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영화도 마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처럼 우연히 작동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런 여름날 속에서 경애를 집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맥주와옥수수뿐이었다. 어느날 시장에 갔다가 옥수수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경애는 이삼일에 한번씩 나가서 옥수수를 사왔다. 옥수수의 힘센 잎들, 동물의 것처럼 부드러운 수염, 그리고 아주 꽉 차오른 알갱이들을 보고 있으면 창으로 문득 들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듯 어떤 환기가 들면서 산다라는 말이 생각나곤 했다. 경애가 이방에서 하릴없이 웅크리고 앉아 있는 동안에도 여전히 저 밖에는
‘산다‘라는 것이 있어서 수많은 것들이 생장하고 싸우며 견디고 있다는 것. 다행히 그런 것들이 여전히 있어서,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하는 여름의 낮을 보내다 슬리퍼를 끌고 시장으로 나가면 그 살고 있는 것들을 두 손 무겁게 사들고 어쨌든 돌아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해서 경애도 아무튼 살고 있다는것. 그런 마음이 들면 경애는 불현듯 약속을 잡아보다가도 낮이 되면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며 외출을 취소하곤 했다.

경애는 엄마가 해준 유년의 이야기들 중에서 이런 것을 좋아했다. 경애가 한번도 본 적 없는 장면들인데 이상하게 실제로 본 듯떠오르곤 했다. 경애의 엄마는 십대 때 고향 원두막에서, 서리해온수박을 아주 늦은 시간까지 동네 친구들과 나눠 먹곤 했는데 어느날은 너무 웃어서 그 허술한 원두막이 풀썩 꺼지고 말았다고 했다.
경애 엄마는 그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즐겨 했다. 그러면 경애는그 순간, "원두막이 무너진 거야, 우리는 그 와중에도 그게 웃겨서다친 줄도 모르고 웃고"라고 하는 순간을 기다렸다.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다‘는 그 이야기의 클라이맥스는 경애가 커가면서 엄마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경애가 그때의 엄마나이가 되었을 때는 다친 줄도 모르고 웃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시절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도시로나간 것은 다른 누구의 강요도 아니고 자신의 선택이라는 긍지가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계를 스스로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에는 어떤 환함, 경애의 상상 속에서 때로는 터무니없이밭을 압도할 정도로 큰 여름 달 같은 환함이 있었다.

만약 무언가를 포장하고 있다면 꾸민다기보다 숨기고 있는 것에 가까울 거야 하는 말이었다. 들여다보면 더한 슬픔과 고통이 있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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