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실험실 - 위대한 《종의 기원》의 시작
제임스 코스타 지음, 박선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붉은 벽돌로 지은 근사한 그의 집 정원 뒤편에 마련된 간이 '실험실' 에서 찰스와 그의 형 이래즈머스가 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떠들썩하게 화학실험을 즐겨 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p. 19

케임브리지에서 했던 것 중에서 딱정벌레 수집이 가장 즐거웠고, 가장 열정적으로 했던 일이었다.

p. 30



찰스다윈의 종의 기원, 그리고 진화론은 과학책에서 접해 본 적이 있다.

중학생 때였던가, 아니면 고등학생 때였던가.

다윈이 어마어마한 사람이라서 위대한 이론을 세웠다고 생각하고 넘어간 게 다였다.

흔히들 위대한 철학자들은 돈이 많고 여유가 넘쳐서 사유할 시간이 많은 부자나 귀족 출신이 많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찰스 다윈은 과학자여서 달랐나보다.

[다윈의 실험실] 을 읽고 그가 더욱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실험을 하는 실천가였을 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 여러 교수들에게 다양한 방면에 관한 전문 지식을 배우고 논문으로 다시 한 번 그 지식을 섭렵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즉, [종의 기원] 은 그냥 쓴 책이 아니었으며, [진화론] 은 단순히 머릿 속에서 유추로 나온 이론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실험과 노력과 관찰, 거기에 풍부한 배경 지식이 더해져서 나온 탄탄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이론이었다.


다윈이 어릴 적부터 관찰하고 실험한 대상은 식물과 동물을 막론하고 꽤 많으며,

사실 종류의 수보다도 종류당 표본 개체수와 실험 시간이 많고 길었음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파리지옥, 난초, 덩굴식물부터 시작해서 꿀벌, 지렁이, 따개비 등등.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 동식물을 그는 채집하고 또 모아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실험했다.

비록 그 결과가 그가 생각했던 바와 달라도 굴하지 않았다.

물론,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기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티브 잡스에게 차고가 있었다면 찰스 다윈에게는 다운하우스 뒷마당이 있었다.






당시 찰스는 로버트 에드먼드 그랜트 교수 밑에서 지도를 받았다. 한때 의사였던 그랜트 교수는 에든버러대학교에서 무척추동물 연구자로 명성이 높았다.

p. 25

다윈은 헨슬로 교수에게 직접 지질학을 배우기도 하고 다른 교수의 지질학 강좌도 들었다. 특히 애덤 세즈윅 교수를 소개받은 일은 다윈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p. 36


의사가 되려고 한 형 이래즈머스의 영향으로, 또 번듯한 직업을 가지길 원하는 아버지의 바램으로,

찰스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양한 대학교의 학풍과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의학, 해부학, 지질학 등을 배우며 그는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발견해나가고,

비슷한 성향의 교수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때로는 도움을 받고 또 때로는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다윈의 논문을 표절한 교수도 있었지만, 교수와 목사, 거기에 가정 일로도 바쁘지만 다윈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쓴 교수도 있었다.


그가 교수들과 이론적 지식만 공유한 건 아니다.

실험을 위해 필요한 표본을 수집할 때 여기저기 부탁하러 다니기도 했다.

다윈은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크라우드 소싱의 달인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혼자서 집 안에 틀어박혀 - 실제로 장시간 뒷마당에서 틀어박힌 채 실험을 했지만서도 - 끙끙 싸매는 타입이 아니라,

필요한 바를 찾아 나서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여러 논문이나 당시 저명한 책에서 익힌 바를 그저 받아들이는 유형도 아니었다.

글에 나와 있는 바를 이해한 채로, 자신만의 실험을 계속해나갔다.

실험을 통해 그가 읽은 내용들이 맞은 걸 확인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당시 케임브리지가 말하는 과학은 완전히 제도화되고 교조적인 '지적 설계'라는 사고방식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이 대학에서 가르치거나 공부한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알 수 있는 통로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종교적 믿음과 과학적 이해 사이에서 다툼은 없었다. 과학적 통찰은 조물주가 의도한 신비스러운 계획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생각했다.그들은 성서적 문자주의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았지만, 신앙은 독실했다.

p. 32

대학을 갓 졸업한 상태였던 다윈은 자연과학이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 즉 지구의 속성과 역사, 지구의 형성 과정, 지질학 기록의 패턴, 생명의 다양성과 분포, 특히 허셜의 표현처럼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라 할 수 있는 종의 기원과 다양성 같은 문제들을 겨우 자각하기 시작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 기간 내내 이런 질문을 떠올리며 자연신학의 범주 안에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p. 40



'역사는 늘 일을 저지르는 소수에 의해 발전한다.' 라는 말이 있다.

