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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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온 우리의 결과다.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간다.

는 작가의 말이 진득하게 내 귀에 남아있다

진오는 국민학교 시절에 할머니 신금이에게 되물은 적이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그랬다 치고, 왜 우리 식구들은 힘센 쪽에 붙지못하고 맨날 지는 쪽에만 편들었어요?"
"왜, 약한쪽 편드는 게 싫으냐?"
"물론이지요. 너무 손해잖아요?"
그러면 할머니는 감실감실 주름살 잡힌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웃으면서 말했다.
"그때에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리고 신금이는 덧붙였다.
"오래 살다보면 알 수 있단다.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

"같이 좀 살자, 못된 것들아. 같이 좀 살아."
이진오는 그녀가 말하려던 충분한 한마디가 바로 이 말이라는걸 알아들었다.
"노동자가 높은 데로 올라와 사람들에게 자기 처지와 입장을 알아달라고 농성하게 된 것만 해두 엄청난 사회적 변화라구. 우리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어. 어쨌든 세상은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아져간다고."

나는 우리 근현대문학을 섭렵하면서 몇몇 빠진 부분이 있음을발견했다. 단편소설에 비해 훨씬 질과 양이 떨어지는 장편소설 부분과 그중에서도 근대 산업노동자들의 삶을 반영한 소설이 드물다는 점이었다. 일제강점기에 잠깐 있었던 카프의 흔적에서도 대부분이 단편소설이거나 도시빈민 일용노동자 또는 룸펜 계층을 다룬것들이며 산업노동자가 전면에 등장하는 본격적인 장편소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까지 쓰인 장편소설의 경우에도 대부분이 농민을 위주로 한 작품들이었다.
나는 이 시기의 노동운동 자료들을 살피면서 식민지 시대 이후조선의 항일노동운동은 너무도 당연하게 사회주의가 기본 이념의출발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방 이후 분단되면서 생존권투쟁에 나선 노동자들은 ‘빨갱이‘로 매도당했고, 한국전쟁이 터지고 세계적인 냉전체제가 되면서 수십년 동안의 개발독재시대에 모든 노동운동은 ‘빨갱이운동‘으로 불온하게 여겨졌다. 우리가 기나긴 분단시대를 거쳐오면서 애초의 출발점부터 북한에 대하여 민족적 정통성을 주장하기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지만, 남한 민중이 근대화의 주체가 되어 산업화를 이루고 민주주의체제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피와 땀으로 이룩한 정통성을 갖추게 되었다.

에 돌 하나를 끼워넣는 작업이 되기를 바랐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지금 혼란에 접어든 신자유주의적 세계의 모습을 자본주의 세계체제가 몰락해가면서 무엇인가 다른 질서로 향하여 가는 이행기의그것이라고 말한다. 이 고통의 기간을 줄이거나 늘리는 것은 오로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방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던 시대와 삶의 흔적은 몇점 먼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은 느리게 아주 천천히 변화해갈 것이지만 좀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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