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의 질서 세창클래식 6
미셸 푸코 지음, 허경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담론을 벗어난다는 말에도 담론이 있다. 화제, 토픽, 화두로서의 담론이 아닌, 인식가능성과 인식불가능성을 주조하는 담론. 이 담론은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즉 사물에 대한 지식, 분과학문, 분류, 체계, 질병 등 지식들이 사실은 권력적인 것이었음을 담론을 다루며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지음, 노고운 옮김 / 현실문화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우리 인간이 마치, 진공에 사는 듯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같은 방식으로, 식물과 동물 혹은 돌과 기후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그들이 인간 없이 사는 듯 이야기를 한다."(2011년 인터뷰 중 애나 칭의 발언)


이 책의 주장은 간결하지만, 이 주장에 이르는 사례들은 다소 지엽적이다. 사실, 이런 지엽성은 정보 제공의 목적보다는, 성실한 인류학자로서 애나 칭이 관찰하고, 경험하고, 발견한 것들을 번역한 것이기에 납득 가능하다.


일단 이 책에 나오는 버섯은 송이버섯이다. 한국에 있는 양송이버섯과 새송이버섯과는 속(Genus, 屬)부터 다르다. 그리고 송이버섯의 '송'은 소나무 송(松)을 쓴다. 한국적 맥락에서 보아도, 소나무와의 관계가 드러난다. 송이버섯의 역사를 그려내는 이 책은, 송이버섯이 자라나기 위해 필요한 맥락들 그리고 비결정적인 순간들에 주목한다.


송이버섯 자체는 혼자서 성장할 수 없고, 소나무와 같은 숙주 나무가 필요한데 숙주와 연결되는 방식뿐 아니라, 토양의 상태와도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 어느 것도 송이버섯의 생성과 소멸 과정을 '과학적으로' 추적하긴 어렵다. 송이버섯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필요한 다중적인 마찰들, 의도치 않은 행위들, 개입들은 우리에게 어떤 앎을 제공할까?


먼저, 자본주의와 주변자본주의를 생각하게 한다. 자본주의의 회로에선 채집과 선별, 가공 그리고 판매의 과정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송이버섯의 생성 과정에는 자본화(상품화) 과정에서 빗겨난 비인간 행위자들의 협력과 경쟁 과정뿐 아니라, 이윤 동기와 함께하는 개인적 가치와 개인적 동기와 같은 자본주의에 온전히 담기지 않는 맥락들도 포함되어 있다. 어떤 면에서, 자본주의는 이와 같은 과정을 '상품화'를 통해 자본화하는데(마크르스적으로 말하면 착취하는데) 이러한 자본주의 '구제 축적'을 초과하는 이야기들과 역사들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일깨운다.


불확정성(indeterminacy)과 불안전성(precarity)-달리 번역하자면 비결정성과 위태로움-은 송이버섯이 연결시켜주는 레이어들을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다. 단일한 결과를 향한 과정을 말하는 진보 서사, 자연을 사람이 살지 않는 태곳적인 장소거나 자연 자원을 착취하는 선주민이 산다는 식으로만 보려는 제국주의적 서사로는 담지 못하는 측면을 버섯의 레이어들은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이 책이 애나 칭의 이전 저작과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이전 저작들에 비해 다중의 지역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 여왕의 영역에서》나 《마찰》은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섬의 칼리만탄의 메라투스 다약 지역에서 수행한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하나의 지역에(정확하게 표현하면 차이가 있는 여러 구역이 있는 지방에) 글로벌 자본주의가 이미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인류학 서술이었다면, 이 책은 다양한 지역의 송이버섯 공급망과 그곳에 접속한 인간 행위자들과 비인간 행위자들을 등장시켜-마치 해러웨이의 장황한 SF적 글쓰기처럼- 이들간의 복잡한 관계 맺음을 보여준다.


《마찰》에서는 숲을 이해하는 거주민들의 방식과 숲을 지도로 표현하여 이해하려는 외부자들의 방식(제임스 스콧 식으로 말하면 '가독성'). 글로벌(미국) 환경주의의 영향을 받은 환경주의자들과 목재 기업들과 화전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거주민들의 경합하는 관계성이 잘 드러났다면, 이 책은 송이버섯이라는 식물도 동물도 아닌 지위의 비인간 행위자에 좀 더 집중한 모습이었다. (이 역시 해러웨이의 다소간의 변모가 떠오르는데, Gender라는 어휘의 번역 가능성을 고민하던 입장에서 촉수적인 사고와 쑬루세를 이야기하는 -물론 변모라고 표현한 전후가 상이하다는 것은 아님-모습이 떠오른다)


이 책이 주는 위안이 있다면, 그것은 폐허에서 사는 것에서도 의도하지 않은 가능성들이 잠재해 있다고 생각해 보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손상된 행성 안에서의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 송이버섯이 자랄 수 있게 만든 목재 시장의 침체. 우리가 끝이라고,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 인간 행위자가 고려하지 못하고, 고려할 수 없는 가능성이라는 것이 송이버섯처럼 피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가능성 앞에서 절망의 확신은 섣부른 것이 아닌지 생각했다.


