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있어 읽고 싶었던 책을 오늘 우연히 도서관에서 만났다. 반가웠던 책들 7권 중에 제일 반가웠던 책.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자기 자신과 많이 싸워온, 싸우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겉모습을 보고 판단할 때가 많은 나같은 사람에게 이 사람은 참 가늠하기 어려운 사람일 것 같다.

커가면서 알게 된다는 세상 물정과 현실, 한계를 되도록 모르고 싶다. 내 능력으로 안 되는 것과 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해서 바보같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말이 겸손의 너스레가 아니라실제로도 그렇게 믿어서 실패할 때의 데미지가 작았으면 좋겠다. 성공이 어색하고 실패가 익숙하면 좋겠다. 시도해온 일들보다 도전해볼 다음 기회가 훨씬 더 많았으면 좋겠다. 무엇보다도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살다가 내가 나이가 들어 더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때가 왔을 때 그 이유를 싱겁게 나이나 세월에서 찾지 않았으면좋겠다. 더 이상 설레지 않는다는 것을 인생의 패배로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고 도전할 힘도 용기도 없는 것을 굴복으로는 더더욱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한테 실망했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기절할 것 같았다. 듣고 싶지 않은 말 중에서도 가장 듣기 힘든 말이었다. 실망했다는 건 나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기대를 먹고사는 내게 그 사람의 기대가 꺾였다는 건 매달려 있는 사다리 다리를 걷어차는 것인 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보다 실망했다는 말을 듣는 꿈을꾼 날의 베개가 더 축축했다. 그런 아침은 온몸이 저릿해서 하루 종일 조심하곤 했다. 어른들에게 혼이 날 때나 친구와 말다툼으로 투덕거리는 동안에도 실망했다는 말을 들으면 그 순간 뇌가 흔
들리고 앞뒤 상황이나 문맥 없이 미안하단 말이 먼저 나온다. 오해가 있다고, 잘잘못을 따지자면 내가 먼저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하고 싶은 마음은 미뤄두고 실망이란단어를 듣기 힘들어서 냅다 사과부터 하게 된다. 사이가좋지 않았던 사람이어도 내게 실망했다고 말하면 이 사람이 사실 나를 좋게 보고 있었는데 내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책을 시작하는 것이다. 실망이란 두글자는 불안해서 내가 먼저 스스로 채워버리는 수갑 같았다. 모나고 모난 나는 경계심이 심해서 그런지 잘 모르는사람은 대개 안 좋아한다. 다만 그 사람이 내게 조금이라도 호감을 표현하면 경쟁이라도 하듯이 먼저 더 많이 그에게 정을 퍼주곤 한다. 속으로 안 좋아했던 그 잠깐이 미안해서 그만큼 더 많이 좋아하게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을좋아할 때 대부분의 이유는 나를 좋아해 준다는 것이다. 컹컹대고 경계하다가 가까이 가면 꼬리가 부러질 듯 흔들어대는 시골 진돗개를 볼 때마다 꼭 나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람을 대하는 첫 번째 기준이 그 사람이 가진 나에 대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다 보니 스텝이 자꾸 꼬였다. 그때는 실망했을 때가 서로를 알아가기 가장 좋은순간이라는 것을 몰랐다. 실망은 그 사람에 대한 업 앤 다운 게임에 불과하다. 나라는 숫자를 맞추기 위해 업 다운으로 영점을 향해가는 것뿐인데, 나는 상대가 외치는 다운이 무서워 내 숫자를 바꿔갔다. 나를 너무 좋게만 보는것은 나를 나쁘게만 보는 것만큼 안 좋다는 것을 몰랐다. 나를 한없이 좋게만 봐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원래의 나보다 좋게 보는 것은 내버려 두고 나쁘게 보는것을 바로 잡기에만 급급했다. 서로에게 현명하게 실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나는 학창시절의 반 이상을 부모님께 잘못한 나는 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 허비했다. 그만큼 발전도 더뎠고 부모님께 더 큰 실망을 안겨드렸다. 첫 중간고사를 잘 못 봤을 때, 거짓말한 것이 들켰을 때, 입시에서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진로를 다른 방향으로 잡
기로 했을 때 모두가 내 모습인데 나는 부정하느라 바빴다. 그런 결과들을 인정하기에 당시의 나는 너무 작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누군가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었을 때 내가 먼저 해야하는 것은 기대에 못 미친 나도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잘 나온 사진만 내 얼굴이 아니듯이 기대에 부응한나만 내가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실수했을 때의나를 부정하면 앞으로 실망할 일만 있다. 어떤 분야에서 실력 있는 사람의 조건 중 하나는 내실력이 부족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믿는다. 상대방을 실망시켰을 때 더 자신을 객관적으로 내보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야만 그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할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할 때가 더 나은내가 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에 대한 기댓값과 다른결과가 나왔을 때의 좌절감은 익숙해지지 않지만, 오히려 더 정확한 값을 위한 판단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혼잣말을 삼키기로 한다. 업다운 게임은 적은 시도로 정답을
맞히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숫자를 알아내어 필요할 때에 외치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매일 스스로와 상대방에게 실망하고 실망시키며 답을찾아갈 것이다.
서점에서 유난히 얇은 시집을 보면 시인이 얼마나 하고싶은 말이 많았는지 생각하게 된다. 하고 싶은 말일수록하지 않는 성격의 사람들이 시간이 가는지도 모르고 시간을 달이고 달여 한 방울로 만들어 내면 그것이 한 행이다. 그동안 사랑도 인생도 건강도 그 한 방울에 같이 녹아지는지 모르고 허리가 다 굽도록 손목이 삭도록 부채질하고 살려낸 부뚜막 불씨를 보며 드는 생각을 또 종이에적어 또 주머니에 넣어둔다. 그래서 시집은 너무 뜨거워맨손으로 냉큼 잡을 수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