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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
첫 마디가 패턴으로 시작했다. 소설에서 패턴이란 용어가 쓰이다니, 소설은 오히려 패턴에서 벗어나야 하는 장르 아니던가

하지만 읽고나면 그 패턴은 우리가 생각한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패턴'은 여기선 '루틴(routine)'이라 불릴 수 있다,
나는 루틴을 벗어나고 싶었고, 여기서 그남자가 선택한건 루틴아닌 패턴이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마음에 들었다.



이 소설은 불친절하다.
불친절하다는 뜻은, 아무런 설명도 없이 , 예고도 없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고 또한 화자도 남자에서 여자, 아주머니로 바뀐다.


하지만 이러한 불친절에도 오히려 더 흡입력이 있다는건 작가의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발견이었다.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어제 밤 열한시에 읽어서 출근길에도 퇴근길에도 읽었다. 그리고 딱 집 앞에 선 순간 다 읽었는데 , 정말 그 읽고나서의 감정은 여러가지 복합적인, 오묘함이었다.
슬프기도 했고, 먹먹하기도 했고 또 원망감도 들었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음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기분상함.


이 소설에서 주요 테마였던 남자의 속죄를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복수가 복수를 낳는 그 연결고리들을 어떻게 속죄로서 마감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 궁금했는데, 생각지 못한 부분으로 유도함으로써 더 나를 집중하게 만들었다.


학교 폭력으로 인하여 우발적 살인을 저지른 남자와, 살해당한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어머니인 아주머니, 그리고 그런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 세 인물들의 시점에서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각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서 어떠한 결말을 낼지 예측하기 어렵게 하였다.
그렇지만 이걸 여기선 패턴이라 부른다.

남자가 말하는 우주 알이 진짠지 거짓인지 나는 모른다. 사실 읽어도 이 소설이 어느부분까지가 진실을 다루려 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은 독자가 생각하고 상상할 부분을 꽤 많이 열어놨기에 난 내가 생각한대로 믿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이 소설에 본질적인 흥미를 가졌었던 이유는, 내가 전부터 의문시 해왔던 부분을 여기서 언급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의 연속성, 왜 항상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한 부분으로만 흐르는지, 그것을 거스를 방법은 없는지.. 개인적으로 타임리프에 관심이 많았기에 (대부분 내가 리뷰를 꽤 열심히 쓴 장르도 보면 타임리프 종류가 많다) 우주 알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여자의 말을 빌려서 이 소설을 로맨스로 만들고, 남자의 말을 빌려서 이 소설을 sf같은 요소로 만들었으며, 아주머니의 말을 빌려 죄와 속죄 그 근원과 해결점을 찾는 드라마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고, 또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초승달은 해가 뜬 다음에 떠서, 해가 지고 나서 조금 있다 져. 그때 볼 수 있는 거지. 그믐달은 해가 지기 전에 사라져

​이부분에서 나는 왠지 그 남자가 그믐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여자보다 먼저 있었고, 그 여자보다 십분 먼저 떠나는 . 해가 지기 전에 먼저 지는 그믐달 같아서..


인간이란 그 미술관에서 가이드를 따라 천천히 움직이는 단체관람객같아. 정해진 방향으로, 정해진 속도로 움직이며 눈앞에 있는 그림에 집중해야 하지, 그 그림을 볼 수 있는 때는 그 순간밖에 없으니까.

그것도 미술관을 경험하는 하나의 방식이야. 그런 방법으로도 미술관에 있는 많은 그림들을 볼 수 있어 어떤 사람은 짧은 코스를 걸으면서도 알차게 작품을 감상할테고, 어떤 사람은 여러 전시관을 돌면서도 별 생각없이 작품들을 지나치겠지. (..중략..)



우주알은 그 단체관람객 무리에서 벗어나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자유티켓 같은 거였어. 우주 알이 몸에 들어오면 좋아하는 그림 앞에서 한참 머물러 있을수도 있고 이미 지나친 조각품을 찾아 길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어. (..중략..)