딱히 좋아하거나 100% 동의하는 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운이 좋으면 그 소수가 자신이 사는 당대의 대중이나 현인들에게 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않으면 죽은 후에야 겨우 인정받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사후 수십년이 지나서야 재고되기도 한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완벽하다고 확신했으면서도 책을 즉시 출판하지 않았다.

물론, [종의 기원] 이 출판된 뒤에는 박물학자들과 목사들이 종 이론을 두고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적어도 다윈의 경우에는 운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99.9% 이상이 그의 반대편에 서서 비난한 게 아니니 말이다.

공방이라도 있었던 건 이론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다는 긍정적인 신호 아니던가.


해가 지고 달이 뜬다는 것, 개기일식과 개기월식, 비가 오고 태풍이 오는 것.

여러가지 자연 현상들은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선 미지의 것이었고, 그들에겐 자신들이 그러한 것들을 이해하게 도와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게 현대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종교' 이다.

'신' 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가한다는 가정하에 모든 건 그럴 법하게 설명이 될 수 있었다.

찰스다윈의 시대에도 자연신학의 범주에서 과학은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다윈은 내심 주저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동안 자신이 믿어 온 틀이 산산조각 부서지는 일을 스스로 하려 한다는 게 말이다.





남아메리카 화석과 지질학적 천이에 관한 오언의 견해와 남아메리카와 갈라파고스 새의 관계에 관한 굴드의 통찰 덕분에 오랜 시간에 걸쳐 종이 변해왔다는 이단적인 생각이 갑자기 모든 면에서 명확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p. 55

다윈은 이 따개비들이 보여주는 성性 전략이 상당히 의미심장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암수한몸에서 암수딴몸에 이르는 진화적인 발달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였다.

p. 112

다윈은 이것이 동물계 전체의 진리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멋진 집을 짓는 벌, 다른 새에게 민폐를 끼치는 뻐꾸기, 노예를 사냥하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보여주는 가장 멋진 행동과 가장 혐오스러운 행동도 포함된다. 다윈은 종에 관한 사실이 폭넓게 인식되기를 바랐다. 좋은 행위든 나쁜 행위든, 심지어 추악한 행위도 자연선택에 따라 점진적인 진화 과정으로 똑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p. 228



비글호 항해, 다운하우스 뒷마당 실험의 전 과정에서 드러난 건 자연선택, 진화론, 종 이론, 변형설 따위였다.

아무리 설명하려해도 신의 영역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작은 곤충이든 식물이든 모든 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를 집대성하여 찰스다윈은 [종의기원] 을 펴냈다.


외국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도 종교 재단의 학교들이 있다.

얼마 전, 개신교 재단의 고등학교에서 과학, 그 중에서도 진화에 대해 가르치면서

이러한 이론이 있지만 알아만 두고 믿지는 말라는 식으로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부터 듣고 놀랐다.

일명 '알아주는' 대학에 입학해야하니 일단 외우기만 하고 믿지는 말라는 거였다.


무신교인 나는 종교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 어떤 종교나 교리를 믿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성당을 다니는 할머니, 절에 다니는 아버지나 교회에 가서 봉사를 하는 동생에게 뭐라 하지도 않는다.

안 믿는 건 나의 자유이고, 믿는 건 그들의 신념이니까 왈가왈부할 것 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종교인들을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온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은 단순히 한 과학자의 머릿 속에서 나온 것도, 하얀 종이 여러장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실험, 관찰, 각종 배경 지식, 주변인들의 도움, 그 모든 게 합쳐져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다윈의 실험실] 은 [종의 기원] 이나 진화론 자체는 어려워하는 이들이라 할 지라도 충분히 읽고 공감할 만한 도서이므로 권하는 바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그녀의 카리스마에 감탄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보다 훨씬 연배가 많은 사람의 분위기를 풍겼다. 또 커다랗고 푸른 눈을 깜박이지 않고 상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덕에 그녀와 대화할 때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했다. 거의 최면과 같았다. 엘리자베스의 독특하고 깊은 바리톤의 목소리도 그런 최면 효과를 더했다.

