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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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순간은 아름답고 , 돌아오지 않기에 조금은 슬프며 , 돌아오지 않아서 방점을 찍을 수 없는 추억이 되는 방면에

돌아오지 않는 순간이라 아프고, 돌아오지 않기에 원통하며, 돌아오지 않아서 말줄임표를 찍을 수 밖에 없는 과거가 된다.

이 둘의 차이를 나는 , 동급생 그리고 아이히만 쇼에서 볼 수
있었다

우선 동급생.

화가였던 프레드 울만의 자전적인 이야기도 들어간 소설인 동급생은 , 유대인 소년과 독일 소년의 우정을 , 세잔의 그림을 보듯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독일 슈투트가르트를 배경으로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유년기에 대한 향수와 순진한 두 소년의 경험들이 화창한 봄날씨와 같은 풍경에 어우러져, 나치의 잔혹함에 더욱 더 극명히 대비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건 무엇보다 독일에 직접 가보고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풍경 묘사를 너무나 아름답게 채색해놓았다는 것이다. 마치 영화감독이 소설을 쓴 것과 작가가 소설을 쓴 것을 보고 다른 점을 느꼈던 것처럼, 이번에는 화가가 글을 쓰면 이렇게 쓰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중요한건 , 여기서는 나치에 대한 언급은 전체 소설의 10분의 1도 되지 않지만, 그 10분의 1이 나머지를 압도한다는 점이 매력으로 보여진다.

오히려 언급하지 않으며 독자에게 이를 상상할 여지를 남겨주었다는 점이 오히려 더 깊게 생각하고 이야기에 몰입하게끔 해주었다.

이 이야기는 하나의 정점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지만, 전속력이 아니라 이 부분에 감흥을 느끼고 저 부분에 호기심을 가지며 , 그렇게 요모조모 살펴보며 걷는 오솔길처럼 서술되어서,그 오솔길 끝에 다다랐을때 펼쳐질 감동을 더 극대화 시켜주었다.

진부하겠지만, 다른 모든 평들과 결론은 같다. 마지막 문장 한 줄이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갑자기 왜 황순원의 소나기가 생각났지?- 아무튼 그런 작품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듯 하다.

나치, 파시즘의 비극에 대해서 이러한 시점도 존재함을 느끼며, 그 때 그 주인공들은 아름다운 풍경에서 아름답게만 기억되기를. 그리고 그때 그 고통받던 사람들도 그 시절을 잊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아이히만 쇼 .

이는 나치의 사건의 그 후를 다루고 있다. 동급생이 나치의 잔혹함이 있기 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극채색화시킨 작품이라면 아이히만 쇼는 나치의 몰락 이후, 그 잔혹함이 있은 후의 고통에 대하여 영상이란 프리즘으로 보여준 작품이다.

마치 내가 다큐멘터리의 제작자이고, 감독이고, 시청자가 된 것같은 느낌으로 실제 아이히만 재판을 보며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은 제쳐두고서라도, 어떻게 아이히만은 저토록 침착하며 아무 감정을 못느끼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절로 들게 되었다. 그와 반대로 피해자들의 법정 진술은 또한 우리에게 분노와 이 시대를 살았던 자에게는 원통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이 영화 제목이 아이히만 재판이 아닌, 아이히만 쇼 인 이유는 이러한 비극 앞에서도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이익에 따라서 이를 영리적인 '쇼'로 재탄생 시킴으로서 아픔을 자본으로 치환시키는 것 또한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난 여기서도 악의 평범성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물론 선의로 시작될 수도 있는 작업이었겠지만 말이다 - 이 영화에서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고통받은 유대인의 아픔에 대해서 아이히만이 뉘우치는 것을 보고자 했던 허위츠 감독과 같은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벌백계, 가해자의 뼛속까지 뉘우치는 모습, 이런 것들을 얻진 못했어도 이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유대인의 아픔, 고통을 외면했던 이들에게 더이상 무지에 의한 , 방관에 의한 악이 실현될 수 없도록, 다시는 악의 뿌리가 자라나지 못하도록 깊은 각인을 새겨주는 또 다른 성과를 얻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파시즘, 나치에 대해서 같은 역사에 대해 극명히 다른 두 작품을 보면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내 삶에서, 내 가치관에 적용할지 자신에게 되물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나의 사실에 다양한 프리즘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기에 ,앞으로도 다양한 작품을 접해보고 싶다.

ps- 이 작품들을 보면서 위안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안부에 대해서는 아직 공론화가 활발하지 않아서 다양한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앞으로 이에 대한 다양한 작품을 접하고 감상을 남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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