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의 4집이 나왔다...
...고는 하지만 벌써 두 번째 발매연기 중이다. 단순한 자켓 인쇄사고인 것 같기도 하고 두 번이라고는 해도 날짜로 치면 열흘이라서 다행스럽기는 하지만서도, 실물이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아 갈급증이 생기는 건 어찌할 수가 없다. 업계에서는 제품 발매 전에 사고가 나면 호사다마, 대박이 날 징조라고 여기는데, 두 번 연속으로 사고가 났으니 이번 앨범이 어떻게 될지는 지켜볼 일이다.
4집 발매 전의 공연들과 쇼케이스를 통해서 미디 사운드가 음반의 큰 축이 될 것을 짐작하고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음반에서는 공연에서 구현하지 못한 것들이 있을 것 같아 음원이 공개되기를 기다렸다. 4집에 담긴 노래들의 느낌은, 공연에서 들었던 그것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하다. 낯설기도 하고 낯익기도 하다. 좋기도 하고 좋지 않기도 하다.
홍보문구에는 '시작과 맞닿은 내밀한 성장'이라는 말이 들어 있는데, 적절한 표현이다. 이번 음반에서는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가 그동안 해온 음악의 궤적이 느껴진다. 그중에서, 내 느낌으로는, 이번 작업에서는 1집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김민홍의 솔로프로젝트 음반인 <Super World>, 즉흥성을 극대화한 프로젝트 음반인 <일곱날들>의 입김이 많이 담겨 있다. 전자음 + 일상의 소음은 송은지/김민홍의 목소리와 멜로디와 마주쳐 때로 어울리기도 하고 충돌하기도 한다. 


'에피쿠로스는 세계 형성 이전에 무수한 원자가 허공 속에서 평행으로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클리나멘(자발적 운동능력)'에 의해 원자들이 기울어지고 마주친다. 원자들의 마주침은 원자들에, 편의(기울어짐)와 마주침이 없었다면 밀도도 실존도 없는 추상적인 요소들에 불과했을 바로 그 원자들에, 그것들의 현실성을 부여한다'...고 알튀세르는 (정확히는 아니고 대강 이런 식으로) 말했다.
<CIAOSMOS>의 소리들은 서로 마주쳐 듣는 이로 하여금 그 존재를 인식하도록 한다. 이것이 내는 효과는 우발적이고, 항상 같지는 않으며, 편차가 심할 것이므로 일단, 이 시점에서, 과감하게, 잠정적으로 평가를 하자면, '일정 정도의 신선함을 얻은 대신 편안함은 그만큼 잃었다'이다. 계속 움직이고 변하며 이전과 닿아 있으면서도 다른 음악을 들려준다는 점은 특히 좋다. 그렇지만 우주 만물에게 인사를 하러 여행을 떠나되 라디오헤드처럼 안드로메다까지 갈 필요는 없다. 당신들이 저 멀리 보이는 '창백한 푸른 점'에서 왔다는 점, 그리고 당신들이 음악으로 만든 소리들이 그 안에 있는 것이었음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많이 오바하는 발언이다).
타이틀곡이 'Dream Is Over'라는데, 정이 가는 곡은 'Life Is Noise'다. 앨범의 컨셉을 잡는 곡이었다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런 듯한 곡이다. 'ladybird'와 '물에 사는 돌'이 서정성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Dream Is Over'나 '서부간선'은 클럽에서 나와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전자음을 많이 사용한 탓인지, 2집의 일부와 3집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발랄함은 이번 음반에서는 많이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