p. 17 프롤로그

그러니 패션 또한 잡스와 비슷하게 입어야 한다고 애나는 엘리자베스에게 조언했다. 엘리자베스는 그 조언을 진심으로 마음에 깊이 새겼다. 그때부터 엘리자베스는 거의 매일 검은색 터틀넥과 검은색 바지를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p. 53

하지만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의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공했을 때의 화면을 따로 저장해 두었다고 했다. 투자자들 앞에서 보여 주었던 화면은 성공했을 때 저장했던 화면을 재생해 보여 준 것이었다.

p. 16

황우석의 줄기세포 사기극의 외국판을 보는 듯 했다.

IT의 텃밭 실리콘밸리 - 본사의 이전이 있긴 했지만 - 를 배경으로 일어난 실화이자 범죄 소설 같은 경제경영서 [배드 블러드].

엘리자베스홈즈와 테라노스를 둘러싼 사기극을 그린 이 책은 경제경영서인가 소설인가, 지금까지 이런 경제경영서는 없었다.

미디어를, 정부를, 대중을, 심지어 본인 회사의 직원들까지 속인 최악의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즈.

그녀는 모두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기위하여 외모부터 가장하여 거짓된 페르소나를 만들어냈다.

원래는 갈색이었던 모발을 금발로, 20대 여성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를 울림이 있는 바리톤으로,

촌스러운 패션을 그녀의 우상인 스티브잡스의 복사판으로.

결국 하루 하루가, 그리고 인생 자체가 범죄이자 기만이었다.

테라노스의 모든 기술과 원리, 검사 보고서 등은 철저한 보안 속에서 감시되었고, 거액을 투자하는 캐피탈 회사들조차 알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홈즈를 포함한 소수의 임원들을 제외하고는 회사의 연구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진행 중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루 이틀 속이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흔한 말로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그런데 그녀는 투자자들 앞에서도, TV쇼의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PR하는데 능숙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말에 속아 결국엔 그 말을 진실로 믿어버린다고.

엘리자베스홈즈도 그런 상태였을까?

저자인 월스트리트저널의 저널리스트인 존 캐리루가 의심하듯 소시오패스나 그 비슷한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홉 살에서 열살쯤 됐을 때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친척 한 명이 엘리자베스에게 "크면 뭐가 되고 싶니?"라며 어린아이라면 한 번은 들을 법한 질문을 했다.

이때 엘리자베스는 당황하지 않고 바로, "나는 억만장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이 되고 싶지는 않니?"라고 친척이 물었더니 엘리자베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아뇨. 나한테 10억 달러가 있을 테니 대통령이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겠죠."

p. 20

엘리자베스는 어린 시절을 워싱턴 D.C.에서 보냈고, 아버지 크리스천은 국무부에서부터 국제 개발 기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정부 기관에서 근무했다. 어머니 노엘은 의회 보좌관으로 근무하다가...

p. 22

어릴 적의 경험이나 가정 환경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을 좌지우지한다든가 적어도 일말의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심리학자가 아닌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홈즈가 왜 사기꾼 어른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건대,

그녀의 배경을 모른다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악몽같은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는 정반대로, 외가와 친가 쪽의 부나 명예, 권력이 대단한 상태에서

홈즈는 늘 그런 모습을 보며 부모로부터 목적의식을 갖고 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이것이 그녀에겐 화가 되어 뒤틀린 욕망을 가지도록 만들어버렸다.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 할 때 그녀의 인생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대학교를 자퇴할 때의 목표는 어땠을까.

과연 사람들에게 말한 대로 테라노스의 혈액 진단 기술로 환자 개개인에게 약품이 섬세하게 맞춤화되고 250여개의 병을 간단하게 진단하여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 것일까.

아니면, 이는 그저 말뿐이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처음엔 그러한 의도가 없진 않았으나 그보단 자신의 성공이라든가 부(富) 라는 최종적 목표를 향해가는 수단에 불과했을까.

아직까지도 궁금해하는 바다.

저널리스트 존 캐리루의 폭로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에도 불구하고, 점차적으로 목소리를 높여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자기 부정을 멈추지 않았다.

