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실험실 - 위대한 《종의 기원》의 시작
제임스 코스타 지음, 박선영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붉은 벽돌로 지은 근사한 그의 집 정원 뒤편에 마련된 간이 '실험실' 에서 찰스와 그의 형 이래즈머스가 늘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떠들썩하게 화학실험을 즐겨 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p. 19

케임브리지에서 했던 것 중에서 딱정벌레 수집이 가장 즐거웠고, 가장 열정적으로 했던 일이었다.

p. 30



찰스다윈의 종의 기원, 그리고 진화론은 과학책에서 접해 본 적이 있다.

중학생 때였던가, 아니면 고등학생 때였던가.

다윈이 어마어마한 사람이라서 위대한 이론을 세웠다고 생각하고 넘어간 게 다였다.

흔히들 위대한 철학자들은 돈이 많고 여유가 넘쳐서 사유할 시간이 많은 부자나 귀족 출신이 많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찰스 다윈은 과학자여서 달랐나보다.

[다윈의 실험실] 을 읽고 그가 더욱 위대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자연을 관찰하고, 그 안에서 실험을 하는 실천가였을 뿐만 아니라,

대학교에서 여러 교수들에게 다양한 방면에 관한 전문 지식을 배우고 논문으로 다시 한 번 그 지식을 섭렵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즉, [종의 기원] 은 그냥 쓴 책이 아니었으며, [진화론] 은 단순히 머릿 속에서 유추로 나온 이론이 아니었다.

끊임없는 실험과 노력과 관찰, 거기에 풍부한 배경 지식이 더해져서 나온 탄탄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이론이었다.


다윈이 어릴 적부터 관찰하고 실험한 대상은 식물과 동물을 막론하고 꽤 많으며,

사실 종류의 수보다도 종류당 표본 개체수와 실험 시간이 많고 길었음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파리지옥, 난초, 덩굴식물부터 시작해서 꿀벌, 지렁이, 따개비 등등.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상 속 동식물을 그는 채집하고 또 모아서 끊임없이 관찰하고 실험했다.

비록 그 결과가 그가 생각했던 바와 달라도 굴하지 않았다.

물론,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실패의 쓰라림을 맛보기도 했지만, 그는 언제나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스티브 잡스에게 차고가 있었다면 찰스 다윈에게는 다운하우스 뒷마당이 있었다.






당시 찰스는 로버트 에드먼드 그랜트 교수 밑에서 지도를 받았다. 한때 의사였던 그랜트 교수는 에든버러대학교에서 무척추동물 연구자로 명성이 높았다.

p. 25

다윈은 헨슬로 교수에게 직접 지질학을 배우기도 하고 다른 교수의 지질학 강좌도 들었다. 특히 애덤 세즈윅 교수를 소개받은 일은 다윈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p. 36


의사가 되려고 한 형 이래즈머스의 영향으로, 또 번듯한 직업을 가지길 원하는 아버지의 바램으로,

찰스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양한 대학교의 학풍과 학문을 접할 수 있었다.

의학, 해부학, 지질학 등을 배우며 그는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를 발견해나가고,

비슷한 성향의 교수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때로는 도움을 받고 또 때로는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다.

다윈의 논문을 표절한 교수도 있었지만, 교수와 목사, 거기에 가정 일로도 바쁘지만 다윈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쓴 교수도 있었다.


그가 교수들과 이론적 지식만 공유한 건 아니다.

실험을 위해 필요한 표본을 수집할 때 여기저기 부탁하러 다니기도 했다.

다윈은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크라우드 소싱의 달인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혼자서 집 안에 틀어박혀 - 실제로 장시간 뒷마당에서 틀어박힌 채 실험을 했지만서도 - 끙끙 싸매는 타입이 아니라,

필요한 바를 찾아 나서는 타입이었던 것이다.


그런가하면 여러 논문이나 당시 저명한 책에서 익힌 바를 그저 받아들이는 유형도 아니었다.

글에 나와 있는 바를 이해한 채로, 자신만의 실험을 계속해나갔다.

실험을 통해 그가 읽은 내용들이 맞은 걸 확인할 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당시 케임브리지가 말하는 과학은 완전히 제도화되고 교조적인 '지적 설계'라는 사고방식의 틀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것이 대학에서 가르치거나 공부한 모든 것을 실질적으로 알 수 있는 통로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종교적 믿음과 과학적 이해 사이에서 다툼은 없었다. 과학적 통찰은 조물주가 의도한 신비스러운 계획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생각했다.그들은 성서적 문자주의에 빠져 허우적대지 않았지만, 신앙은 독실했다.

p. 32

대학을 갓 졸업한 상태였던 다윈은 자연과학이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 즉 지구의 속성과 역사, 지구의 형성 과정, 지질학 기록의 패턴, 생명의 다양성과 분포, 특히 허셜의 표현처럼 불가사의 중의 불가사의라 할 수 있는 종의 기원과 다양성 같은 문제들을 겨우 자각하기 시작했다. 다윈은 비글호 항해 기간 내내 이런 질문을 떠올리며 자연신학의 범주 안에서 답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p. 40



'역사는 늘 일을 저지르는 소수에 의해 발전한다.' 라는 말이 있다.

