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누군가는 말했어. 인생은 자신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라고. 자신이 풀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어. 프로이트는 여자들은 무엇을좋아하는지를 궁금해했고 밀란 쿤데라는 한 번뿐인 인생은 참을만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궁금해했어. 나에게도 늘 반복되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지. "뭐가 문제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이야기들이 좋았어. 이야기들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야. 당신은무엇 때문에 고생하고 살지요? 당신은 어떤 말에 귀 기울이지요?
당신은 어떤 소원을 가지고 있지요? 당신은 무엇에 고통받지요?
당신은 무엇을 잊지 않고 살지요?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지요? 당신이 엄청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은 무엇이지요? 이 질문들은늘 나에게 그대로 돌아오곤 했어.
물론 질문만이 좋았던 것은 아니야. 이 이야기들이 좋았던 데는한 가지 이유가 더 있어. 이야기 속 사람들이 질문에 따라 살고 있었기 때문이야. 릴케는 어느 날 젊은 시인들에게 이런 당부를 했었어. 간곡히 부탁하건대 대답에 따라 살지 말고 질문에 따라 사시길. 왜냐하면 우리는 대답을 따라 살 수가 없으니까.

옛날에 중세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을 믿었다고 해. 그러다가 연옥이란 것을 알게 되었어. 그러자 마음이 급해졌다고 해.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천국으로 갈 수도 있고 지옥으로 갈 수도 있는 거잖아. 나는 우리 마음의 실망도 연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
실망을 감상적으로 과대평가할 필요는 없어. 실망의 유일한 문제는 실망 때문에 어느 쪽으로도 가지 않으려 하는 것이겠지. 실망하지 않으려 애쓰지 마. 아니 실망했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않으려 애쓰지 마. 그 실망이 나에게서 왔든 바깥에서 왔든. 내가이 말을 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겠지. 나 스스로 뭔가를 기억하려는 거야. 내가 그렇게 전적으로 올바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연기할 수는 있겠지. 아주 기가 막히게 말이야. 그러나 어떤 역할을 기가 막히게 연기해낸다고해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 우리들은 사람들을 틀에 맞추고분류하고 싶어서 안달하잖아. 그것이 다 자신을 위해서야. 편하게이해하려고, 누구는 좋은 사람, 누구는 나쁜 놈. 나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 여러 면이 섞여 있을 뿐이야. 남도 마찬가지고 나도마찬가지고, 타인의 삶은 다 비밀이야."

그녀는 ‘귀가 배지근해진다‘라고 말했어.
"할머니, 귀가 배지근해지는 게 무슨 뜻이에요?"
귀가 배지근하다라는 말은 제주도 사투리였어.
"어떤 말이 아주 귀에 쏙쏘옥 들어온다는 말이야."
"할머니, 어떤 말을 들으면 귀가 배지근해져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가장 큰 선물은 시간을 나눠 갖는 것 아닐까?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을 시간에 낚시꾼은 버려진 나무를 모으고 깎고 칠하고 무게를 쟀지. 찌가 선물이 아닐 수도 있을 거야.
이 지상에서 선물은 말이야, 자기 자신조차도 완전히 맘대로 할수 없는 시간일 수도 있을 거야. 그 시간 속에서 고민과 이야기와비밀과 눈물과 웃음을 나누다가 공동의 기억과 경험을 만들다가그러다가 함께 변해가는 거지. 우리 할머니의 만 원도 만 원짜리지폐에 불과한 게 아니잖아. (그러고 보니 우리 삶 전체가 시간이 준선물이란 시각도 있어. 그 관점 아래서 우리 삶은 무언가를 획득하기 위한 기나긴 과정이 아니야. 선물을 준비하느라, 아니 선물이 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는 과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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