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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과 비상구 - 학교는 모르는 몸과 마음들 ㅣ 이매진의 시선 21
오유신 지음 / 이매진 / 2024년 3월
평점 :
책을 쓴 사람으로서 반응이 궁금한데
제가 유일하게 보는 알라딘에 평이 없어 스스로 남겨봅니다.
말 그대로로 '마이리뷰'네요.
책을 쓰며 여러번 읽었지만 단행본으로 또 읽으니 신기했습니다.
책을 만드는 일은 저에게 밥 짓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쌀을 드렸는데 편집자는 밥을 만들었습니다.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물성이었습니다.
제가 여러번 원고를 수정했지만 한 권의 책이 되어 손으로 종이를 넘겨보니
글을 읽는 맛이 다르더라고요.
내용을 본다면 제 언어로 쓴 말들이라 낯설지 않고
여러번 읽어서 빨리도 읽힙니다.
제 나름대로 펀치라인(?)이라고 생각하고 쓴 문장도 잘 보이더군요.
반대로 공감대가 없다면 뻔한 문장으로 읽을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습니다.
교육, 몸, 젠더, 폭력, 장애, 질병, 돌봄, 동물과 같은
유행(?)하는 테마는 다 넣은 것 같은데
트렌드에 맞춘 것도 있지만
트렌드가 제게는 사람들이 알고 있고 인식하고 있던 것이 언어화되고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라 보기에, 그리고 세상 많은 일들은 하나의 기준으로 설명하기 어렵기에 짬뽕스런 글이 되었네요.
인터뷰를 하며 많은 생각을 했지만 역시 애정이 가는 부분은
장애가 있는 교사들과 만난 16장입니다.
편집자님도 강렬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저는 비장애인이라 오만하고 시혜적으로 보일 수 있음을 경계하며 썼습니다.
장애가 있는 몸들이 오히려 사회의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은 정희진 선생님이 영화 〈작전명 발키리〉를 주제로 쓴 기고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썼습니다. 이 기고문의 제목은 '국가는 어떤 몸이어야 하는가' 입니다.
17장도 동물을 돌보고 동물을 다르게 보려했는데요. 17장은 사실 저명한 젠더 연구자 잭 핼버스탬이이 쓴 《Wild Things》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했습니다. 동물과 좀비를 다르게 보는 인식에서 배웠습니다. 강아지들 떼샷이 등장하는 영화 〈화이트 갓〉을 다루죠.
이 두 장은 르포처럼 본 것과 들은 것을 썼는데요. 다양한 몸 또는 동물과 관계 맺는 다른 모습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몸 각본과 동물과 관계 맺을 때 사용하는 각본이 유일한 각본이 아니라 여러 각본 중 하나라는 점을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사람들이 목차를 봤을 때 다 알만한 내용이라고 생각했을까 궁금하네요.
절대 그렇지 않게 하겠다고 생각하고 썼고
읽으면서도 이게 이런 이야기로 빠진다고? 생각하길 바라며 썼습니다.
단순한 설명으로는 도저히 해명하지 못하는 삶의 층들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다시 읽어보아도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교사들이 원하는 교육 도서도, 고급(?) 독자들이 읽을만한 이론서도 아닌 책 같기도 했습니다. 저는 사실 그래서 더 좋은데 말이죠. 봉준호 감독의 영화 〈플란다스의 개〉를 좋아하는데요. 스릴러인지 멜로인지 드라마인지 모를 오묘한 영화는 어떤 면에서 장르라는 개념을 조롱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비디오 가게 점원이 이 영화를 어느 칸에 둘지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봉준호 감독이 말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말도 있긴 하죠. 분류 자체가 사실은 임의적입니다.
영화를 검색하며 더 알게 된 내용인데 이 영화를 비디오 가게에서 골라서 본 사람은 실제로 있었습니다. 송강호라는 배우인데요, 아주 재미있게 봤다고 밝혔더라고요. 영화를 본 다음 날 봉준호 감독을 만났는데 영화 잘 봤다고 했다는군요. 당시 둘은 초면도 아니었지만, 긴밀한 사이는 아니었다는 군요. 봉준호 송강호는 이후 살인의 추억, 괴물, 설국열차, 기생충에서 만나죠. 저에게도 송강호 같은 사람이 생길까요? 비디오 가게는 이제 사라졌지만, 집 근처 공립 도서관에는 제가 쓴 책이 들어와 있습니다. 물론 제가 신청했습니다. 저만 알아보는 일종의 이스터 에그입니다. 신간 서적 칸에 이 책이 빠져있지 않는 걸 자주 지켜봤죠. 그러다 누군가 빌려 간 사실을 확인하면 신기합니다. 이상한 놈 같다고요? 당신도 책을 써보면 독자가 궁금해질겁니다.
이 책을 준비하던 중 모 작가가 남 이야기 말고 자기 이야기를 먼저 써보라고 했습니다. 내 이야기를 쓰기. 내 이야기를 쓰기. 왜 써야 하는지, 쓰면 누가 볼 수 있는지 고민했습니다. 내 이야기가 나의 경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생각 이야기라면 이 책도 당연히 내 이야기입니다. 내 이야기가 필요한 이야기인지는 여전히 확신하지 못하지만 확신이 필요한가 싶기도 했습니다. 한 권의 책에서 저자가 확신을 가졌는지 보다 독자가 삶에 적용할 자원을 얻었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끝으로 아름다운 사람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지만, 책을 읽은 사람은 흔적을 남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