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기능을 익히는 방법을 만들고 익히게 하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인가?
관찰을 하면 관찰하는 방법을 알게된다는 말인데
잘 하는 방법을 교사가 안내하는 것이 교사의 책무인 것인가?

데카르트는 진리를 얻기 위해 우리에게는 ‘모루’와같은 ‘사전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므로 그것을 얻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준비 없이 곧바로 진리를 얻는 일에 착수해서는 안된다고. 그에 대해 스피노자는 진리를 얻기 위한 사전 준비는 없다고 말한다. 준비는 그 ‘준비를 위한 준비‘의 문제를 계속 제기할 것이고, 마치 공부를 한다면서 연필만 깎고 있는 학생처럼, 인식은 지연되고 결국에는 회의주의자들처럼 우리에게는 인식할 수 없다고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사람들은 실제로 금속을 연마하고 사유를 한다.
하지만 스피노자 식으로 말하자면 삶을 생산하기 위한 선행조건 같은 것은 없다. 방법이란 공부의 선행물이 아니라 공부의 결과물이다. 예컨대 수영법을 알고 난 후에야 물에 들어가 수영을 할 수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물에 들어가 조잡하게라도 수영을 시작한뒤에 우리는 수영법을 알게 된다. 사실 ‘수영법을 안다‘는 말은 ‘수영을 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니 ‘수영을 하는 것‘과
‘수영을 하는 방법‘은 별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수영을 할 수 있는 한까지 우리는 또한 수영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셈이다.
데카르트가 든 예시에 스피노자의 생각을 풀어보자면 이렇다. 아마도 처음 공부를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모루‘같이 세련된 것이 곧바로 주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망치로 쓸 수 있는 것은 주변에 널린자갈에 지나지 않고, 집게라고 하는 것은 그저 나뭇가지에 지나지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인식의 시작이고 공부의 시작이다. 우리가 그것들로 뭔가를 만들어내는 한에서 말이다. 그다음에는 부싯돌을 서로 부딪쳐 불을 만들어내고 그 불로 청동을 뽑아낸다. 청동으로 만든 망치로 철광석을 캐내서 철을 추출하고 결국에는 모루도 만들어내고 투구와 칼을 생산해낼 것이다. 투구와칼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루‘는, 청동 망치가 그렇고 나중에 얻는투구와 칼이 그렇듯이, 삶의 과정에서 얻는 것일 뿐 무슨 절대적인사전 준비물이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이 자갈과 나뭇가지뿐이어서 아직 공부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공부를 늦추는 핑계일 수는있어도 공부에 대한 참다운 인식은 아니다. 공부는 언제든 할 수있고, 당연한 말이지만, 바로 시작함으로써만 시작되는 것이다. 공부란 자신이 가진 미약한 것에서 시작해서 계속해서 삶을 생산하고 더 나아가는 것이지, 어떤 방법을 알아내서 단번에 도달하게 되는 게 아니다. 진리에 이르는 방법은 따로 없고 진리가 가는 길이진리의 방법이다. 그리고 공부란 그 길을 스스로 내면서 나아가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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