이 쯤 되면 테라노스의 비윤리적 행위나 거짓된 보고서 등 각종 범죄 행위나 그녀에 대한 기사도

자신이 하고자하는 바로 나아가기위한 여정의 일환으로 여기는 듯하다.

힘든 상황은 실패가 아니라 인생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그저 걸림돌일 뿐이다.

이를 보고 정신 승리라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관없어요. 직원은 바꾸면 됩니다."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중요한 건 회사뿐이에요."

p. 37-38

심지어 직원들이 더 오래 근무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매일 저녁 식사를 주문해서 제공했는데, 보통 저녁 8시나 8시 30분이 되어서야 회사에 배달됐다. 따라서 직원들은 일러도 밤 10시 정도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

p. 55

엘리자베스홈즈에게는 배드블러드가 흐른다.

진짜 혈액이라든가 유전적 특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인격을 말하는 거다.

워낙에 성격이 그렇다.

순전히 목표지향적이라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내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쪽으로 몰아친다.

거기에 그녀의 롤모델인 애플의 스티브잡스가 더해졌던 것 같다.

터틀넥을 입는 따라쟁이 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스티브잡스처럼 작은 크기, 휴대성, 예쁜 디자인에 신경 쓰는 모습, 되든 안 되든 자신이 말한 시한까지 모든 일이 마무리되야한다는 태도,

직원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테라노스의 소모적인 부품으로 여기는 모습이 그러하다.

어쩜 그렇게 스티브잡스와 소름 끼칠 정도로 똑 닮을 수 있는지......

스티브잡스의 길을 쫓으려는 의도인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니면 그 둘이 합쳐진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만약 그녀가 직원들에게 조금만 부드러웠다면, 직원의 복지에 신경 썼다면, 이러한 파국의 시점이 조금은 늦춰졌을 지도 모른다.

비록 회사가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질러도 복지와 연봉과 회사의 대우에 감동받아 스스로 테라노스를 떠나는 직원들이 훨씬 줄어들었을 테고,

그에 따라 감사하거나 미안한 마음에 존 캐리루에게 제보를 하길 꺼렸을 지도 모른다.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IT 범죄 실화, 하지만 알고 보면 경제경영서인 [배드 블러드] 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홈즈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한 편, 소설같은 이 도서는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영화로 2020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된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前) 시사인 기자 주진우를 연상시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저널리스트 존 캐리루의 [배드 블러드].

끌린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경제경영서임에도 불구하고 다 읽는데 채 4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a love letter to my city, my soul, my base
유현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 도시가 아름답지 않은 이유를 깨달은 곳이다.


산토리니섬에 가면 바위섬에 만들어진 어촌이 있다. 


산토리니가 아름다운 이유는 우선 집들의 모양이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p. 141 산토리니


내가 아주 좋아하던 TV 프로그램이 있다.


좋아하'던' 이라는 과거형을 써서 아쉽기까지 할 정도로 좋아한 [알쓸신잡] 이 바로 그것이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도통 TV 앞에 앉지도 않던 내가 무려 다시보기로 시즌 1,2,3을 모두 다 보았다.


얼마나 좋아했냐하면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 갈 때마다 국내여행지추천하는 곳으로 [알쓸신잡] 에 나온 대로 코스를 짰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도시 건축 전문가로 등장한 유현준 교수가 있다.


해박한 지식으로 건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던 그가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도시 건축 에세이를 냈다.




전혀 어렵지 않다.


우선 내가 이해했으니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에세이를 체질적으로 싫어하고 소설로만 향하는 나의 감성도 이번에는 이 책의 손을 들어줬다.


이유는 일단 사진이 많다는 거고, 둘째로는 텍스트가 짧은 데다가 단순하다는 거다.


마치 꼼꼼하고 세세한 여행 안내서 대신 사진으로 대체한 여행서를 보는 듯 하다.




이제부터 쓸 건 유현준 교수와 나의 생각이 일맥상통하는 소재에 대해서이다.


그리고 첫번째는 바로 산토리니이다.


우리나라는 면적이 크지 않은 편이라 미국과 같이 땅이 넓은 나라처럼 1, 2층의 주택이 아니라 고층 아파트를 짓는다.


