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 : 처음이라 그래 며칠 뒤엔 괜찮아져 띵 시리즈 10
배순탁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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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로 존중함으로써 우리의 다름은 평안함에 이른다.

인간의 미각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신뢰할 게 못된다. 사상 최대의 와인 사기꾼에 대한 다큐멘터리〈신 포도〉에 나오듯이 미각에 있어서 우리 대부분은 본질에 가닿지 못한다. 인간인 이상 휘장에 눈이팔리거나 명성에 취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이 다큐멘터리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순수한 형태의 감각이라는 건 애초에 없다. 즉, 취향을 말하고 판단을내릴 때마다 우리는 어떤 영향이 나에게 녹아 있는지를 각 잡고 살펴봐야 한다. 나를 둘러싼 ‘맥락‘과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신화‘
라는 것이 별게 아니다. 바로 이거다. #K이제 나는 그저 조용히 나만의 냉면도를 걷는다. 조금은 거리를 두고 평양냉면 한 그릇을 지긋하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간 우리는 너무 다닥다닥 붙어 살았다. 방지턱 하나 없는 관계 속에서숨막혀 했다. 나는 한국 사회가 생판 얼굴도 모르는사람에 대한 관심의 도가 지나친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속칭 오지라퍼가 너무 많다. 따라서 코로나시대에 굳이 유의미한 교훈을 길어 올린다면 이것이다. 우리는 그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것.
연결된 와중에 거리 두기를 억지로라도 할 수 있는기회가 주어졌다는 것.
내가 바라는 타인과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 적어본다. 상대방에게 사심은 없지만 그렇다고 무관심하지는 않은 관계. 마치 노련한 조종사처럼 서로 간의 영역과 궤도를 잘 지키고 침범하지 않으면서 그저 자기 할 일 열심히 할 줄 아는 관계. 그러면서도필요할 때는 기꺼이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관계.

그 어떤 예술이든 실재하는 삶보다 위중할 수는없다. 그러나 아주 가끔씩 예술은 우리에게 잊지 못할 경험 혹은 체험을 선물해주기도 한다. 이 두 가지태도를 ‘함께’ 가져가는 게 중요하다고 믿는다. "음악 없이는 못 살아."라며 섣부르게 선언하는 대신 이양극단 사이의 어딘가에 머물면서 가끔씩 찾아오는경이의 순간을 맞이하면 되는 거다.
단언컨대 음악은 세상을 바꾼 적이 단 한 번도없다. 역사가 증명한다. 다만 음악은, 그리고 예술은,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을 아주 조금은 바꿔줄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본다. 과거처럼 실패할 일이 없는 현재의음악 듣기란 과연 좋은 것일까.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꼴과 묘하게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 실패는 경험이라는 이름으로 호명되지않는다. 이른바 달관 세대라고도 불리는 현재의 이십대에게 최우선 가치는 오로지 생존뿐이다. 비단대한민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생존이 삶보다중요시되는 터에, 음악 듣기란 점점 더 사치에 가까운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 실패가 용납되지 않는 시대. 음악 듣기에 있어서의 실패는 곧 시간 낭비에 다름 없는 까닭이다.

더 이상 "내가 평양냉면 좀 알지."라고 자부하지않는다. 그렇게 떠들고 다녔던 과거의 나를 반성한다. 이런 지 꽤 됐다. 하기야 음악도 내가 모르는 음악투성이인데 전문 분야도 아닌 평양냉면은 더하면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언제나 명심하는 게 있다. 진정한 놀라움은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보다 내가 잘 안다고확신하고 있던 걸 실은 잘 모르고 있었다는 깨달음속에서 찾아온다는 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호기심 천국‘이다. 내게 재능이 하나 있다면, 그 대상이낯익은 것이든 낯선 것이든 호의를 발휘할 줄 안다는 점, 달랑 이거 하나뿐이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여전히 즐겁고,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때로는 등골이 서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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