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도 즐겁고 행복한 순간보다는 창피하고 화나고 기분 나쁜 기억들이 섬광 기억으로 자리한다.
어릴 적 친구가 나를 속였던 일, 친척과의 불화, 아버지에게 혼났던 일 등
당시 어린 나에게는 커다란 재앙으로 여겨졌던 일들은 나의 성향에 따라 살아가면서 잊혀졌다.
좋은 게 좋은 거고, 행복한 나를 위해 산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기에 무슨 일을 해도 최선을 다하고 그 결과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
안 좋았던 일은 기억 속에서 의도적으로 지워버린다.
그런데 이놈의 섬광 기억은 그 일이 일어나고 10년, 아니면 20년이 지난 어느 날 갑자기 수면 위로 떠오른다.
일부러 생각을 끄집어내려고 노력을 하지도 않았고, 그 경험이 생각날 만한 어떠한 계기가 딱히 있지도 않다.
그저 길을 걷고 있다가 전동차 안에 앉아 있다가 자려고 누워 있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드는 생각은 수치스러움, 당황스러움, 이제서야 드는 깨달음 등이다.
겨우 지웠던 안 좋았던 기억이 왜 자꾸만 섬광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걸까.
이에 대해 저자 맥제이는 뇌, 편도체 등의 용어를 들어 설명하려 하지만, 그러한 설명이 성에 차진 않는다.
물론 심리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괴롭고 그런 건 아니지만 순간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섬광 기억이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건, 뇌라는 건 참 개구지고 잔인한 존재이다.
섬광 기억이라고 해서 나빴던 일만 있는 건 아니다.
나 역시 맥제이의 [슈퍼노멀] 속 일화와 매우 유사한 섬광 기억을 가지고 있다.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모호하게나마 믿었던 아이로,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자고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일어나면 머리 맡에 내가 원하던 선물이 있는 걸 보고 신기해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12월 25일.
이른 아침 눈을 비비고 일어나 갖고 싶었던 토끼인형을 보고 기뻐하다가 동봉된 메세지를 보고 순간 얼음이 되었다.
친절하게 나의 이름을 부르며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내용의 메세지였는데, 문제는 그 어투, 글씨체, 내용, 종이 모든 게 아주 친숙하다는 거였다.
더군다나 마지막에 적힌 "산타할머니가." 를 보고 그동안 누가 내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는지 알게 되었다.
당시엔 충격이었지만 이젠 아름다운 추억이 된 섬광 기억이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 가지 방법은 바로 다른 일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한 가지 활동에 몰두하다 보면 크고 작은 문제를 잊을 수 있다. 음악 듣기, 책이나 영화 속에 빠져들기, 악기 연주, 몽상이나 공상 속에 빠져들기, 텔레비전 보기, 취미 활동이나 스포츠 활동에 매진하기. 이런 활동을 통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고, 또 긴장을 누그러뜨려 마음의 짐을 덜 수 있다.
p. 137
비단 회복탄력성이 좋은 슈퍼노멀만이 몰두하는 정도, 즉, 집중도가 뛰어난 건 아니다.
학업에서 뛰어난 결과를 거두는 아동들의 대부분은 소위 '공부 머리' 라는 것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으며,
공부를 하는데 필수적인 '집중력' 또한 물려받았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라서 학창 시절 친구들과 점심시간 내내 즐겁게 떠들면서도 숙제를 무리없이 완수하곤 했다.
지필평가 1-2주 전에는 시끌벅쩍한 교실에서 암기 과목을 차근 차근 복습하여 전부 외웠다.
그 순간에는 오로지 눈 앞에 있는 해야 할 과제에만 집중할 수 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흔히들 영화관에서 영화 상영 전 나오는 광고가 사람들의 두뇌에 각인되어 효과가 좋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광고되어지는 제품의 구매력이 높아져 이는 기업의 매출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 그게 내겐 통하지 않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광고는 물건을 팔아 돈을 벌려는 목적일 뿐 진실을 전달하는 수단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광고' 라는 것에 별 관심이 없어서 영화 시작전 스크린에 나오는 여러 광고를 기억하지 못하고, 반면 영화 예고편을 본 건 잘 기억한다.
이러한 선택적 집중력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두 형제의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자에 학대를 일삼는 사람이었다. 형은 커서 술고래에 가정을 내팽개친 사람이 되었지만 동생은 술을 멀리하고 아내와 아이들을 세심하고 다정하게 보살피는 사람이 되었다. 목사님이 두 형제에게 본인이 왜 그런 사람이 된 것 같냐고 묻자 두 형제는 모두 똑같은 대답을 내놓았다. "아버지를 보고 자란 제가 어떻게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누군가는 자기가 보고 자란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자기가 보고 자란 사람과 반드시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 435
결혼 전 반려자가 될 사람의 부모님을 만나보라는 말을 한다.
상대방의 부모님이 어떠한 삶을 살았고 어떤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지가 그들의 자녀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쳐서
결국 자녀들의 결혼 이후 삶도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는 맞는 게, 닭살스러울 정도로 애정을 과시하는 부모 밑에서 자랑 자녀는
자신도 그와 같은 사랑을 받았고 보고 들으며 겪은 게 있기에 결혼하고나서 부인이나 남편에게 배운대로 대하게 된다.
하지만 맥제이의 심리학 도서 [슈퍼노멀] 에서 언급하듯이 이것만이 다가 아니다.
어떤 이는 의식적으로 부모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타산지석 삼아 자신은 더 나은 삶과 결혼 생활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
아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사례로, 미국의 배우 제시카 알바는 가족이 전부 고도 비만이라서
일부러 혼자서만 식단을 철저하게 조절하고 운동을 꾸준히 하여 지금과 같은 탄탄하고 날씨한 몸매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당연히 부모와 함께 살아온 생활 방식을 한꺼번에 버리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의 노력과 선택으로 얼마든지 개선이 가능하다고 본다.
저자 맥제이가 심리상담을 통해 만난 회복탄력성이 좋은 슈퍼노멀의 사례가 책 속에 가득 실려 있어서
심리학 도서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현재 나의 삶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분들, 왜 나만 고통을 겪고 있나 세상이 원망스러운 분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기운을 얻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