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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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러나 저러나, 한 인간이 성장해 가는 것은 운명이다
그 성장의 과정에서 오는 고통을 작가는 글로 표현했고, 글로 치유했으며, 글로 기록했다.

끊임없이 상처받고, 고통받았던 자기 자신을 가리지 않고 이렇게 글로 매끄럽게 나열해 놓았다는 것에 역시나...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가 아닌, 역시나...를 항상 달고 사는 사람은 어떤 기분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럽기도 했고, 부담일거같아 걱정도 되었다. 물론 공지영은 걱정하지 않아도 이미 두 발로 제 땅에 서 있는 사람이지만.

처음에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라는 제목을 보며 그동안의 공지영의 소설과 좀 다른 낯선 느낌을 받았다. 제목만 보면 민음사에서 펴낸 신인 작가들 소설 제목같아서, 코미디일지 발랄 로맨스일지 , 대체 무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첫 장에 시작하는 월춘장구-딱 지금 이 춘삼월, 춘사월 계절에 맞는 제목-를 보면서 단번에 흡입되는 몰입력은 역시나 !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소설의 첫 장을 넘기고 나서 바로 눈에 띄는 구절인 " 살 자리인 줄 알고 도망친 곳이 죽을 자리였고, 죽겠다고 도망친 곳이 때로는 살자리였다"(p.11) 는 ,월춘장구 뿐 아니라, 이 책에 실린 모든 단편의 주인공 혹은 등장인물들에게 투영되는 내용이었다.

공지영 자신도, 할머니와 그 자식들도 , 어디엔가 있을 최인향의 언니도, 순례와 정례도, 심지어 병아리도, H도 신기자도 , 그러했다.

어쩌면 이는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일 지도 모른다.


운명이 생을 덮치는 경험을 했던 사람들은 안다. 그 포충망 속에 사로잡히고 나면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회전하고 있을 뿐이다. 고통을 중심으로 하여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느 것이다. 다만 하나의 슬픔의 계절이 있을 뿐이다. (p.195)

... 고통은 가장 긴 하나의 시간이다.(p.13)


언젠가 고통을 겪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읽었을 때 , 나도 모르게 감정에 동요가 일었다. 나 또한, 글-이라고 하기에는 비루하지만, 무언가 서술하고 문장을 나열했던 모든 행위들-은 고통스러웠을때 - 끝나지 않는, 측량할 수 도 없고 가늠할 수 없으며, 언제 끝날지 실측되질 않았던 - 그 고통에 겨워서 그것을 가눌 길이 없어 써제꼈던 것이다.

행복한 시간만을 가진 자들에게 가질 수 없는 그나마 제일 공평한 것이. 시간 그 뒤로는 이러한 것들일 것이다. 행복한 자가 쓰는 글이 고통을 겪어던 자가 쓴 글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공감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겐 한가지의 행복을 떠올리는 일보다 수만가지의 고통을 떠올리는 일이 더 쉽기에.

이 소설은 그러한 고통을 겪은 자들이, 또한 같으면서도 다른 제각각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작가와 소설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그 고통을 잠시나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어쩌면 치유할 수 없을지 몰라도, 흙탕물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흙과 물이 분리되어 맑은 물만 위로 떠오르듯, 그러한 경험을 이 책을 통해서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가끔, 아니 자주 , 남들보다 예민한 탓으로 고통을 좀 더 많이 느끼는 나에게는 오스카와일드와 프레모 레비, 빅터 프랭클의 글귀들에 많은 공감이 갔고 또 그러한 작가들에게서 공지영이 느끼는 감정들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들이 슬며시 나의 생에 스며들었다.

다시, 또 얼른 , 다음 책을 읽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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