딱히 좋아하거나 100% 동의하는 말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운이 좋으면 그 소수가 자신이 사는 당대의 대중이나 현인들에게 업적을 인정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않으면 죽은 후에야 겨우 인정받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사후 수십년이 지나서야 재고되기도 한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이 완벽하다고 확신했으면서도 책을 즉시 출판하지 않았다.

물론, [종의 기원] 이 출판된 뒤에는 박물학자들과 목사들이 종 이론을 두고 날 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적어도 다윈의 경우에는 운이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

99.9% 이상이 그의 반대편에 서서 비난한 게 아니니 말이다.

공방이라도 있었던 건 이론이 사람들의 입에 회자된다는 긍정적인 신호 아니던가.


해가 지고 달이 뜬다는 것, 개기일식과 개기월식, 비가 오고 태풍이 오는 것.

여러가지 자연 현상들은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있어선 미지의 것이었고, 그들에겐 자신들이 그러한 것들을 이해하게 도와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게 현대적 언어로 표현하자면 바로 '종교' 이다.

'신' 이라는 존재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력을 가한다는 가정하에 모든 건 그럴 법하게 설명이 될 수 있었다.

찰스다윈의 시대에도 자연신학의 범주에서 과학은 수단으로 사용되어야 했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다윈은 내심 주저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동안 자신이 믿어 온 틀이 산산조각 부서지는 일을 스스로 하려 한다는 게 말이다.





남아메리카 화석과 지질학적 천이에 관한 오언의 견해와 남아메리카와 갈라파고스 새의 관계에 관한 굴드의 통찰 덕분에 오랜 시간에 걸쳐 종이 변해왔다는 이단적인 생각이 갑자기 모든 면에서 명확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p. 55

다윈은 이 따개비들이 보여주는 성性 전략이 상당히 의미심장한 무언가를 말하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것은 암수한몸에서 암수딴몸에 이르는 진화적인 발달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였다.

p. 112

다윈은 이것이 동물계 전체의 진리라고 생각했다. 여기에는 멋진 집을 짓는 벌, 다른 새에게 민폐를 끼치는 뻐꾸기, 노예를 사냥하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보여주는 가장 멋진 행동과 가장 혐오스러운 행동도 포함된다. 다윈은 종에 관한 사실이 폭넓게 인식되기를 바랐다. 좋은 행위든 나쁜 행위든, 심지어 추악한 행위도 자연선택에 따라 점진적인 진화 과정으로 똑같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p. 228



비글호 항해, 다운하우스 뒷마당 실험의 전 과정에서 드러난 건 자연선택, 진화론, 종 이론, 변형설 따위였다.

아무리 설명하려해도 신의 영역에서는 말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작은 곤충이든 식물이든 모든 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를 집대성하여 찰스다윈은 [종의기원] 을 펴냈다.


외국도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도 종교 재단의 학교들이 있다.

얼마 전, 개신교 재단의 고등학교에서 과학, 그 중에서도 진화에 대해 가르치면서

이러한 이론이 있지만 알아만 두고 믿지는 말라는 식으로 가르친다는 이야기를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부터 듣고 놀랐다.

일명 '알아주는' 대학에 입학해야하니 일단 외우기만 하고 믿지는 말라는 거였다.


무신교인 나는 종교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 어떤 종교나 교리를 믿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성당을 다니는 할머니, 절에 다니는 아버지나 교회에 가서 봉사를 하는 동생에게 뭐라 하지도 않는다.

안 믿는 건 나의 자유이고, 믿는 건 그들의 신념이니까 왈가왈부할 것 아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는 종교인들을 보면 깊은 한숨이 나온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은 단순히 한 과학자의 머릿 속에서 나온 것도, 하얀 종이 여러장에서 나온 것도 아니었다.

실험, 관찰, 각종 배경 지식, 주변인들의 도움, 그 모든 게 합쳐져 나온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다윈의 실험실] 은 [종의 기원] 이나 진화론 자체는 어려워하는 이들이라 할 지라도 충분히 읽고 공감할 만한 도서이므로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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