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다행스러운 건 ‘읽는 눈‘, ‘보는 눈‘의 줏대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내가 읽은 것, 만나 본 사람을 믿을 뿐 다른 사람의 평가에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좋아하고 신뢰하는 사람의 흠결을들었다고 해서 쉬이 내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그가 품고 있는 단점을 능가하는 장점을 알기 때문이다. 낙천적인 회의주의자가 되려고 애쓴다. 이건 세계를 보는 눈 너머 사람을 보는 눈에서도 통한다. 내가 본 것이 그의 진면목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를 좋아하고 신뢰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나는 특별히 바쁘게 사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의 자식 입장을상상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건 성공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추억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는 성공한사람이 아니라 필요할 때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니까. 너무나 바빠 보이는 이연복은 어떤 부모일지 궁금했다. "애들이 참 잘 자라줬거든요. 한번은 물어봤어요. 내가 너희한테 특별히 잘한 게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잘 자랐냐고. 그랬더니 ‘엄마, 아빠가 열심히사는데 우리가 어떻게 삐뚤게 나가요‘라고 했어요." 보는구나, 보이는구나. 부모의 애씀을 자식이 모를 수가 없구나 싶었다.
부모가 최선을 다하면, 아이는 당연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