살만한 삶, 거주가능한 지구의 가능성은 좁아지고 있다지만, 이 좁은 영역에서도 아직은 결정되지 않고, 불안정하지만, 불쑥 튀어나와서 부정할 수 없는 현실로 자신을 선보이는 이 가능성들을 믿어볼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과 동시에, 인간에겐 치명적이지만 다른 비인간 행위자들에겐 치명적이지 않은, 혹은 모두가 치명적인, 혹은 알 수 없는 결과에 대한 인간종으로서의 불안도 품게한다.



P.S 번역 작업은 아주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문한 제가 읽어본 바로는, 애나 칭은 자신만의 독특한 어휘법를 자주 사용합니다. 기존의 용법과 좀 안 맞거나 어색한 표현을 쓰는데, 한국어로 번역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이 책은 과학적 혹은 식물학적 개념, 일본어 서적 혹은 인명 등 전문성이 필요한 부분도 등장하기에 번역이 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이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 - 만성질환 혹은 이해받지 못하는 병과 함께 산다는 것
메건 오로크 지음, 진영인 옮김 / 부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값진 책이고 많은 서지 사항이 있지만 한국 번역이나 출판본에 대한 정보는 없는 듯하여,

남겨봅니다. 저자가 언급하는 저작 중 일부는 접해봤기에 유익한 서지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것 같아 써봅니다.

저자도 이 책 말미에 '참고 문헌'을 실은 만큼 저자의 의도와도 부합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학 저널에 실린 아티클을 비롯한 아티클 제외, 단행본만 적어봅니다.

(이 리스트 자체가 질병과 통증을 생각하는 데 필요한 책들의 모음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쉽게도 번역 안 된 책들이 더 많긴 합니다. 또한, 반례로 사용하는 서지도 있습니다

2023.08.15 기준)



《면역에 관하여》- 율라 비스, 열린책들, 2016

《언다잉》- 앤 보이어, 플레이타임, 2021

《미생물군 유전체는 내몸을 어떻게 바꾸는가》 - 롭 디샐·수전 L. 퍼킨스, 갈매나무, 2018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 마야 뒤센베리, 한문화, 2019

《생명의 지배영역》- 로널드 드워킨, 로도스, 2014

《긍정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부키, 2011

《200년 동안의 거짓말》- 바버라 에런라이크·디어드러 잉글리시, 푸른길, 2017

《몸의 증언》- 아서 프랭크, 갈무리, 2013

《어떻게 죽을 것인가》- 아툴 가완디, 부키, 2022

《누런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궁리, 2022 (중 단편 <누런 벽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민음사, 2012

《듄》- 프랭크 허버트, 황금가지, 2021

《우리의 아픔엔 서사가 있다》- 아서 클레인먼, 사이, 2022

《바람의 문》- 매들렌 렝글, 문학과지성사, 2007

《살림 비용》- 데버라 라비, 플레이타임, 2021

《암 일지》- 오드리 로드, 후마니타스, (아마도 근간?)

《덕의 상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문예출판사, 2021

《즐거운 학문 메시나에서의 전원시》- 프리드리히 니체, 책세상, 2005

《사색의 부서》- 제니 오필, 뮤진트리, 2016

《의사의 감정》- 다니엘 오프리, 페가수스, 2018

《침묵의 추구》- 조지 프로흐니크, 고즈윈, 2011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올리버 색스, 알마, 2012

《STRESS 스트레스》- 로버트 새폴스키, 사이언스북스, 2008

《통증 혁명》- 존 사르노, 국일미디어, 2017

《TMS 통증치료혁명》- 존 사르노, 승산, 2006

《고통받는 몸》- 일레인 스캐리, 오월의봄, 2018

《사랑은 언제나 기적을 만든다》- 버니S. 시겔, 고려원, 1993

《앨리스 깨어나지 않는 영혼》- 수전 손택, 이후, 2007

《은유로서의 질병》- 수전 손택, 이후, 2002

《의학, 정치, 돈》- 폴 스타, 한울(한울아카데미), 2023

《힐링 스페이스》- 에스더 M. 스턴버그, 더퀘스트, 2020

《보이는 어둠》- 윌리엄 스타이런, 문학동네, 2002

《아픈 것에 관하여 병실노트》- 버지니아 울프, 두시의나무, 20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이지 않는 질병의 왕국 - 만성질환 혹은 이해받지 못하는 병과 함께 산다는 것
메건 오로크 지음, 진영인 옮김 / 부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가면역질환을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의 질병 서사이다. 어떤 면에서는 반-서사에 가깝다. 의학적 진단으로 품을 수 없는 아픔을/상태를 가진 몸. 신체 증상 장애나 여성의 스트레스로 환원 불가능한 증상의 몸. 현대 서양 의학으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몸과 통증에 대해 썼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지털 세대의 아날로그 양육자들 - 통제와 차단, 허용과 방치 사이에서 길을 잃은 디지털 시대 육아 탐구 보고서
소니아 리빙스턴.얼리샤 블럼-로스 지음, 박정은 옮김, 김아미 감수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계급, 인종, 장애 정도 등 여러 격자와 디지털 문화와 양육이 겹치는 부분을 잘 드러낸 책입니다.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실제 경험을 포착하는 장면들이 유익했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