물론 여기에는 특정 대통령때부터 이어진 부동산 투기라는 것도 크게 한 몫 하지만, 


어쨌든 공간 활용도의 측면에서 아파트의 장점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성냥갑처럼 다 똑같은 아파트로 인해 눈에 피로감을 느낀 적이 다들 있을 거라 믿는다.


외국인들도 빽빽한 성냥갑 도시를 보고 놀라고들 한단다.


조금 다르게 지을 순 없을까.


최대한 많은 인원이 경제적으로 거주해야하는 주택은 차치하고서라도 멕시코처럼 알록달록한 식당은 어떨까.


그래서 그리스 산토리니가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물론 직접 방문한 여행객들의 말에 따르면 가까이서 보면 오래 되어 지저분하고 실제로는 집이 아닌 교회라고 한다.


어찌됐든 사람도 건물도 개성보다는 남의 눈을 신경 쓰는 우리나라에서 산토리니는 특별함 그 자체이다.




?빵집에 들어가 빵 냄새를 맡으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만큼 빵집은 행복한 공간이다.


p. 182 빵집


지금은 몸매 관리와 체중 감량을 동시에 하고 있어서 빵집에서 빵을 사지 않은 지 - 종종 샐러드는 구매한다. - 꽤 되었지만,


한 땐 빵집을 내 집 드나들 듯 빈번하게 가곤 했다.


학창 시절 별명이었던 '빵순이' 가 괜히 붙은 게 아니다.


빵을 먹는 횟수와 양만큼 얼굴의 볼살은 터져나갈 듯 했지만 - 아직도 몇몇 지인은 그게 순전히 젖살인 줄로만 안다. -,


그래도 마음만은 행복했다.


빵을 간절히 바라보는 피겨스케이터 김연아의 시선과 나의 마음은 똑같았다.




빵집이 좋은 이유는 빵의 맛과 종류 때문도 있겠지만 또 하나는 냄새이다.


빵이 구워질 때 나는 냄새는 어린 시절 보았던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 에서 우유 수레를 끌고 다니던 네로와 파트라슈, 


수프를 끓이던 [빨간머리 앤] 의 마틸다 아주머니, 그리고 [마녀배달부 키키] 의 배경이 되는 빵집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건, 보고 있으면 맛이 상상이 가고 결국 먹고 싶다는 거다.


아주 아주 행복한 상상이다.




몇 년 전 도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나에겐 방학이었지만, 그네들에겐 평범한 평일이었기에 도시는 아침부터 바빠보였다.


그 날의 관광지를 찾아 지하철로 이동하는 거리에서 나를 맞이한 건 뜻밖에도 원두 냄새가 진하게 풍기는 카페였다.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냄새만큼은 매우 유혹적이었다.


같은 연유로 사람들은 국내여행지추천하는 곳에 여행 갈 때마다 유명하다는 빵집에 들러 한아름 빵봉지를 들고 나오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을 가까운 사람과 함께 찾아가보는 것도 좋다.


우리가 성인이 되어 누군가를 만날 때 마주하는 모습은, 자신도 상대방도 이미 성장통을 겪으며 변화한 상이다.


p. 201 어릴 때 살던 동네




남자친구와 함께 그 애가 살던 동네에 가 본 적이 있다.


내겐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고 특별할 게 없는 낙후된 곳이었지만, 그 애는 추억을 떠올리며 내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순간 보잘것없어 보였던 동네는 꼬마였던 남자친구가 뛰놀던 예쁜 공간으로 변신했다.


나와 자신의 추억을 함께 공유한다는 사실이 기쁨으로 다가왔다.




나는 5살 이후로 지금껏 같은 곳에 쭈~욱 살아왔다.


5살 이전 살던 곳은 [응답하라 1988]에 등장하는 곳인데, 정확히 어디인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조금 더 어른이 된 이후 이사가게 된다면 지금 사는 이 주소를 그리워하게 되지 않을까.




어린 시절 부모에게 학대를 받거나 여러가지 나쁜 기억이 있지 않는 이상 어릴 적 동네는 누구에게나 깊은 의미가 배어 있다.


나중에 되돌아갔을 때 이미 재건축되어 추억이 흔적조차없이 사라져버렸다면 얼마나 슬플까.


이제 우리나라도 다 부수고 새로 짓는 방식보다는 유럽 여러 도시들처럼 처음 건축할 때부터 수백년 후를 보고 짓는 게 맞다고 본다.






