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날리는 나뭇잎 사이로 부서지는 주홍빛 햇살, 무지개와 아끼는 사람의 웃음. 그는 가족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른 후 멈칫하고 가족들을 한 번 더 소중하게 눈에 눌러 담는다. 소중한 것을 아까워하는 마음. 우리는 그것을 영혼이라고 부를 수 있다. - P-1
삶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어나는 물리적인 사건으로만 바라본다면 우리의 영혼은 빈약해질 것이다. 영혼의능력이란 어쩌면 덤덤히 흘러가는 보통의 날들이라도 나와 눈앞의 세상, 단둘만이 알 수 있는 오롯한 의미를 덧입히는 것이다. - P-1
올해도 서점의 긴 방학을 맞아 집에 머물고 있다. 몸이언제나 헤실헤실 풀어져 있다는 것이 좋다. 퇴근하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스스로가 긴장한 줄도 모르고 있다가몸이 스르르 풀어지고 나서야 아, 내가 무척 힘을 들이고있었구나, 하고 알아챈다. 누군가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 잘 보이고 싶은 마음, 상처를 주었을까 되새김질하는 마음. 대부분 나의 생활에서 수십 발자국 떨어져 있는 사람들인데도 그렇다. 그 모든 것들이 야외 생활의 괴로움들인데, 되도록 누군가와연결되지 않고 집에만 있으니 온몸의 털이 고분고분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 P-1
우리 동네에는 오랫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백반집이 있다. 이렇게 오래 영업을 할 정도라면 이곳만의 확실한 매력이 있으리라 생각하며 들어갔다. 가격은 저렴했지만 그다지 맛은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요리를 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여긴다면 충분히먹을 만한 요리였다. 한 달만 지나도 기억나지 않을 이름, 개성 없이 낡아 버린 간판, 김치찌개와 제육볶음 같은 기본적인 메뉴. 힘주어 꾸민 곳도 없고 너저분한 구석도 꽤보이지만 6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식당. 그곳을 나오며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뭔가를 굉장히잘하지 않아도, 누구나 단번에 알 법한 매력이 없더라도오래 살아나갈 수 있구나. - P-1
크게 빛나지도, 모나지도 않은 것이 보통의 의미라고생각했는데 한참 잘못 짚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보통이란 생각보다 지나치게 완벽한 상태이고 실제의 보통은 조금은 더 남루하고 한심스러워도 되는 것이었다. 때로는 이만하면 됐다 싶은 지점과 도저히이대로는 안 될 것 같은 지점을 부지런히 오가는 것이 진짜 보통의 상태였다. 그것을 알게 된 것이 기뻐 다음 날만난 보라차에게 열심히 말해 주었다. - P-1
밋밋하고 심심하지만 큰 고통 없는 무엇이 아니라, 두려워하면서, 때로는 벌벌 떠는 손을 잠재우려 주먹을 꼭쥐고 원하는 것을 향해 애쓰며 간다. 그러다가 때로는 누군가에게 기대고 내민 손을 잡으며간신히 나아간다. 세상의 수많은 보통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모두 평등한 간절함과 망설임으로 만들어진다. 다행히 만들어진 모든 것들은 유일하므로 그것을 아껴주는 유일한 사람이 나타난다. 좀 엉망이어도 엉망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조금씩, 너무 힘들지 않을 만큼의 힘만 내더라도 묵묵히 걸으면 꽤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나는 이제 보통의 집으로 돌아올 수 있다. - P-1
자연 가까이에 머물고 노닐 때 아름다운 생각들은 더 선명해지고 해로운 것들은작게 흐려져 힘을 잃어버릴 것 같았다. - P-1
선생님이란 직업이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윤리와 청결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교과서 속의 모든 말이 하얗게 무죄인 것처럼. 그런말들로 아이들을 표백할 때마다 내 안에 그렇지 않은 부분들은 수치심을 느꼈다. 성당에 다녔던 어린 시절, 끊임없이 괴로워하면서도죄를 되풀이했던 날들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종교와 교육이라는 그 모든 올바름의 갑옷에서 벗어난 지금, 나는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진심으로 말하며 살고 있을까. 그에 기대지 않고 나는 무엇을 진심으로 믿고 배우며 살고있을까. - P-1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이 겁이 날 때가 있었습니다. 복잡하게 가득 줄 세워진 도미노로 가득 찬 방에 서 있는 거인이 된 것 같았습니다. 자칫 무언가를 잘못 건드리면 누군가의 인생이 와르르 바뀌어 버릴까 봐 겁이 났습니다. 학교를 그만두며 가장 아쉬운 것은 아이들이 주었던 사랑을 제대로 받아 내지 못했던 것입니다. 달려와 와락 안아줄 때, 제 손이 차갑다며 꼭 잡아 줄 때, 무언가 이야기하고싶어 책상 앞으로 모여들 때, 자기도 먹고 싶었을 작은 사탕을 내밀었을 때, 눈에 별이 들어간 얼굴을 정성껏 그려 집에가기 전 선물했을 때, 세탁기를 돌리려고 주머니를 뒤적거 - P-1
