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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것 아닌 선의 -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가장 작은 방법
이소영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5월
평점 :
완벽하고 선명한 것을 선망했다. 그런 것을 품고 그렇게 완전하게 말하는 것이 부러웠다. 하지만 이제는 불완전하고 희미한 것에 묵직한 진실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이 작가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위안이 되었다.
별것 아닌 선의로 지속되는 삶을 꿈꾼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나는 데리다 이론에 정통하지 않았다. 그의 난해한 저작들을 완독하지도 못했다. 2차 문헌들과 해설서를 읽고 얻은 얕은 지식을 서툴게 전달했을 뿐이다. 그러니 자아성찰하며 도서관으로 곧장 가서 공부에 매진함이옳았지만, 마음이 붕 들뜬 나는 버스를 갈아타는 것마저 잊고 구시가지 번화가로 갔다. 시간강사에게 도래할 ‘방학 보릿고개‘ 걱정은 잠시 접어둔 채 근사한 디저트 가게로 들어가산딸기초코케이크와 탄산수를 사먹었다. 난 고작 그 수준의 초보 선생이었다. 당시 학생 눈에 비친내 모습은 나의 허영과 허식이 상대방의 선망과 어우러져빚어낸 허상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허상에 대한 그학생의 신뢰 덕분에 나는 한심하고 미숙한 상태로도 고단한여정을 계속해나갈 힘을 한 줌 얻어 가질 수 있었다.
그분은 모르실 거다. 글쓴이가 얼마나 얕고 나약한 사람인지. 갖가지 예쁜 단어를 끌어와 그럴싸하게 단장한 글 속의나와 실제의 나는 얼마나 다른지. 그날 우편함을 확인하기직전까지도 사소한 일로 주변인들에게 얼마나 고집스럽고속좁게 굴었는지. 그래서 부끄러웠지만, 그렇기에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이토록 한심하고 불완전함에도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만들어 전할 수 있다면, 그게 내가 지닌 쓸모 중 하나라면, 나는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글을 쓰고, 더욱 마음을 담아서 쓸 것이다.
스토너는 수업에서 처음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읽고 세상이 다른 빛깔로 반짝이는 강렬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그 경힘은 그의 삶을 결정지었다. 하지만 그가 빠졌던 사랑은 냉정히 말해 일방적이었다. "이 소네트 의미가 뭐지?"라는 교수의 질문에 그는 변변히 답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느낌을 어떻게 언어로 설명해야 할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었을뿐이다. 그렇게 평생 스토너가 사랑했던 공부는 그에게 새침한 옆모습을 보여주었다. 힘겹게 달려가 어깨를 잡아 돌리면견고한 등을 내어보였다. 그것은 연구 대상을 온전히 장악하지 못한 연구자의 한계였으리라. 아울러 그는 딱히 뛰어난교육자도 아니었고, 그 점을 자신도 알고 있었다. 생기 넘치던 것들이 자신의 말 속에서 시들고, 감동을 주었던 것들이강의 도중 차갑게 식어버린다는 것을.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자각에 고민한 나머지, 그고민이 구부정한 어깨만큼이나 일부가 되어버린 채,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자리에서 매일의 일들을 해나간다.
392쪽에 달하는 이 소설의 이야기는 바로 그러한 일상의 연속이다. 큰 결실을 맺지 못한 노력들이 누적된 삶. 그것은 형언하기 어려운 감동을 주었다. 말하자면 소설은 천재의 실패담이 아닌 ‘삶이라는 투쟁‘이었다. 지구 저편에서 이 소설을 처음 읽던 무렵의 나는 "학위 따려고 유학 가는 건 신식민지적이라 생각해요"라고 함부로말하던 되바라진 아이였다. 새로운, 더 새로운 것을 찾으며, 내 공부는 남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 되바라진 아이는공부의 긴 여정에서 엎어지고 깨어지면서 차츰 알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남들과 다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엄정하고 깊어져야 하는지. 나 같은 초학이 망가지지 않기 위해 어떤 조심스러움을 가져야 할지도. 새침한 옆모습만 보여주는 연구 대상 앞에서 이제는 한문장 한 문장을 이어가기가 무척 고되다. 온전히 이해하지못한 이론을 한층 난해한 서술로 뭉뚱그려보려는 유혹과 싸우고, 치밀하게 파고들 지점에서 붕붕 날아다니기부터 하는논지를 붙잡아 끌어내리며 특유의 감상적 문체를 고치는 작업은 그야말로 전쟁이다. 그 난리를 치르며 만들어낸 문장들이 타전되지 못한 채 식어버릴 수 있음도 안다. 그럼에도 가끔 글 쓰다 떨려올 때가 있다. 말하고 싶은 것
이 있고, 잘 전하고 싶은 마음에 몸이 부들부들 떨릴 때가 있다. 휴강한다고 좋아서 학생들 몰래 입 찢어졌으면서도 수업하다 알아들은 눈빛들을 마주하면 선생이랍시고 자애로움이 퐁퐁 솟아난다. 함께 이거 공부하고 그다음에 저거 해봐야지 하며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스토너》를 다시 읽으면서 주인공에게 깊이 이입되었다. 아무 장식 없는 표지를 손으로 쓸어보며 자신이 책을 썼다는 사실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장면에서 학생들이 연구실로찾아오기 시작하고 과제물에 조심스러운 애정과 상상력이드러나기 시작하자 그가 기운을 얻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일에 도전하기로 마음먹는 장면에서도. 첫 페이퍼 쓰고서 좋다고 그걸 베개 아래에 넣고 잠잤던, "재밌네. 대학 수업이란게 이런 거네" 하던 학생들의 대화를 훔쳐 듣고 화장실로 달려가 문 잠그고 히히히 웃던 내 모습이 문장들 위에 겹쳐 보였다. 나와 그대,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스토너들이 떼어놓는 작은 발걸음들이 저마다의 세상 끝 날 이 소설처럼 남겨지기를 소망한다.
각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캄캄한 데 버려졌다고 낙담했을 날들이 도리어 그들의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시절이었다. 당시 미처 알지 못했겠지만, 아니 인정할 수없었겠지만, 잃어버린 대상에 대한 당위적인 그리움에 갇힌정부점소설 유유하며 애써 마음을 부정하던 그때, 둘은 화양성화(花)를 관통 중이었던 거다. 어두운 터널 끄트머
리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깨닫는 듯하다. 어떤 의미에서 그터널이야말로 찬란했음을. 그리움에 사로잡혀 뒤돌아보던우리 머리 위로 반짝이는 순간들이 하늘의 별처럼 가득했었다는 사실을. 이 역시 훗날 또 다른 그리움으로 남을 것임을. 나는 안다. 끝이라 생각해온 어느 지점은 끝이 아니다. 거기에 빛나는 것들이 새로이 채워 넣어질 것이다. 두근거리며기다릴 무엇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을 것만 같은 시기에도 우린 저마다 아름다운 시절을 하나 더 통과하는 중일 수 있다. 어쩌면 오늘도 그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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