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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부터,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시선이 한 사람의 이름일 줄은 제목만 보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지금과 얼마나 달랐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시절의 여성 예술가의 가계로부터 지금을 사는 우리가 갖고 살아야 할 무언가를 이야기 해준다. 얼마나 많은 경험과 관찰로부터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는 씌어지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감탄했다.
삶에 인사이트를 발견하는 소설은 말그대로 인문학의 꽃이었음을 깨닫는다.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아하는 점에서 난정의 이야기가 공감되었고, 사랑은 단단한 돌이 아니라 매일 빵을 굽는 일이라는 말을 남편에게 건넨 화수의 마음도 내 마음 같았다. 지수처럼 살고 싶었지만, 대부분의 결정은 화수처럼 해낸 것 같다고 나를 돌아봤으며, 새의 이야기에 마음을 쓰는 해림이가 이 세상을 구원해낼 것이라 믿었다.
물을 정말 무서워하는 나에게 서핑을 버킷리스트에 넣어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 우윤도 멋졌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지만 내 마음엔 존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존재를 넘어 실존하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니 있을 것 같다는, 아니 있다는 확신이 드는 기분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작가의 힘은 이토록 대단하다.
남편과 서핑을 배워보는 나를 자꾸 그리게 된다.
빛나는 재능들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유전적인 것이나 환경적인 것을, 또는 그 모든 걸 넘어서는 노력을 재능이라 부르지만 내가 지켜본 바로는 질리지 않는 것이 가장 대단한 재능인 것 같았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질리지 않는 것. 수십 년 한 분야에 몸을 담으면서 흥미를 잃지 않는 것. 같은 주제에 수백수천 번씩 비슷한 듯 다른 각도로 접근하는 것. 사실 그들은 계속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조각하고 빚고 찍고・・・・・・ 아득할 정도의 반복이었다. 예외는 있지만 주제도 한둘이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질문 하나에 온 평생으로 대답하는 것은 질리기 쉬운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대가들일수록 질려하지 않
았다. 즐거워했다는 게 아니다. 즐거워하면서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질리지 않았다는 것이 정확하다. 그러므로 만약 당신이 어떤 일에 뛰어난 것 같은데 얼마 동안해보니 질린다면, 그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 당장 뛰어난 것같지는 않지만 하고 하고 또 해도 질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도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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