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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자도서] 슬픈 세상의 기쁜 말 -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2년 4월
평점 :
인간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담아 쓴 이야기
그녀의 섬세한 시선으로 읽어낸 사람들은 사정 많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나또한 그런 이야기로 읽혀질 수 있을까?
나를 살아있게 하는 말을 찾아봐야겠다.
나는 언제 어디서고 그날 밤의 반딧불이와 뱃사공을 쉽게 떠올릴 수 있다(반딧불이가 사라지면 그도 연기처럼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데 내게는 이 생각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날 ‘돌고래‘와 ‘아더 사이드‘와 ‘스틸 뷰티풀‘이라는 말은 나의 ‘매직‘이 되었다. 이 말들은 처음 들은 순간부터 변함없이, 시들시들하고 풀이 죽은 나 자신으로부터 나를 떼어놓고,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고 싶게 만든다. 이 말들은내가 힘없이 늘어져 있을 때 반복적으로 나 자신에게 말을건다. ‘현실의 다른 측면을 봐봐! 다른 쪽으로 가봐! 가서 여전히 아름다운 이야기를 찾아내봐. 아직 어둠 속에 있는 인간의 목소리, 인간의 가능성에 빛을 비춰봐. 어디서나 아름
다움을 찾아낼 수 있잖아!‘ 누구에게나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은 되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 진리인 만큼이나 누구라도일생에 한번은 아름다운 세계에 눈뜨고 아름다움과 함께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것 역시 진리다. 최근 수년간은 이 생각에 의지해서만 초라한 자아를 극복하고 꺾인 무릎을 펴고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검은 물살 위에서 이리저리 외롭게 흔들린다. 그래서 ‘아더 사이드‘는 우리 모두의단어가 될 수 있다. 무엇을 원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현실의 다른 측면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다른 이야기를들어봐야 비로소 지금과 다른 삶이 가능하다. ‘아, 난 이것을 원하는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은 한 개인의 삶에 일어나는 강렬한 해방적 순간이다. ‘스틸 뷰티풀‘은 변주가 가능하다. 아무리 많은 일이 일어났어도 아름다운, 슬프지만 아름다운, 덧없지만 영원한, 슬프지만 기쁜 내 마음의 고독이 찾던 이야기들은 모두 이말과 관련이 있다. 몇 번이고 곱씹어볼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던 날들은 사랑스러운 일몰에 대한 기억처럼, 어느아름다웠던 별이 가득한 밤의 기억처럼 끝없이 떠오르는 마음속 풍경이다. 우리의 어둠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아름
답고 빛나는 이야기뿐이다. 한 사람의 운명을 알려주는 것은 모두 ‘시‘라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 거듭 나타나는 이 단어들이 나에게는 시다(그러고 보니 그날 내가 탄 배의 이름도 ‘운명호‘였다). ‘내가 그날 운명호를 타고 찾아 나선 것은 돌고래였다‘라는 짧은 문장 하나가 나에게는 내 운명을 암시하는 결정적인 시고, ‘아더 사이드‘, ‘스틸 뷰티풀‘도 모두 시다. 이 단어들에나의 수많은 현실이 달라붙었다. 나는 이 단어들에 의지해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는 세상, 좋아할 수 없는일이 가득한 세상, 수시로 등지고 떠나버리고 싶었던 세상의 ‘조금 다른‘ 일부가 되는 방식을 겨우 찾아낼 수 있었고그 단어 안에 나 자신이고 싶은 마음, 나 자신으로만 머물고싶지 않은 마음, 나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 가슴 아프게 스러지고 마는 세상의 온갖 것에 대한 애타는 사랑을 담으면서 내 삶의 형태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했다(그날 내가 돌고래를 그렇게 오래 생각했던 이유를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깨달았고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돌고래를보자 내 가슴속에 꿈 하나가 애절하게 생겨났던 것이다. ‘나도 내 삶의 형태를 가지고 싶다‘). 지금은 내 단어들이, 내 꿈이 나보다훨씬 낫다. 앞으로도 이 단어들에 의지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더 가볼 수밖에 없다.
내가 아는 한, 유사이래 인류 최고의 기쁜 자기발견은 바로 이것이다. "내가 너를 행복하게 했단 말이지, 대단하다!" 나는 시 속에서, 그리고 시적인 순간들을 만나면서 달라지고 싶다. 현실을 변신의 장소인 것처럼 살고 싶다. 특별한이야기의 힘을 믿고 우리에게 마법 같은 힘이 있음을 믿고세상에 기적이 존재함을 믿고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운명을바꿀 수 있음을 감히 믿으면서 살고 싶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을 믿어야 자신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그 가능성의 증거가 되고 싶다. "누가 그래? 내가 예전과 똑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어떤 미래가 오든 미래는 결국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다.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인간이 인간일 때 얼마나 우아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지금과 다르게 존재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난 것을 낭비하지 않는게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당신이 당신의 가장 멋진 점을 표현할 단어를 찾아내면 정말 좋겠다. 우리의 좋은 결말을 위해서 어떤 단어가 필요한지 찾아내면 정말 좋겠다. 우리가 언젠가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실컷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좋겠다. 지금은 말이 있어야 할 자리에 공허와 잔인함이 있지만 언젠가 우리의 말과 의미가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우리가 말을공유하고 있다니, 그런 멋진 일이 있다니‘라고 느낄 만한 이야기가 많아지면 정말 좋겠다. 우리가 곧잘 그 사실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지만 세상은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언제나 가장 좋은 이야기로 힘을내고, 가장 좋은 이야기와 함께 여러 가지 압력에 맞서 싸우면서 따뜻하면서도 깊게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살 수 있게된다면 기쁠 것이다. 현실을 살되 마음의 한쪽에 뭔가를 품고 현실의 일부분을 바꿀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저마다 이문제 많은 현실의 ‘해결자의 목소리‘가 된다면 기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여러 모습 중 가장 좋은 모습이 우리의 미래가된다면 정말 기쁠 것이다. 그때 잠시 땀을 닦으면서 당신을 당신으로 만든 이야기를 들려달라. 당신이 멈추지 않기 위해 필요로 했던 이야기도 들려달라. 두꺼운 고독을 뚫고 나오게 했던 존재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달라. 당신의 고유한 기쁨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나는 살아 있는 자의 귀로 듣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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