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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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색이라면, 무엇이든 마음에 들이고 보내며 일생을 살아야하는 사람에게도 색이 있을 테니까. 어느 물감도 따라잡지 못할 만큼 찬연한 색이 있다고 믿는다. 

온 마음을 다해 오느라고, 늙었구나.

ㅡ세사르 바예호. 여름

세상과의 결속에서 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나의내면이 나의 존재와 끊어지지 않으려 분투하고 있다는증거일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영영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시도해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
저녁은 그렇게, 시를 읽는 나와 함께 늙어간다.

체스터튼은 [정통]에서 그러한 무게의 해악을 설명하며, "자신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라앉지" 말고 "자기를 잊어버리는 쾌활함 쪽으로 올라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숙함은 인간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것이지만, 웃음은 일종의 도약이기 때문이다. 무거워지는 것은 쉽고 가벼워지는 것은 어렵다."
결국 발목에 추를 달 줄도, 손목에 풍선을 달 줄도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양극을 번갈아 오가는 게 아니라, 한 번에 두 겹의 감정을 포용하라는 것이다. 추를달 때 풍선을 기억하고, 풍선을 달 때 추를 잊지 않기.
삶의 마디마다 기꺼이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선택이 필요하다면, 여기에서 방점은 ‘기꺼이‘라는 말 위에찍혀야 할 것이다. 기꺼이 떨어지고 기꺼이 태어날 것.
무게에 지지 않은 채 깊이를 획득하는 일은 그렇게 해서 가능해지지 않을까.

영화 <이반의 어린 시절>의 한 장면.
소년과 소년의 어머니가 함께 우물을 내려다보고있다. 어머니가 말한다.
"깊은 우물의 바닥에서는 화창한 낮에도 별을 볼수 있어."
어떻게 한낮에 별이 보이냐고, 소년이 반문한다.
어머니의 대답. "너와 나에게는 낮이지만, 별에게는 밤이란다."

걷다가 죽어가는 벌레 곁에 있어주고, 창을 내다보는 개에게 인사하고, 고양이의 코딱지를 파주며 탕진하는 시간이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 시간의 나는 진짜
‘나‘와 가장 일치한다. 또한 자연이나 스치는 타인과도순간이나마 일치한다. 그 일치에 나의 희망이 있다. 부조리하고 적대적인 세계에서 그러한 겹침마저 없다면,
매 순간 훼손되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견딜까.
방 안에 있을 때 세계는 내 이해를 넘어선다. 그러나 걸을 때 세계는 언덕 서너 개와 구름 한 점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알게 된다."
정말 그것뿐이다. 언덕 서너 개와 구름 한 점. 그안의 무한 그리고 무(無),
나날이 성실한 산책자로 살아가지만, 나는 아직 언덕과 구름을 다 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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