젊은이들이 클럽에 가는 건축적 이유 중 하나는 어두운 데서 나를 적당히 은폐하고 다른 이성을 훔쳐볼 수 있어서다.


클럽은 노출을 할 수 있는 곳이면서 관음증을 만족시켜주는 공간이기도 하다.


p. 236 클럽


집 근처에 있는 극장은 삶의 질을 크게 증가시킨다.


p. 302 CGV


클럽과 CGV는 둘 다 조명이 간접적이고 적당히 폐쇄된 공간이라 은근히 안정감을 준다.


그 곳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평상시 얌전하고 조용하던 나의 모습을 살짝 버리고 힘을 뺀 채 리듬과 소리와 영상에 몸을 맡긴다.


워낙 음악과 춤과 영화라는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기도 한다.




만약 여행 갈 여력이 없다면 클럽이나 영화관에 가서 즐기면 된다.


그게 바로 도심 속 휴가가 아닐까.


음악에 맞춰 밤새 춤을 추고 새벽 5시에 클럽 문 닫는 시간에 맞춰 나온 후, 근처 사우나에서 씻고 다시 길을 나선다.


아침 하늘을 보면서 집으로, 학교로 돌아가는 기분은 남다르다.




한 편, 영화관에서는 독서처럼 간접 경험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마치 내가 스크린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한 기분으로 2시간동안 푹 빠져든다.


그래서 주로 보는 영화 장르는 로맨틱 코미디나 판타지이다.


그만큼 감정이입을 잘 할 자신이 있어서 슬픈 드라마나 공포물을 보면 내내 불편하고 힘들다.





우리는 보통 대학 시절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건축적으로 보아도 가장 좋은 시절이 대학 때다.


대학생 때만큼 자연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중   략)


대한민국에서 공원을 제외하고 건폐율이 가장 낮은 곳이 대학 캠퍼스다.


p. 360 대학생활이 좋은 이유




모든 도시 건축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 한 곳만 꼽으라면 주저없이 대학교 캠퍼스를 택하겠다.


(캠퍼스 부지가 예쁘지 않거나 좁다면 내 말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K대를 다니는 4년은 지금껏 내 인생 어떤 순간보다도 더 행복했다.


강의실로 이동하는 발걸음이 꽤나 가벼웠고, 캠퍼스를 걸으면서 '아~ 정말이지 행복하다.'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유는 넓은 부지, 예쁜 캠퍼스, 걸어다닐 공간, 누워있을 공간, 수다 떨 공간 등인 것 같다.


지금도 2년에 한 번 정도 대학교에 가서 거닐곤 한다.


행복했던 기분을 다시금 만끽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9 에듀윌 경찰공무원 파이널 모의고사 경찰형법 - 실전동형 모의고사 + 출제임박 모의고사 14회분 2019 에듀윌 경찰공무원 파이널 모의고사
강기주 지음 / 에듀윌 / 201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에듀윌 경찰공무원 파이널모의고사는 경찰한국사, 경찰영어, 경찰형법, 경찰형사소송법, 경찰학개론, 이렇게 총 5종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 중 자신에게 필요한 걸 구매하면 되요.

저는 경찰 형법을 사서 풀어볼 생각이에요.

막판 시험 전 일주일동안 계획하여 풀 수 있도록 타임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어요.


에듀윌경찰공무원 파이널모의고사 문제집은 실전 시험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 분배 스킬을 알려주고 있어요.

최소 시간인 15분 안에 문제와 지문을 정확히 읽고 풀면서도 모두 다 맞을 수 있다면 진정으로 준비가 된 거 겠죠?!


에듀윌경찰 파이널모의고사 경찰 형법은 크게 실전동형 모의고사 7회와 출제임박 모의고사 7회, 이렇게 총 14회의 모의고사로 이루어져 있어요.

먼저 실제동형 모의고사는 어떤 식으로 시험 문제가 나올 지에 대한 감을 잡고 마지막 O, X 퀴즈를 통하여 핵심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해요.


출제임박 모의고사는 실제 경찰공무원 시험과 같은 난이도와 유형의 문제로 스스로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요.

시험에서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요.


정답과 해설지를 통하여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나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한 부분에 대한 파악이 가능하고,

신속 정답 체크로 채점이 빨라져요.


