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 무엇인가
김영민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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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더 벌기 위한 공부, 더 유식해 보이기 위한 공부,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공부, 즉각적인 쓸모에 연연하는 공부가 아니라고 해서, 공부의 결과에 대해 어떤 기대도없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호기심에서 출발한 지식 탐구를통해 어제의 나보다 나아진 나를 체험할 것을 기대한다. 공부를 통해 무지했던 과거의 나로부터 도망치는 재미를 기대한다. 남보다 나아지는 것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다. 어차피 남이아닌가. 자기 갱신의 체험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보고있다는 감각을 주고, 그 감각을 익힌 사람은 예속된 삶을 거부한다.
지식 탐구를 통해 자신의 어떤 부분이 달라지는가? 지식이 깊어지면, 좀 더 섬세한 인식을 하게 된다. 아시아 사람들을 얼마 만나보지 않은 서양인의 눈에는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몽골인이 잘 구별되지 않는다. 다 비슷하게들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좀 더 많은 아시아 사람들을 만나본 끝에 인식의 깊이가 깊어지고 나면, 처음보다 더 섬세하게 대상을 구별하게 된다. 음, 한, 중, 일 사람들이 다 다르게 생겼군. 마찬가지로, 소위 백인을 별로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 백인들이 다 똑같이 생긴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많은 백인들을 만나보고 나면, 명칭만 백인일 뿐, 그들의 피부가 모두 흰

것도 아님을 깨닫게 된다. 와인도 그렇다고 하지 않는가. 오랜경험을 통해 와인의 맛을 섬세하게 구별하는 이가 있기에 와인이 세분화될 수 있다. 그런 사람 앞에서 와인 맛이 다 똑같다고 말하는 것은, 와인에 대한 무지를 선언하는 것과도 같다.
잘 모르니까 다 비슷해 보일 뿐, 잘 모르니까 구별이 안 될 뿐대상을 섬세하게 판별하게 되는 일이 꼭 축복만은 아니다.
그에 수반하는 저주도 만만치 않다. 안목이 밝고 섬세해져 대상을 보다 선명하게 보게 되면, 그간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도감각할 수 있게 되지만, 그간 몰랐던 더러움도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시집을 가까이 해보라. 이제 곧 지하철역에 걸린 시들 상당수가 거슬리기 시작할 것이다. 술자리에서 읊어대는삼행시들 대부분이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아니, 그 시들 자체는 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을 참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들로부터 쓸데없이 까다로운 인간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급기야는 어느소설의 주인공처럼 이 세상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일부러나쁜 시력을 고집하게 될지도 모른다.
200그러나 섬세한 구별 없이 문명은 존재할 수 없다. 대충 그쪽으로 날아가 봐, 그러다 보면 달에 도착하게 될 거야. 이런식으로 해서 우주선을 달에 보낼 수는 없다. 방향과 거리를 섬세하게 나누고 계산하여 우주선을 쏘아 올려야 목적지에 제대로 도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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