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다는 것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일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ㅡ발터벤야민, 《일방통행로》
‘다르기‘ 때문에 ‘같은‘ 친구 · 팀장·연인·아버지를 볼 수있다면,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더 즐겁고 유쾌해질 수 있다. 그들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종종 우리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그것 역시 곧 흘러갈 테니까 말이다. 설령 그들이 하나도 변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결코 같을 수 없다. 그들을 만나는 ‘내‘ 가 매 순간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상이 모두 그대로라도, 자신이 달라지면 모든 것이 변하게 마련이다.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면 같은 세상도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나도, 너도, 세상도, 모든 것은 변한다. 나와 완전히 같은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러한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될때, 나와 다른 존재들을 만나더라도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그 기쁨을 누리면 누릴수록 점점 더 나와 큰 차이가 있는 존재들(외국인, 장애인, 성소수자, 난민 등등)까지 긍정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더 지혜로운 존재가 된다. 그리고 지혜로운자들은 점점 더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우리는 일찍이 헤라클레이토스가 보여준 삶의 진실로 돌아가야 한다. 세계는 흐르는 만물과 같다. 그래서 모든 것은 변화하게 마련이다. 그러니 세상에 고정된 같음은 존재할 수 없다. 세상모든 것은 매 순간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 ‘다름‘이 바로 ‘같음‘이다. 매순간 변화하는 ‘다름‘에 의해 ‘같음‘이 만들어진다. 이것이 삶의 진실이다. 이 삶의 진실을 깨닫게 될 때 ‘다름‘에서 유쾌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누구보다 ‘다름‘에 대해 깊이 고민했던 우리 시대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본질이란 본래 차이다. 그러나 또한 본질에게 반복함으로써자기 자신과 동일해지는 능력이 없다면, 본질을 다양하게 만드는 능력, 다양해질 능력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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