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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a love letter to my city, my soul, my base
유현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9년 2월
평점 :
현대 도시가 아름답지 않은 이유를 깨달은 곳이다.
산토리니섬에 가면 바위섬에 만들어진 어촌이 있다.
산토리니가 아름다운 이유는 우선 집들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p. 141 산토리니
내가 아주 좋아하던 TV 프로그램이 있다.
좋아하'던' 이라는 과거형을 써서 아쉽기까지 할 정도로 좋아한 [알쓸신잡] 이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도통 TV 앞에 앉지도 않던 내가 무려 다시보기로 시즌 1,2,3을 모두 다 보았다.
얼마나 좋아했냐하면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 갈 때마다 국내여행지추천하는 곳으로 [알쓸신잡] 에 나온 대로 코스를 짰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도시 건축 전문가로 등장한 유현준 교수가 있다.
해박한 지식으로 건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던 그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도시 건축 에세이를 냈다.
전혀 어렵지 않다.
우선 내가 이해했으니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를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소설로만 향하는 나의 감성도 이번에는 이 책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는 일단 사진이 많다는 거고, 둘째로는 텍스트가 짧은 데다가 단순하다는 거다.
마치 꼼꼼하고 세세한 여행 안내서 대신 사진으로 대체한 여행서를 보는 듯 하다.
이제부터 쓸 건 유현준 교수와 나의 생각이 일맥상통하는 소재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첫번째는 바로 산토리니이다.
우리나라는 면적이 크지 않은 편이라 미국과 같이 땅이 넓은 나라처럼 1, 2층의 주택이 아니라 고층 아파트를 짓는다.
물론 여기에는 특정 대통령때부터 이어진 부동산 투기라는 것도 크게 한 몫 하지만,
어쨌든 공간 활용도의 측면에서 아파트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성냥갑처럼 다 똑같은 아파트로 인해 눈에 피로감을 느낀 적이 다들 있을 거라 믿는다.
외국인들도 빽빽한 성냥갑 도시를 보고 놀라고들 한단다.
조금 다르게 지을 순 없을까.
최대한 많은 인원이 경제적으로 거주해야하는 주택은 차치하고서라도 멕시코처럼 알록달록한 식당은 어떨까.
그래서 그리스 산토리니가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물론 직접 방문한 여행객들의 말에 따르면 가까이서 보면 오래 되어 지저분하고 실제로는 집이 아닌 교회라고 한다.
어찌됐든 사람도 건물도 개성보다는 남의 눈을 신경 쓰는 우리나라에서 산토리니는 특별함 그 자체이다.
?빵집에 들어가 빵 냄새를 맡으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빵집은 행복한 공간이다.
p. 182 빵집
지금은 몸매 관리와 체중 감량을 동시에 하고 있어서 빵집에서 빵을 사지 않은 지 - 종종 샐러드는 구매한다. - 꽤 되었지만,
한 땐 빵집을 내 집 드나들 듯 빈번하게 가곤 했다.
학창 시절 별명이었던 '빵순이' 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빵을 먹는 횟수와 양만큼 얼굴의 볼살은 터져나갈 듯 했지만 - 아직도 몇몇 지인은 그게 순전히 젖살인 줄로만 안다. -,
그래도 마음만은 행복했다.
빵을 간절히 바라보는 피겨스케이터 김연아의 시선과 나의 마음은 똑같았다.
빵집이 좋은 이유는 빵의 맛과 종류 때문도 있겠지만 또 하나는 냄새이다.
빵이 구워질 때 나는 냄새는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 에서 우유 수레를 끌고 다니던 네로와 파트라슈,
수프를 끓이던 [빨간머리 앤] 의 마틸다 아주머니, 그리고 [마녀배달부 키키] 의 배경이 되는 빵집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보고 있으면 맛이 상상이 가고 결국 먹고 싶다는 거다.
아주 아주 행복한 상상이다.
몇 년 전 도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나에겐 방학이었지만, 그네들에겐 평범한 평일이었기에 도시는 아침부터 바빠보였다.
