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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미술관 - 다정한 철학자가 들려주는 그림과 인생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평점 :
이진민 작가의 다른 책을 읽어 본 적이 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그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고민해본 듯한 또 독자와 대화하는 따뜻한 말투가 기억에 남는다. 이번
책은 ‘근육, 마녀, 거울, 슬픔, 서투름, 사소함, 직선과 곡선, 앞과 뒤, 너와
나’ 라는 9개의 키워드와 관련된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파헤치며 철학과 문학을 통해 어렵지 않게 풀어낸다. 몇백
년 전의 미술 작품을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보기도 하며 지금 현대의 시선으로 그림 속 인물을 이해해보기도 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은
메두사였다.
흉측한 뱀으로 가득한 머리를 가지고, 그녀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모든 사람은 돌이 된다는 신화. 이런 메두사의 캐릭터는 무섭고 강렬해 이목을 끄는데 화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라 여겨져 다양한 그림이나 조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이런 무시무시한 캐릭터가 본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신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메두사는 지혜의 여신 아테나를 섬기는 신전의 무녀였는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메두사의
아름다움에 취했다는 이유로 그녀를 신전에서 강제로 범한다. 이 일로 그는 아테나의 진노를 산다. 하지만 아테나는 강대한 포세이돈에게 벌을 내릴 수 없었고 엉뚱하게도 자신의 신전에서 그런 행위를 벌였다는 이유로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뱀으로 바꾸고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모든 자가 돌이 되는 저주를 내려버린다. 메두사는
독신서약을 하여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남자들을 모두 거절하고 철저히 피해자였음에도 형벌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더 억울한 것은 이렇게 괴물로 변해버린 메두사는 참수될 뿐만 아니라 목이 잘려서도 안드로메다 공주를 구하는 데 이용되어 안식을 이루지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보고 프란츠 폰 슈투크의 <메두사>를 보면 조금 다른 느낌이 든다. 이전에 무서워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얼굴에는 공포와 억울함이 담겨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날 메두사는 여전히 ‘괴물, 참수해야 하는 대상’으로
그려져 조롱과 혐오의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이런 메두사의 이야기를 알아본 사람들이 생겨났다. 엘렌 식수의 에세이에 쓰였듯, 그녀를 괴물로 만든 건 그녀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뿐이라고 묘사되기도 한다. 메두사는 이제 강하고 분노할 줄 알며 굽히지 않는 여성의
이미지로 활용된다. 분노가 강렬한 에너지로 표출되는 모습에 매력을 느껴 이탈리아 브랜드 베르사체의 로고로도
등장할 만큼 메두사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 고통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림 뒤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이제 나 또한 피하지 않고 그녀의 눈을 더 차분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신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슬픔과 서투름, 앞이 아니라 뒤의 진실을 보는 태도 등 인생의 여러 이야기를 작가의 따뜻하고 깊은 고민과 함께 풀어나간다. 책 안에 담긴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가진 삶을 조금 다르게 보게 되었다. 어렵지
않고 따뜻하게 풀어나가니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 예뻐야 가꿔야 하는 무슨 라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삶 속에서 휘청거리지 않고 단단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중심선. 그런 선이 무너지지 않게 다듬고 정돈하는
것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기능임을 깨달았다. P.37 1-1.근육
🏷️ 몸 속에 몰랐던 근육을 찾아내듯 하나씩 새로운 것을 만나는 삶. 익숙함 속에서도 낯선 감각을 깨우는 은은한 도전.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는 최선을 다해 동사로 살아갈 근육이 필요하다. p.44 1-1.근육
🏷️ 알브레흐트 뒤러의 1514년 작 <멜랑콜리아 1>이라는
작품
속에서는
여성인
듯하면서도
남성인
듯한
인물이
천사의
날개를
단
채
악마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게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여성적이기도
하고
남성적이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다. 상대를
괴물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싶을
때, 그
손가락으로
내
안의
괴물을
먼저
더듬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마녀를
닮은
수많은
단어를
만날
때마다, 슈투크의
그림
속
눈동자를
떠올리면
좋겠다. p.83 1-2.마녀
🏷️ ‘기억에 남을 만한’ 경험을 꾸준히 만드는 것은 결국 내가 그 경험을 ‘좋은 기억으로 남기는’ 일과 관련된다. 둘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카이로스적인 순간은 결국 마음과 관련된다. 우리 가족 중에서 나만이 나무 밑에서 그런 감정을 느꼈듯이, 그 순간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누리려는 마음이 그런 잊지 못할 순간을 만든다. p.108 1-3.거울
🏷️ 하지만 슬픔은 섬세히 물어도 공명이 어려운 감정이다. 각자가 가진 슬픔의 회로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기쁨에는 교집합이 많지만, 우리가 슬픔을 느끼는 지점과 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각자의 고유한 식을 가진 함수 같은 것이다. 그저 물을 수 밖에 없다. 물어도 닿지 않을 확률은 높지만 혼자 슬퍼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은 닿을 것이기에. p.145 2-1.슬픔
🏷️ 서투르게 고민하는 그 거친 시간이 사랑이다. 매끄러움에 대한 강박이 오히려 사랑을 미끄러져 넘어지게 만든다. 인간은 모두 서툰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세상을 좀 더 편안하고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이다. p.177 2-2.서투름
🏷️ 앞서도 언급했듯이 음악이 되려면 각각의 음이 다른 소리를 내며 서로 곁은 내주어야 한다. 소중한 사람이 계속 소중할 수 있으려면 사이에 바람이 불게 하고 출렁이는 바다를 두어야 한다는 지브란의 말을 이제는 꼭 연인 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소중한 관계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껴안을 때는 전력을 다해 껴안아야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놓아주어야 한다. p.314 3-3. 너와 나
🏷️ 인간은 항온동물이지만 마음의 온도마저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온도가 있고 그 온도를 넘나들며 여려 겹의 사람으로 산다. 따뜻해야 피는 꽃이 있고 서늘해야 피는 꽃이 있다. 렛 잇 고, 흘려보내고 맞는 여백. 그렇게 시원해진 곳에 새로운 사랑의 자리가 생긴다. P.316 3-3. 너와 나
* 본 게시물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