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누군가에게 잊히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
그 사람이 어디에 있든, 서점에 가면 그의 책들이 곳곳에서 그 대신에 그녀에게 인사할 수 있도록.
나 여기 이렇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널 잊지 않고 있다고.

가능한 많은 책들이 많은 곳에서 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해 글을 썼다.

그러나 지난 육 년간 그런 소임을 충실히 수행해온 그의 책들은,
그에게 자부심과 실낱같은 희망과 생명을 주던
그의 책들은
그 날 따라 이상하리만치
초라하고 쓸쓸하게만 보였다.


-


예나 지금이나 그가 믿는 사랑이란 오직 상대가 우러러볼 수 있는 무언가가 되는 것
사랑을 놓치고, 그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책을 팔아도, 그는 자신이 더 나은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외모, 성격, 말투, 목소리, 풍기는 분위기와 체취, 노력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그만의 개성이나 매력같은
진짜 모습들은 무슨 짓을 해도 변하질 않았다.

그는 자신이 성공한 작가라는 사실을 모르는 친구와 친척과 지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며

그의 달라진 신분을 모르는 어느 곳 , 마주치는 어떤 누구로부터도
여전히 평범한 사람 취급을 받는 그저 그런 존재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책을 한 권도 팔지 못하는 나 김용휘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인간인가? 누구에게도 친구로 여겨지거나 남자로서 사랑받을 수 없는 존재인가?'

그는 괴로웠으나 아무리 해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자괴감이 더할수록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오로지 더 많은 책을 파는 것밖엔 없었다.

-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는 영원히 못 헤어져, 용우씨.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뿐이지

-



두시간 반만에 완독을 했다.

마지막까지 손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나 또한 용우만큼 용휘의 존재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고
나 또한 용휘와 똑 닮은 사람을 알기 때문이었다.

가볍게 알았을 때엔 유머러스하고, 적당히 가볍고 적당히 진지하고 적당히 시니컬하지만

파고 들어갈수록 자기에 대한 컴플렉스가 심하고, 자신감이 없으며 , 변덕스럽고,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적으로 매력이 없는 사람.

그걸 스스로 알기 때문에
자신을 평생 거짓으로 포장해온 사람.

하지만, 지인이 아닌 독자의 입장에서는

너무나

미워할 수도
한심해할 수도 없는사람.

왜냐하면

나 또한 용휘만큼 그 사랑에 대한 감정이 인생을 뒤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


용휘는 성북동에 사는, 자신이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그녀 때문에,
자신이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남자이기 때문에

그녀로 인해 인생의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만을 향해 달려온 용휘는
그러한 목표의 구심점이던 그녀가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깨닫게 되자

그 모든 것이 자신에게 의미가 없어진다.

인생의 중심이 그녀였는데
그녀가 정작 그의 삶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의 삶은 결국 중력에 반하여 무너지게 된다.

지구가 없다면 달이 지금처럼 그 주변을 돌 수 없는 것처럼


.

그는 그의 삶의 중심을 다시 그에게로 돌려놓기 위해.

아니면 또 다시 그의 삶을 지탱해 줄 새로운 중심을 찾기 위해

삶의 목표라고는 그녀밖에 없었던 진짜 김용휘를 사랑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

기약없는 떠남을 하고 만다.

나 또한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기에


제롬과 용휘의 연대감을 다 알 수는 없지만.


-

이 책을 읽고는 눈물이 날 것 같은데 눈물이 나지 않고 오히려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
이유가 뭘까.


이 책은 용휘의 억눌렸던 그리움과 슬픔이 마지막에 봇물 터지듯이 넘쳐흘러
오히려 보는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

나는 그가 성북동 밤의 불빛을 산에서 바라보는 행위가
개츠비가 이스트 에그의 초록 불빛을 바라보는 행위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데이지를 사랑하는 개츠비와
성북동의 그녀를 사랑하는 용휘가

그리고 데이지를 위하여 자신이 부자가 되는 개츠비
성북동의 그녀를 위하여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용휘
일맥상통하는 면이 많다고 생각했다.

다만 개츠비는 멜로에 더 치우치고
실내인간은 추리 비슷한 요소를 더하여
궁금함을 더한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

자신의 삶의 중심을 자신이 아닌 사랑에게 부여하는것은
 자신의 삶을 사랑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자신의 삶을 내던지는 것과 다름없기에
상당히 비참한 결말을 초래하기 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잊지 못했지만

그러한 자신을 받아들이는것은

용휘에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세상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지도 모르는

어디엔가의 용휘를 위하여

이 글로나마 응원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