리다 아이들이 몰래 넣어 둔 작은 손편지와 사탕들을 발견했을 때, 많은 것들을 너무 태연히 받은 채 제대로 기뻐하지도, 고마워하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이곳에서 그 모든 단단하고고운 사랑이 한번에 느껴져 미안해집니다. 이제 새로운 발걸음을 떼고 어디로 갈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무엇이 나를 차오르게 하는가, 가슴 뛰게 하는가, 스스로사랑할 수 있게 하고 살아 내게 하는가. 더욱더 묵직하게 만져지는 인생으로 향하고 싶습니다. - P-1
오랫동안 되고 싶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깊고 따스한, 사랑이 많고 선선한 사람. 그렇지만 그것은 사는 동안의 권태와 이기심과 얄팍함과 공명심에 너무 자주 좌절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바라는 것은, 제게 주어진 많은 시간 동안 그런 사람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젠가 다시 아이들앞에 섰을 때, 제가 받았던 사랑을 더 풍성하게 돌려주는 광경을 기쁘게 그려 봅니다. 긴 이야기를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젠가 햇빛이 잘 들어오고 목소리가 울리는 가르침의 장소에서 귀한 인연으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 P-1
쉽게 복잡한 생각에 빠지는 천성이 어디 가지는 않아도예전보다 빨리 일어설 수도 있고 따뜻한 목소리로 다독일줄도 알게 되었다. 그 오랜 청춘을 지나는 동안 나는 나를사용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도망가지 않아도 지금 이곳에서도 충분히 괜찮은 것이 아닐까? 언젠가 가까운 훗날조금 더워지는 여름의 문턱에서 문득 깨달을 것이다. 내가 바라왔던 많은 것의 한가운데에 있음을이 모든 과정이 내가 진짜 바라는 집으로 돌아가는 미로에서 한나절 놀이를 하는 것만 같다. 이쪽으로 가도, 저쪽으로 가더라도 어쩐지 길이 있을 것만 같아서 여기저기가보고, 막힌 길이 나올 때도 있다. 다양한 길들을 감식하며 걸어간다. 길 끝에는 내가 정말돌아가고 싶은 집이 불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좋아하는•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하다가 문득 고개를들어왔어?‘라고 말해 줄 것이다. 그곳은 반드시 있다. - P-1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뒤에서 응원해 준 사람들의얼굴을 하나하나 모두 돌아볼 수는 없지만, 언제나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 그러니까 우리는 모르는 사이 그동안 우리에게 쌓인 사랑의 무거움을 알아채며 살아가자. 아무도 없다고 생각될 때도 그렇게 알아챈 무수한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살아가자. - P-1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불안하게 했던 나쁜 우려와 상상을 정확히 부정하는 작은 사건이 일어난다. 아무런 용건 없는 전화를 걸어 내가 너를 참 좋아한다고 전하는 친구의 술주정, 함께 뭘 해보고 싶다는 누군가의 제안, 충동적으로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자는 말들. 쭈그러들었던 마음에 다시 물기가 돈다. 사랑받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콩쥐의 구멍 난 장독에 물을 채우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으로 보인다. 하지만 어느 시절에 나눈 기분 좋은 산책과 - P-1
가벼운 고백은 찰흙처럼 부드럽게 마음에 덧대어진다. 마음은 서서히 메워질 수 있는 장소다. 나는 이토록 촌스러운 사람.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늘 고백하고 싶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닮고 싶은지, 얼마나 감탄하는지, 함께 놀아 주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촌스러운 사람이니까 촌스러운 것의힘을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체온과 눈물과 쉽게 감동하는 것. 신파스러울 정도의 다정함. 실제의 나는 그렇지 못한 날들이 더 많으므로 더욱더 믿으며 살아가고 싶다. 차갑고 무의미한 날들로부터 페달을 밟아 어딘가로 향할 때, 도착할 장소가 되어 주는 사람들. 숫자와 해야 할일로 휘몰아치는 삶 속에서 서로에게 충분히 가닿지 못하고 서툴게 만나지만, 그래서 우리가 우리로 연결되어 있음을 갑자기 또박또박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우리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 한다. 해바라기밭을 지나, 반딧불이와 함께, 촌스러운 마음을 잃지 않으며, - P-1
그러므로 우리는 아름다운 나날을풍요로운 어휘와 찬란한 기억 속에 저장해 두었다가어느 날엔가 텅 비고 허무한 바깥세상의 들판과 하늘에화사한 꽃과 별들을, 아름다운 날에 그랬던 것처럼뿌려 주어야 하는 것이다. 「불안의 서」 중에서, 페르난도 페소아.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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