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부란 무언가를 배우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배우는 걸까? 우리가 몰랐던 지식과정보일까? 스승은 우리에게 그런 것을 전해주는 사람일까? 1818년루뱅 대학의 한 프랑스 문학 강의실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의 이런생각을 무색하게 한다.
처음에는 선생도 학생도 참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당시덜란드령이었던 이 지역 학생들 대다수는 네덜란드어를 구사했다.
이들은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다. 그런데 프랑스인 강사는 네덜란드어를 전혀 몰랐다. 학생은 선생의 언어를 모르고, 선생은 학생의 언어를 모르는데 무언가를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가능할까. 그런데놀랍게도 그 수업을 마친 학생들은 프랑스어를 말하기 시작했고

프랑스어 문장을 거의 작가 수준으로 써냈다. 선생은 가르칠 수 없었지만, 학생들은 배울 수 있었던 것이다.
조제프 자코토! Jacotot. 당시 네덜란드어에 무지한 채로 네덜란드학생에 프랑스어를 가르쳤던, 아니 가르칠 수는 없었지만 배우게했던 선생의 이름이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 Ranciere는 자코토를
‘무지한 스승‘이라고 불렀다.(출처: 《무지한 스승>>> 학식 있는 선생이 그학식을 제자에게 전달한다는 통념에 비추어 본다면, ‘무지한 스승‘
이라는 말은 교육학의 통념에 관한 대단한 도발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자코토의 교수법, 즉 가르칠 수는 없었지만 배울 수는 있었던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살펴보자. 자코토는 자신과 학생들을 연결할 끈을 하나 찾았다. 당시에는 프랑스어-네덜란드어대역판으로 출간된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이야기책이 있었다. 이 책에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함께 실려 있었기에, 자코토는 학생들에게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참조해서 프랑스어를 배우게 했다.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텍스트 일부를 암송하게 하고 그것이 잘되는지만 확인했다. 자코토는 프랑스어 철자법도, 동사 변화도 도무지 가르칠 수 없었다. 네덜란드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신이 아는 단어에 상응하는 프랑스어 단어를 보고는 이치를 깨달았다. 선생인 자코토는 여전히 네덜란드어를 말하지못했지만, 학생들은 어느 순간부터 프랑스어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코토가 가르치지 않았고 가르칠 수도 없었던 프랑스어의

철자법과 동사 변화를 이해해버렸다. 재미있는 사실은, 스승인 자코토 자신도 학생들이 했던 체험을겪어봤다는 점이다. 1792년에 그는 중학교의 수사학 선생이었다.
그때는 프랑스 혁명 직후였기에 정세가 불안정했다. 그해에 무장봉기에 대한 호소를 듣고 그는 곧바로 포병대에 입대했다. 우연한 상황에서 동료의 추대를 받아 장교가 된 그는 별수 없이 포탄의 궤적을 이해해야 했는데, 놀랍게도 수준급의 포수 실력을 발휘했다. 수사학 교사이자 라틴 문헌학자였던 그가 대단한 포탄 사수가 된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는 화약을 다루는 부서에 얼마간 근무한 뒤에 군에 입대한 노동자에게 속성으로 화학을 가르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된다. 얼마 뒤에는 신설된 이공계 고등교육기관인 ‘에콜 폴리테크닉‘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게 됐는데, 그와중에 수학자가되어 디종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쳤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그는 나중에 히브리어까지 가르쳤다. 항상 상황은 너무 위급했고 여러 경우에 그는 스승 없이 해내야 했다. 그때마다 그는 자신에게서 배우는 능력이 발휘된다는 걸 느꼈다.
언뜻 보면 대단한 능력자, 대단한 천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우리가 자코토를 천재라고 불러야 한다면, 천재성은 그의 화려한경력에 있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천재성은 자신의 경험 속에서도출해낸 결론, 즉 자신은 천재가 아니라는 것, 인간은 모두 똑같은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 자신이 천재라면 모든 인간이 천재라

고 하는 결론을 도출한 데 있다.
"물론 이것이 곧 스승이 쓸데없는 존재라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것은 배움의 과정 중에 스승이 어디쯤에서 어떻게 개입하는가이다.
분명 자코토는 아이들에게 학식을 전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무언가를 하게 했다. 굳이 말하자면, 그는 아이들을 어떤 상황 속에몰아넣었다. 배움의 의지가 발휘되어야 하고 또 발휘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배우는 자들이 혼자 설 수 있도록 했다. 자코토 자신도그랬고, 나중에는 그의 학생들도 그랬다. 그가 개입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학식 쪽이 아니라 의지 쪽이었다. 그는 제자로 하여금 선생의 내면에 있는 지식에 도달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자 안에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돕는 선생이었다. 자코토는 입버릇처럼말했다고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들은 무엇이든할 수 있다"고 당신과 동일한 지적 능력이 명사도 만들었고, 수학기호도 만들었으며, 책을 썼고, 그림도 그렸다고.
사실 지적인 능력을 포함해서, 인간의 ‘능력‘은 잠재적이어서 그것이 모두에게 똑같이 부여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우리가 잴 수있는 것은 단지 지적 능력이 실현된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현실에서 한 인간의 성취가 차등적 능력 때문인지, 동일한 잠재 능력의 차등적 발현 때문인지 알 길이 없다. 따라서 ‘인간의 능력은 평등하다‘는 것,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선험적으로 정당화할 수 없는 믿음이다(물론 그 반대, 즉 ‘인간의 능력은

불평등하다‘는 것 역시 믿음에 불과하다). 내생각에 자코토의 위대함은 그런믿음이 아니라 그것을 입증하려는 노력에 있다. 그는 누군가가 어떤 능력을 발휘하지 못할 때 그것을 능력이 불평등한 증거로 삼지않았다. 대신에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돕고자 했다.
이것이 그가 평등을 입증하는 방식이었다.
아마도 자코토 역시 세상에 ‘바보들‘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가 내린 ‘바보‘의 규정은 남들과 다르다. 바보는 능력이 없는 자가 아니다. 바보는 다만 ‘욕구가 멈추어버린 자들‘, ‘의지가 꺾인 자들‘이다. 의지가 꺾인 곳에서 지능은 발휘되지않는다. 불평등의 현실을 본래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일 때, 또 현실사회에서 우월한 자들이 실제로 자신보다 우월한 자들이라고 생각해버릴 때, 우리는 정말 ‘바보‘가 되고 만다. 그러니까 ‘바보‘는 자신의 부족함을 아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라, 현실적 차별을 그대로인정하고 심리적으로 수긍하기 위해 자기 능력을 부인하고 자신을무시하는 사람이다.
자코토의 철학(그리고 그에 대한 랑시에르의 해석)은 스승과 교육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문제는 식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지능에서 열등하다고 믿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고, 그들을 자신들이빠져 있는 늪에서 빼내는 것이다. 무지의 늪이 아니라 자기 무시의늪에서 말이다." 교육이란 학생의 머릿속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일이 아니라 그들을 각성시키는 일이다. 내가 아는 것을 그가 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해방된 인간임을 아는 것, 그 자신이 능력자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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