물론 내게도 원인이 결과에 앞서야 한다는 인과율은 성립해. 내게 인과율은 이런식으로 작동해. 나는 미술관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미술관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거야. 그건 내가 바꿀 수 없어 (중략) 이 미술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려면 이탈리아 그림들을 함께 봐야해. 이탈리아 그리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프랑스와 스페인 회화 컬렉션을 거쳐야 하고.



너는 <모나리자>같은 존재였어. 이 미술관에서 꼭 보아야 하는 그림.



나는 복권과 경마로 부자가 될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런다면 네 곁에 머물 수 없었지 그런 인생은 <모나리자>에서 매표소나 카페테리아만큼 멀리 떨어져 있거든



고마워, 너랑 지내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 우주알을 받아들인 보람이 있었어.


이부분을 보고 나는 감탄을 했다. 아 삶의 연속성, 시간의 연속성을 저렇게 비유할 수 있구나. 그리고 남자의 여자에 대한 고백을 이렇게, 슬프지만 또 가슴떨리게도 할 수 있구나.

삶을 사는것은 한 방향으로 작품을 보는 전시회와 같다.
대신 이전 작품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우주알은 그러한 흐름을 거스를 수 있는 유일한 티켓이었는데 그걸 너를 보기위해 썼다는 것.

그 여자를 보기 위해서.. 그는 그 자신이 존재를 숨기기 위해 노력했었던 그 모든것들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이름을 바꿨지만 그 여자가 알 만한 소재의 소설을 써서 그 여자의 출판사로 보냈고, 그래서 아주머니를 마주할 수밖에 없었고, 숨어서 그냥 살 수 도 있었지만 그는 위험한 길을 택했다.

난 그부분이 너무 슬펐다. 모나리자를 보고싶으면 이탈리아 그림을 함께 보듯이.. 그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자신의 재능을 항상 좌절당해야 했던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그렇게 마주친 아주머니에게 죄의식을 가진채로 항상 같이 해야 한다는 그 상황이 스스로에게 얼마나 큰 또 하나의 징벌이었을까.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 거야.
이것이 잔인한 진실이라는 것도.
이것이 그남자의 패터이었다는 것도.


그남자의 패턴은 자유티켓을 쥐었음에도 한 방향으로밖에 갈 수 없는 한 인간의 일방적보다 더 일방적인 것이었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어디든 어느 시간이든 갈 수 있는 자유티켓을 쥐고도 그 여자를 만나기 위해 그 누구보다 한 방향으로 가는 남자라니.

가끔 지난 과거를 돌아보면

나는 비록 우주알은 가지지못했지만 ..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전시회장에 있는 사람이라도, 어떤 작품을 더 주의깊게 볼 것인지 ., 이 작품 앞에 서 있는 시간을 내 인생의 어느만큼 할애할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나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실패의 경험이 다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 최악의 상황을 불러왔던 적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결국엔 그 최악의 상황을 맞았던 그 선택을..다시 할 수 밖에 없고 또 후회가 없을 것이란걸 나는 알기에.

다시 되돌아가서 똑같이 힘들고 슬프고 억울해도. 나는 결국에 또 그 선택을 할 것임을 알기에 남자의 마음에 더 감정이입이 되었었다.

남자의 방식대로 속죄를 했고 결국 아주머니는 평안을 얻었지만, 남은 여자는 방 세개에 러시안블루 고양이를 키우며, 정말 그 남자의 말대로 되감을 느끼며 오히려 슬픔을 느끼지 않았을까.

정말 그 여자 말대로 여자는 그저 그남자가 자기 옆에 있길 바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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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이 그남자와 그 여자의 이야기로 채워진 것이 아닌, 아주머니와 불편하지만 함께 하는 그 모습으로 채워졌다는 것 또한 가슴이 먹먹했다. 서로 다른 입장이기에 서로를 이해하지만 서로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셋이 공존하는 모습이 애처로와서였다.
그러한 그들이 마지막을 본 것도 패턴이었다.



이 소설에 내가 주석을 많이 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면장력 http://blog.naver.com/likewind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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