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옛날 어느 왕이 정치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문득 이런 의문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어떤 때가 내게가장 중요한 때인가? 어떤 일이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인가?
어떤 사람이 내게 가장 중요한 사람인가?‘ 왕은 신하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어느 신하도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했고, 왕은 "내가주는 녹을 먹으며 살아온 자들 중에 내가 정말 문제에 봉착해서 묻는 것에 답을 줄 놈이 하나도 없단 말이냐" 하면서 불같이 화를 냈다. 그때 한 신하가 시골 어딘가에 훌륭한 성인이 은둔하고 있다고말했다. 왕은 당장 신하들을 데리고 그 은자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가는 길에 왕은 자객의 습격을 받았고 그 자객은 신하의 칼을 맞고도망쳤다. 왕은 가던 길을 재촉해서 은자를 만났다. 왕은 그에게도

신하들한테 물었던 세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은자는 아무 대꾸 없이 자기 일만 할 뿐이었다.
그때 어떤 남자가 피를 흘리며 뛰어와 ‘살려 달라‘고 외쳤다. 왕은 얼른 수건으로 그의 상처를 싸매서 피를 멎게 해주었다. 부상자는 고개를 들어 왕의 얼굴을 흘깃 보더니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아까 길에서 당신을 습격한 사람이 접니다.
왕께서 제 아버지를 죽였기에 복수를 하려 했던 겁니다. 그런데도나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치료까지 해주시니, 용서해주신다면 앞으로 충성스러운 백성이 되겠습니다."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왕은 은자에게 다시 앞의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은자가 답했다. "대답은 이미 다 했소. 가장 중요한 때는 바로 이 순간이고, 당신이 할 일이란 바로 저 사람을 보살피는것이고,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바로 저 사람이요."
이 이야기는 톨스토이가 쓴 단편 <세 가지 질문>의 줄거리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함석헌의 글 <이제 여기서 이대로>에서 읽었다. 함석헌은 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우리가 힘써 할 일, 다시 말해 참된일이란 멀리서 구할 것도 없고 ‘각별한 때‘에 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부족하나마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하든, 모든 때는 똑같이 소중하다. 우리 삶에 각별한 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각별한 때‘는 우리가 모든 순간을 소중히 생각할 때 찾아온다. 함석헌이 다른 글에서 쓴 역설적 표현을 빌

리자면, ‘각별한 때‘를 따로 두지 않고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할 때
‘각별한 때‘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정말 믿는사람에게는 ‘때가 장차 오지만, 지금도 그때‘라는 말이 옳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장차의 그때‘란 ‘지금의 이때‘이기도 하다는 것,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다.
‘장차의 그때‘는 아직 오지 않았으며 나는 아직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 그런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어찌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사람은 미래를 준비하는 무척 겸손한 사람일 수 있고, 제 허물을 돌아볼 줄 아는 양심의 인간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겸손과 양심이종종 행동을 늦추는 핑계, 어떤 소심함을 감추는 위장막이 될 수도있다.
매번 그렇게 많이 반성하건만, 그리고 그토록 많은 회개를 하건만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왜인가. 누군가는 그의반성과 회개가 철저하지 못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함석헌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에 따르면 오히려 ‘양심에 과민한‘
사람들은 제 잘못을 지나치게 오래 붙잡고 있는 나머지 어떤 암시에 빠져들고 만다. 내 잘못을 자꾸 지적하다 보면 점점 그 잘못에서빠져나올 힘을 잃어버리고 ‘나는 안 돼‘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양심의 가책은 사람을 창백하게 만든다. 양심이란 죄를 감시하는내 안의 공안 경찰과 같아서, 공안경찰이 지나치게 나서면 사회의활력이 떨어져 버리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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