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대신해 말하기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 지음, 장상미 옮김 / 갈라파고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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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다 읽진 못한 책
나무를 연구한 학자의 자기 자신의 인생사와 나무를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깊이 알게 된 책

게일어로 시얼셰 saoirse는 특정한 형태의 자유를 의미한다. 시얼셰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고 자기를 표현할 자유, 원하는 대로 생각하고 믿을 자유이다. 즉 영혼과 상상력의 자유이다. 나는 시얼셰 그리고 시간을 뜻하는 아임시르 aimsir, 이 두 가지야말로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믿는다. 선데이스웰이 드리운 그림자는 내 삶을 온통 뒤덮어, 의식하는 영역뿐 아니라 의식하지 못하는 영역에서도 분명 내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청소년기 내내 나를 괴롭힌 그긴 그림자가 나로 하여금 나의 시얼셰, 나의 생각할 자유를 치열하게 지키도록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협회를 신뢰하지 않아서 아일랜드정원식물협회 단 한곳에만 유료 회원 자격을 유지하고 있다. 탐욕이 사람을 어떻게 일그러뜨리는지 잘알기에 부자가 되기를 두려워한다. 살면서 탐욕으로 망가지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내게 큰돈을 주는 사람을 경계한다. 돈과 협회는 사람의 자유를 빼앗기 십상이고,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모든 걸 빼앗기고 만다.

나는 강사라는 이 새로운 역할을 팻 삼촌과 함께하던 연구를 더 큰 층위에서 수행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광합성을 시작한 수생 단세포 클로렐라 chlorella에서부터조류藻類, 다세포 조류, 곰팡이, 이끼, 양치식물, 늘푸른나무를 거쳐 마침내 속씨식물(우리 인간만큼이나 생물학적으로 복잡한, 꽃 피우는 풀과 나무)에 이르는 식물의 진화 과정을 따라가며, 이 주요한 단계들과 기본적인 범주 사이에서 떠오른 의문이 나를 사로잡았다. 생물체는 양치식물에서 늘푸른나무로 단번에 도약할 수 없다. 그 사이에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나는 나를 포함한 학생들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양치식물과 늘푸른나무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는 생물을 추측해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강의에 그 내용을 추가했다. 지금도 기후변화에 대해 고민할 때면 나는 제일먼저 나무고사리인 딕소니아 안타르크티카Dicksonia antarctica와 기이한 중간종 웰위치아과 Welwitschiafamily,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발견되는 소철과 Cycadaceae 같은 생물종을 유심히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관다발 조직을 가진 식물 중 꽃 피우지 않고 홀씨로 번식하는 식물.
양치식물에서 늘푸른나무로 넘어가던 당시에는 지구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인간이 생존하기에 지나치게 높았다. 다행스럽게도 그때까지는 인간이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질식하고 말았을 것이다. 이후 3억 년 동안 양치식물이, 그다음에는소철이, 그다음에는 오래전 멸종한 고대 늘푸른나무종이, 그다음에는 겉씨식물이,

마지막에는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대기에 산소를 공급했다. 초록색 분자기계molecular machine는 계속 진화하면서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성능으로 줄기, 몸통, 잎,
꽃을 통해 탄소를 숨 쉴 수 있는 공기로 바꾸어나갔다. 나무는 인간과 지구상의 거의 모든 동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을 그저 유지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숲 공동체를 통해 그러한 조건을 만들어냈다. 인류가 출현할 수 있도록 길을 닦은 것이다. 우리는 나무에 갚기 어려울 만큼 큰 빚을 졌다.
그러한 과정이 내게는 너무도 중요하게 느껴져서, 로버츠의 강의를 재구성하면서 그 내용을 강의안에 추가했다. 그로써 나는 인간의 행동이 환경에, 지구와 우리자신의 건강에 끼치는 잠재적 영향력을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어린이도 이해할 만큼 간명한 진실이 거기 있었다. 나무는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즉 생명의 가장기본적인 조건을 책임지고 있었다. 지구상의 나무가 숨 막힐 정도로, 정말이지 말그대로 숨이 막히도록 빠르게 베어져 나가고 있었다. 나무를 망가뜨리면서 우리는우리 자신의 생명 유지 체계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나무를 베어내는 것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었다.

내가 ‘현장학습‘이라고 이름 붙인 그날은 따지자면 내가 받고 있던 켈트 교육과정의 일환은 아니었지만,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한 교훈을 안겨준 시간이었다. 그날아침 밭을 바라볼 때만 해도 우리가 수확을 끝낼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밭은 너무나도 드넓었고, 손을 보태러 나선 나는 너무나도 미약했다. 하지만 나는팻 아저씨를 사랑했고 농장과 드라움을 사랑했기에, 거기서 자란 보리 이삭이 못쓰게 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며 첫걸음을 내디뎠고, 결국 그두 가지 동작으로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모든 아이가 이 날의 현장학습과 같이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절대 끝까지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길로 자기를 내던지는 경험을 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목적지에 도달하는 순간 깨닫게 될 것이다. 자기가가진 모든 것을 쏟아부을 마음으로 일단 첫걸음을 내딛는다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그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 나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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