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집단에 속해 있는 듀엣이라서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에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어보았는데, 좋다. 보컬도 매력이 있고 노래들도 깔끔한데, 노래가 잘 살아나도록 녹음된 곡에 색을 잘 입힌 느낌이 있다.
그런데 보관함에 넣으면서 생각해보니 이 음반을 '정규'라고 이름붙일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독립제작(혹은 더 잦게는 홈레코딩) 방식과 싱글, ep 발매가 보편화되면서 꽤 자유로운 형식의 음반들을 들을 수 있게 됐는데, 개인적으론 이게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좋은 점은, 예전처럼 6개월, 1년씩 기다리지 않고도 좋아하는 가수의 새로운 노래를 한두 곡씩이나마 자주 접할 수 있게 됐다(심지어 '월간 윤종신'도 있으니). 다른 좋은 점들은 일단 넘어가고... 나쁜 점을 짚자면, 앨범의 밀도 또는 완성도의 문제다. 낱곡 위주로 소개되다 보니 음반 전체를 관통하는 흐름이나 주제 같은 게 희미해지기도 하고, (홈레코딩의) 가벼운 느낌을 추구하는 경향인지 예전이라면 정규 음반의 히든트랙으로 들어갔을 라이브 클립 같은 것들이 정규 트랙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앨범 단위로 노래를 틀고 다른 일을 하는 터라 개인적으로는 이런 음반들은 처음 몇 번 듣고 나면 좋은 음반이더라도 자주 듣지 않게 된다(이를테면 옥상달빛의 ep가 그렇다).
이 음반의 경우는 홈페이지에서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던 곡들을 주로 담고 있다. 처음 공개한 후에 음반으로 내려고 별도의 작업을 했다고 하지만 커버곡들이라 신선함이 떨어지는 것도 있고, 신인가수의 음반 열 곡(하나는 같은 노래에 버전이 다른 것이니 실제론 아홉 곡) 중 커버곡이 셋이라는 점도 아쉽다. 커버곡들은 그냥 유튜브에 두고 ep 정도로 간추려 냈으면 어떨까 싶다. 팬들의 요청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앨범의 컨셉 때문에 필요하다거나 좋아해서 꼭 넣어야 하는 곡이 아니라면 커버곡을 세 곡이나 굳이 음원 사용 비용까지 내는 무리를 하면서까지 볼륨을 채워야 했을까 싶다. 다른 곡들의 경우도 연주와 노래 외에 대화 장면 같은 것들이 나오기도 하는 걸 보면 (이 앨범의 컨셉이 '연주와 노래를 동시에 녹음한다'는 것일지라도) 약간 과도하게 라이브스러운 것 같아 필요하지 않은 부분은 버리거나 다시 녹음해도 됐을 텐데 싶다.
물론 내 경우도 그렇고, 대다수의 이들이 유튜브 라이브 동영상을 통해 제이 래빗을 알게 됐을 것이다. 제이 래빗뿐 아니라 이 집단의 동영상들은 연습 삼아 올린 그냥 라이브 클립이 아니라 일부러 공을 들여 손질한 것들이었다(노래의 경우도 코러스나 악기 솔로 부분 등을 따로 덧대기도 하고). 가수 홍보에 유튜브를 사용하는 것이 꽤 좋은 방식이라는 것은 몇몇 예를 통해 이미 검증이 되었다. 그렇지만 프로젝트음반이 아닌 이상 소스가 다르지 않은 노래들을 '정규 음반'이라는 이름으로 묶어서 내야 할까? 내도 될까? 안 될 건 없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입장에서는 그런 '정규 음반'이라면 구매욕구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같이 보관함에 들어 있어도 구매 순위가 밀리게 되고, 어쩌면 별다른 계기가 없다면 결국 사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라이브는 아니고, 그렇다고 스튜디오 녹음도 아닌 특이한 형태의 음반을 정규1집이라는 이름으로 낸 데는 제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풍성한 부클릿과 이태리 장인이 한곡한곡 손수 바느질해 꾹꾹 눌러 담은 것 같은 노래들이 가득 담긴 '황금시대의 정규 음반'을 기대하는 (이제는 덧없는 망상을 붙들고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과감한 실험이라기보다는 무모한 포장으로 보여질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문제와 별개로, 이 듀엣은 잘 될 것 같다. 노래도 많이 만들고 공연도 많이 해주길 바란다. 지난 번 공연은 일정을 알았을 때 이미 매진이라 볼 기회가 없었지만 종종 크고 작은 공연을 해준다면 꼭 보러 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