생의 지혜를 터득한 필자의 겸손과 안목에 더욱 감명을 받았다.

내가 나무처럼 살 수 있을지, 그리고 나무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인생이 뭔가 잘못되어감을 느낄 때, 적어도 한 번, 나무를 바라보고 물어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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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마이클 루스 지음, 이태하 옮김 / 청년정신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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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에 제목에 대해서 상당한 호기심을 가졌었다. 진화론과 창조론이 연합할 수 있을까 에서부터 기독교인이 다윈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란 생각까지 말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연도태를 통한 진화는 기본적인 과학사실로 인정하고 책을 시작한다. 그래서 진화론을 바탕으로 기독교의 기본 교리들 (창조에 관한 부분을 제하고)을 나름대로 해석한다.

인간, 인간의 정신, 영혼, 원죄, 성경의 해석 등 첨예한 대립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까지 솔직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 부분들을 진화론을 바탕으로 과학적, 철학적 해석을 통해 진화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기독교인이 되는데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솔직히 진화론을 과학적 사실로 인정한다면 이 책에서 이야기 하는 바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이 책은 대단히 오만하고 건방진 한 늙은 다윈주의자의 헛소리로 여겨질 수 있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때론 인정하면서도, 때론 상당한 거부감을 가지고 읽었다. 하지만 그쪽 분야의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을 얻었던 거 같다. 그리고 논리적이고 철학적인 해석이 나름대로 매력을 주었었다. 마지막으로 같이 읽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책에 대한 감상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진화가 과연 과학적 사실인가. 그렇다면 난 이 책이 말하는 바를 인정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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