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VS 철학 - 동서양 철학의 모든 것, 철학 대 철학
강신주 지음 / 그린비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은 ‘경험의 가능성의 조건‘을 해명하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칸트가 경험을 원초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사유한 반면, 들뢰즈는 경험을 다양하고 복잡한 조건들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주어진 경험을 정당화하려고 했다는 점에서칸트는 기본적으로 경험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주어진 경험 자체를 해명함으로써 들뢰즈는 새로운 경험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 다시 말해 새로운 경험의 생성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었던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험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에 따르면 우리 경험에는 타자라는 요소가 항상 ‘초월론적‘ 계기로 개입되어 있다. 물론 여기서 타자란 절대적인 타자가 아니라 상대적인타자를 의미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상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 그 부분을 동시에 나는 타자가 볼 수 있는 부분으로 정립한다. 내가 대상의 숨겨진 쪽을 보기 위해 돌아가면, 나는대상 뒤에서 타자를 만나게 되고 타자의 봄과 나의 봄이 합쳐질 때 대상의총체적 봄이 달성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볼 수 없는 내 등 뒤의 대상들은타자가 그것들을 볼수 있음으로 해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며, 나는 그것들을 감지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타자는 세계 안에서의 여백들과 전이를 확보해 준다.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내 앞에 아름다운 조각상이 놓여 있는 테이블이 있다고 해보자. 이 순간 나는 조각상의 뒷부분을 볼 수 없다. 만약 이때 어떤 타자가 테이블 건

너편에 있다면, 그는 내가 볼수 없는 부분까지 보고 있을 것이다. 들뢰즈에따르면 반드시 타자가 테이블 건너편에 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타자가 건너편에 있는 것으로, 그래서 마치 내가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고 있는 것처럼 간주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로부터 조각상의 입체적인 면모에 대한 경험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언제든지 타자의 자리 혹은 타자의 시선으로 직접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들뢰즈가 "대상 뒤에서 타자를 만나게 되고 타자의 봄과 나의 봄이 합쳐질 수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타자는 나의 의식이 필연적으로 "나는 ~였다" 속에서, 즉 더 이상 대상과일치하지 않는 하나의 과거 속에서 흔들리게 만든다. 타자가 나타나기 전에 예컨대 어떤 안정된 세계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의식과 구분하지 못했다. 타자는 하나의 위협적인 세계의 가능성을 표현하면서 등장하며, 이세계는 타자 없이는펼쳐지지 못한다. 나? 나는 나의 과거 대상들이며, 나의 자아는 바로 타자가 나타나게 만든 한 과거의 세계에 의해 형성되었을뿐이다. 타자가 가능세계라면 나는 과거의 한 세계이다. 『의미의 논리』비트겐슈타인 Ludwig Wittgenstein의 표현을 빌리자면 타자는 나와 삶의 규칙이 다른 존재라고 할수 있다. 이런 타자와 마주쳤을때 나는 낯섦을 느낄수밖에 없다. 그는 내가 보기에 심하게 느끼한 이탈리안 파스타를 좋아한다. 이 순간 나는 내 자신이 얼큰한 음식을 좋아했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된다. 단지 음식만 그렇게 낯설겠는가? 정치적인 입장, 미적인 취향, 성적인자극 등, 나는 타자와의 사이에서 너무도 큰 차이를 직감하게 된다. 그런데문제는 내가 그 타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계속 만나려고 할 때 발생한다. 이경우 나는 과거 자신이 살았던 안정된 세계를 자각하며, 동시에 타자를 하나의 위협적인 세계의 가능성"으로 직감하게 될 것이다. 만약 내가 변한다면, 그것은 내가 타자와의 마주침과 그로부터 야기되는 새로운 배치, 즉 아장스망agencement 을 실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경우 지금까지 내가 영위해온 삶의 규칙은 완전히 새롭게 재편된다. 타자가 없다면 나는 과거의 한 시점에 매몰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