경찰공무원 시험 전 일주일동안 모의고사 파트 1, 2 각 1회씩 풀어서 실제 시험장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모든 문제 다 맞을 수 있을 거에요.

경찰모의고사 파이널 문제집은 에듀윌모의고사로 구매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슈퍼노멀 - 역경을 인생의 기회로 바꾼 우리 이웃의 슈퍼맨들
멕 제이 지음, 김진주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심리학회에 따르면 회복탄력성이란 시련이나 트라우마, 비극적인 사건 또는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요인 앞에서도 잘 적응하는 것을 뜻한다.

p. 19

누구나 크고 작은 시련을 겪는다.

특히 그 시련이 아동이나 청소년기에 온다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 시련은 왕따, 이혼, 각종 폭력, 가난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되며, 이를 이겨내고 성인으로 자라나게되면 슈퍼노멀이 된다.

우리는 누구나 보통 사람이지만, 그 중에서도 회복탄력성이 좋아서 힘든 상황을 겪고 다시 일어선 이들은 슈퍼노멀이다.

즉, 슈퍼맨이 될 자격이 충분한 일반인이라는 뜻이다.

나는 슈퍼노멀일까.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태어나고 100일이 되기 전 이혼한 어머니와 아버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대신 조부모님 슬하에서 자랐고, 지금껏 새어머니와는 소원한 상태이다.

어릴 적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고, 리듬체소 선수가 되고 싶었지만 예체능은 돈이 많이 들기에 다 포기하고 공부에 전념하였다.

그래서 대학교에 진학하고 대학원까지 갔으며, 20살부터는 집에서 돈을 받지 않고 반대로 드리는 중이다.

등록금, 생활비, 치아 교정비, 휴대폰 요금, 그 모든 걸 내 스스로 해결하면서 동시에 조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린다.

정작 나의 미래를 위한 투자는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는 잘 살고 있다.

나는 슈퍼노멀일까.

나는 회복탄력성이 좋은 사람일까.

애초에 어머니 상실에 대한 경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나이였기에 좌절의 구렁텅이로 빠질 일은 없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넘치는 사랑을 주셨기에 애정 결핍을 느낄 틈이 없었다.

다만 아주 넉넉한 형편이 아니란 걸 알아서 장학금과 과외비로 돈을 모으고 쓰고를 반복하였다.

나에게 super라는 칭호가 어울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황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고, 어쩔 수가 없었다.

피아노와 리듬체조 대신 선택한 공부였다.





이런 생생한 기억은 '섬광 기억' 이라고 불린다. 섬광 기억은 마음속에 찍힌 스냅 사진처럼 환하고 시간이 정지된 듯한 기억이다. ( 중략) 이 논문에서 그들은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면 당시에 느꼈던 충격이 기억 속에 사진처럼 영원히 각인된다고 주장했다.

p. 59

에밀리는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상담실에서 옛 기억을 그러모으면서야 아버지가 평생 동안 알코올중독자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제야 에밀리는 자기 가족이 왜 그런 식으로 살았는지, 왜 남자가 허리띠를 푸는 모습만 보면 어깨가 움츠러들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에밀리는 어른이 되어서도 허리띠 버클이 딸가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몸이 떨려 왔다. 또 유리병에서 액체가 콸콸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어도 마찬가지였다.

p. 83

이상하게도 즐겁고 행복한 순간보다는 창피하고 화나고 기분 나쁜 기억들이 섬광 기억으로 자리한다.

어릴 적 친구가 나를 속였던 일, 친척과의 불화, 아버지에게 혼났던 일 등

당시 어린 나에게는 커다란 재앙으로 여겨졌던 일들은 나의 성향에 따라 살아가면서 잊혀졌다.

좋은 게 좋은 거고, 행복한 나를 위해 산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기에 무슨 일을 해도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안 좋았던 일은 기억 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그런데 이놈의 섬광 기억은 그 일이 일어나고 10년, 아니면 20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일부러 생각을 끄집어내려고 노력을 하지도 않았고, 그 경험이 생각날 만한 어떠한 계기가 딱히 있지도 않다.

그저 길을 걷고 있다가 전동차 안에 앉아 있다가 자려고 누워 있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수치스러움, 당황스러움, 이제서야 드는 깨달음 등이다.

겨우 지웠던 안 좋았던 기억이 왜 자꾸만 섬광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걸까.

