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10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거사를 치러내는 한 어른의 흔적이 아이의 글에 적혀 있다. 글쓰기 수업에서 문득 떠올렸을 것이다.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더라?‘
하며 엄마의 대사를 되살렸을 것이다. 틀리게 옮기지 않으려 과거를 유심히 돌아봤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작업이 글쓰기의 가장 좋은 점일지도 모르겠다. 무심코 지나친 남의 혼잣말조차도다시 기억하는 것. 나 아닌 사람의 고민도 새삼 곱씹는 것. 아이들이 주어를 타인으로 늘려나가며 잠깐씩 확장되고 연결되는 모습을 수업에서 목격하곤 한다.

동물을 가장 많이 귀여워하는 시대이자 동물을 가장 많이 먹는 시대를 살고 있다. 외면하는 능력은 자동으로 길러지는 반면,
직면하는 능력은 애를 써서 훈련해야 얻어지기도 한다. 무엇을보지 않을 것인가. 무엇을 볼 것인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하며 수업에서 나온다.

스물여덟 살의 나에게 원고지를 제출하고 긴장된 자세로 서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일기장을 낸 뒤 콩닥콩닥하던 내 가슴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글을읽어내려가는 나의 옆얼굴을 조심스레 살핀다.
그런 기색을 느끼며 나는 아이들의 글을 읽는다. 듬뿍듬뿍반응하며 읽는다. 말로는 하지 않는다. 그가 문장을 쓰는 데 들인 수고에 비해 내 말은 너무 쉽고 가볍기 때문이다. 볼펜을 들고 아이의 마지막 문장 아래에 코멘트를 적는다. 코멘트를 적다가 금세 불안해진다. 신형철 평론가가 썼듯 글쓰기가 아주 느리게 말하는 일이라면, 느린 말하기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아이가들인 노력을 교사는 헤아려야 할 텐데, 자꾸 중요한 걸 놓친 기분이 들어서다.

보여줄 수 있는 일기를 쓴날들이 쌓이면 언젠가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쓰게될 테니까. 보여줄 수 없는 일기를 쓴 날들이 쌓이고 또 쌓이면 다시 모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글을 완성하게 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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