그 날의 관광지를 찾아 지하철로 이동하는 거리에서 나를 맞이한 건 뜻밖에도 원두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카페였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냄새만큼은 매우 유혹적이었다.
같은 연유로 사람들은 국내여행지추천하는 곳에 여행 갈 때마다 유명하다는 빵집에 들러 한아름 빵봉지를 들고 나오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을 가까운 사람과 함께 찾아가보는 것도 좋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만날 때 마주하는 모습은, 자신도 상대방도 이미 성장통을 겪으며 변화한 상이다.
p. 201 어릴 때 살던 동네
남자친구와 함께 그 애가 살던 동네에 가 본 적이 있다.
내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고 특별할 게 없는 낙후된 곳이었지만, 그 애는 추억을 떠올리며 내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순간 보잘것없어 보였던 동네는 꼬마였던 남자친구가 뛰놀던 예쁜 공간으로 변신했다.
나와 자신의 추억을 함께 공유한다는 사실이 기쁨으로 다가왔다.
나는 5살 이후로 지금껏 같은 곳에 쭈~욱 살아왔다.
5살 이전 살던 곳은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곳인데,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조금 더 어른이 된 이후 이사가게 된다면 지금 사는 이 주소를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받거나 여러가지 나쁜 기억이 있지 않는 이상 어릴 적 동네는 누구에게나 깊은 의미가 배어 있다.
나중에 되돌아갔을 때 이미 재건축되어 추억이 흔적조차없이 사라져버렸다면 얼마나 슬플까.
이제 우리나라도 다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보다는 유럽 여러 도시들처럼 처음 건축할 때부터 수백년 후를 보고 짓는 게 맞다고 본다.
젊은이들이 클럽에 가는 건축적 이유 중 하나는 어두운 데서 나를 적당히 은폐하고 다른 이성을 훔쳐볼 수 있어서다.
클럽은 노출을 할 수 있는 곳이면서 관음증을 만족시켜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p. 236 클럽
집 근처에 있는 극장은 삶의 질을 크게 증가시킨다.
p. 302 CGV
클럽과 CGV는 둘 다 조명이 간접적이고 적당히 폐쇄된 공간이라 은근히 안정감을 준다.
그 곳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평상시 얌전하고 조용하던 나의 모습을 살짝 버리고 힘을 뺀 채 리듬과 소리와 영상에 몸을 맡긴다.
워낙 음악과 춤과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기도 한다.
만약 여행 갈 여력이 없다면 클럽이나 영화관에 가서 즐기면 된다.
그게 바로 도심 속 휴가가 아닐까.
음악에 맞춰 밤새 춤을 추고 새벽 5시에 클럽 문 닫는 시간에 맞춰 나온 후, 근처 사우나에서 씻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침 하늘을 보면서 집으로, 학교로 돌아가는 기분은 남다르다.
한 편, 영화관에서는 독서처럼 간접 경험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마치 내가 스크린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으로 2시간동안 푹 빠져든다.
그래서 주로 보는 영화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나 판타지이다.
그만큼 감정이입을 잘 할 자신이 있어서 슬픈 드라마나 공포물을 보면 내내 불편하고 힘들다.
우리는 보통 대학 시절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건축적으로 보아도 가장 좋은 시절이 대학 때다.
대학생 때만큼 자연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중 략)
대한민국에서 공원을 제외하고 건폐율이 가장 낮은 곳이 대학 캠퍼스다.
p. 360 대학생활이 좋은 이유
모든 도시 건축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 한 곳만 꼽으라면 주저없이 대학교 캠퍼스를 택하겠다.
(캠퍼스 부지가 예쁘지 않거나 좁다면 내 말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K대를 다니는 4년은 지금껏 내 인생 어떤 순간보다도 더 행복했다.
강의실로 이동하는 발걸음이 꽤나 가벼웠고, 캠퍼스를 걸으면서 '아~ 정말이지 행복하다.'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넓은 부지, 예쁜 캠퍼스, 걸어다닐 공간, 누워있을 공간, 수다 떨 공간 등인 것 같다.
지금도 2년에 한 번 정도 대학교에 가서 거닐곤 한다.
행복했던 기분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