이에 대해 저자 맥제이는 뇌, 편도체 등의 용어를 들어 설명하려 하지만, 그러한 설명이 성에 차진 않는다.

물론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괴롭고 그런 건 아니지만 순간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섬광 기억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건, 뇌라는 건 참 개구지고 잔인한 존재이다.

섬광 기억이라고 해서 나빴던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맥제이의 [슈퍼노멀] 속 일화와 매우 유사한 섬광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모호하게나마 믿었던 아이로,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고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일어나면 머리 맡에 내가 원하던 선물이 있는 걸 보고 신기해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12월 25일.

이른 아침 눈을 비비고 일어나 갖고 싶었던 토끼인형을 보고 기뻐하다가 동봉된 메세지를 보고 순간 얼음이 되었다.

친절하게 나의 이름을 부르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내용의 메세지였는데, 문제는 그 어투, 글씨체, 내용, 종이 모든 게 아주 친숙하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적힌 "산타할머니가." 를 보고 그동안 누가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는지 알게 되었다.

당시엔 충격이었지만 이젠 아름다운 추억이 된 섬광 기억이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은 바로 다른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한 가지 활동에 몰두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를 잊을 수 있다. 음악 듣기, 책이나 영화 속에 빠져들기, 악기 연주, 몽상이나 공상 속에 빠져들기, 텔레비전 보기, 취미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에 매진하기. 이런 활동을 통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고, 또 긴장을 누그러뜨려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

p. 137

비단 회복탄력성이 좋은 슈퍼노멀만이 몰두하는 정도, 즉, 집중도가 뛰어난 건 아니다.

학업에서 뛰어난 결과를 거두는 아동들의 대부분은 소위 '공부 머리' 라는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며,

공부를 하는데 필수적인 '집중력' 또한 물려받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학창 시절 친구들과 점심시간 내내 즐겁게 떠들면서도 숙제를 무리없이 완수하곤 했다.

지필평가 1-2주 전에는 시끌벅쩍한 교실에서 암기 과목을 차근 차근 복습하여 전부 외웠다.

그 순간에는 오로지 눈 앞에 있는 해야 할 과제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 나오는 광고가 사람들의 두뇌에 각인되어 효과가 좋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광고되어지는 제품의 구매력이 높아져 이는 기업의 매출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 그게 내겐 통하지 않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광고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려는 목적일 뿐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광고' 라는 것에 별 관심이 없어서 영화 시작전 스크린에 나오는 여러 광고를 기억하지 못하고, 반면 영화 예고편을 본 건 잘 기억한다.

이러한 선택적 집중력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두 형제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에 학대를 일삼는 사람이었다. 형은 커서 술고래에 가정을 내팽개친 사람이 되었지만 동생은 술을 멀리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세심하고 다정하게 보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목사님이 두 형제에게 본인이 왜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냐고 묻자 두 형제는 모두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아버지를 보고 자란 제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는 자기가 보고 자란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가 보고 자란 사람과 반드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 435

결혼 전 반려자가 될 사람의 부모님을 만나보라는 말을 한다.

상대방의 부모님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지가 그들의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결국 자녀들의 결혼 이후 삶도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게, 닭살스러울 정도로 애정을 과시하는 부모 밑에서 자랑 자녀는

자신도 그와 같은 사랑을 받았고 보고 들으며 겪은 게 있기에 결혼하고나서 부인이나 남편에게 배운대로 대하게 된다.

하지만 맥제이의 심리학 도서 [슈퍼노멀] 에서 언급하듯이 이것만이 다가 아니다.

어떤 이는 의식적으로 부모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타산지석 삼아 자신은 더 나은 삶과 결혼 생활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아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사례로, 미국의 배우 제시카 알바는 가족이 전부 고도 비만이라서

일부러 혼자서만 식단을 철저하게 조절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여 지금과 같은 탄탄하고 날씨한 몸매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부모와 함께 살아온 생활 방식을 한꺼번에 버리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노력과 선택으로 얼마든지 개선이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 맥제이가 심리상담을 통해 만난 회복탄력성이 좋은 슈퍼노멀의 사례가 책 속에 가득 실려 있어서

심리학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현재 나의 삶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 왜 나만 고통을 겪고 있나 세상이 원망스러운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기운을 얻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