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블러드 - 테라노스의 비밀과 거짓말
존 캐리루 지음, 박아린 옮김 / 와이즈베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 그녀의 카리스마에 감탄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보다 훨씬 연배가 많은 사람의 분위기를 풍겼다. 또 커다랗고 푸른 눈을 깜박이지 않고 상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덕에 그녀와 대화할 때면 세상의 중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는 했다. 거의 최면과 같았다. 엘리자베스의 독특하고 깊은 바리톤의 목소리도 그런 최면 효과를 더했다.

p. 17 프롤로그

그러니 패션 또한 잡스와 비슷하게 입어야 한다고 애나는 엘리자베스에게 조언했다. 엘리자베스는 그 조언을 진심으로 마음에 깊이 새겼다. 그때부터 엘리자베스는 거의 매일 검은색 터틀넥과 검은색 바지를 입고 출근하기 시작했다.

p. 53

하지만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의 여부를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성공했을 때의 화면을 따로 저장해 두었다고 했다. 투자자들 앞에서 보여 주었던 화면은 성공했을 때 저장했던 화면을 재생해 보여 준 것이었다.

p. 16

황우석의 줄기세포 사기극의 외국판을 보는 듯 했다.

IT의 텃밭 실리콘밸리 - 본사의 이전이 있긴 했지만 - 를 배경으로 일어난 실화이자 범죄 소설 같은 경제경영서 [배드 블러드].

엘리자베스홈즈와 테라노스를 둘러싼 사기극을 그린 이 책은 경제경영서인가 소설인가, 지금까지 이런 경제경영서는 없었다.

미디어를, 정부를, 대중을, 심지어 본인 회사의 직원들까지 속인 최악의 사기꾼 엘리자베스 홈즈.

그녀는 모두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자기 자신을 속이기위하여 외모부터 가장하여 거짓된 페르소나를 만들어냈다.

원래는 갈색이었던 모발을 금발로, 20대 여성 특유의 하이톤 목소리를 울림이 있는 바리톤으로,

촌스러운 패션을 그녀의 우상인 스티브잡스의 복사판으로.

결국 하루 하루가, 그리고 인생 자체가 범죄이자 기만이었다.

테라노스의 모든 기술과 원리, 검사 보고서 등은 철저한 보안 속에서 감시되었고, 거액을 투자하는 캐피탈 회사들조차 알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홈즈를 포함한 소수의 임원들을 제외하고는 회사의 연구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진행 중인지 알 길이 없었다.

하루 이틀 속이는 건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흔한 말로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다.

그런데 그녀는 투자자들 앞에서도, TV쇼의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감 넘치는 자세로 PR하는데 능숙했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말에 속아 결국엔 그 말을 진실로 믿어버린다고.

엘리자베스홈즈도 그런 상태였을까?

저자인 월스트리트저널의 저널리스트인 존 캐리루가 의심하듯 소시오패스나 그 비슷한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홉 살에서 열살쯤 됐을 때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친척 한 명이 엘리자베스에게 "크면 뭐가 되고 싶니?"라며 어린아이라면 한 번은 들을 법한 질문을 했다.

이때 엘리자베스는 당황하지 않고 바로, "나는 억만장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이 되고 싶지는 않니?"라고 친척이 물었더니 엘리자베스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아뇨. 나한테 10억 달러가 있을 테니 대통령이 나와 결혼하고 싶어하겠죠."

p. 20

엘리자베스는 어린 시절을 워싱턴 D.C.에서 보냈고, 아버지 크리스천은 국무부에서부터 국제 개발 기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정부 기관에서 근무했다. 어머니 노엘은 의회 보좌관으로 근무하다가...

p. 22

어릴 적의 경험이나 가정 환경이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을 좌지우지한다든가 적어도 일말의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심리학자가 아닌 누구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엘리자베스홈즈가 왜 사기꾼 어른이 되었는지를 생각해보건대,

그녀의 배경을 모른다면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악몽같은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는 정반대로, 외가와 친가 쪽의 부나 명예, 권력이 대단한 상태에서

홈즈는 늘 그런 모습을 보며 부모로부터 목적의식을 갖고 살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랐다.

그런데 이것이 그녀에겐 화가 되어 뒤틀린 욕망을 가지도록 만들어버렸다.

스탠퍼드 대학교에 입학 할 때 그녀의 인생 목표는 무엇이었을까.

대학교를 자퇴할 때의 목표는 어땠을까.

과연 사람들에게 말한 대로 테라노스의 혈액 진단 기술로 환자 개개인에게 약품이 섬세하게 맞춤화되고 250여개의 병을 간단하게 진단하여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 것일까.

아니면, 이는 그저 말뿐이었을까.

그도 아니라면, 처음엔 그러한 의도가 없진 않았으나 그보단 자신의 성공이라든가 부(富) 라는 최종적 목표를 향해가는 수단에 불과했을까.

아직까지도 궁금해하는 바다.

저널리스트 존 캐리루의 폭로와 월스트리트저널의 기사에도 불구하고, 점차적으로 목소리를 높여가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자기 부정을 멈추지 않았다.

이 쯤 되면 테라노스의 비윤리적 행위나 거짓된 보고서 등 각종 범죄 행위나 그녀에 대한 기사도

자신이 하고자하는 바로 나아가기위한 여정의 일환으로 여기는 듯하다.

힘든 상황은 실패가 아니라 인생에서 흔히 있을 수 있는 그저 걸림돌일 뿐이다.

이를 보고 정신 승리라고 말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상관없어요. 직원은 바꾸면 됩니다."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중요한 건 회사뿐이에요."

p. 37-38

심지어 직원들이 더 오래 근무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엘리자베스는 매일 저녁 식사를 주문해서 제공했는데, 보통 저녁 8시나 8시 30분이 되어서야 회사에 배달됐다. 따라서 직원들은 일러도 밤 10시 정도에야 퇴근할 수 있었다.

p. 55

엘리자베스홈즈에게는 배드블러드가 흐른다.

진짜 혈액이라든가 유전적 특성을 말하는 게 아니라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인격을 말하는 거다.

워낙에 성격이 그렇다.

순전히 목표지향적이라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를 끝내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 쪽으로 몰아친다.

거기에 그녀의 롤모델인 애플의 스티브잡스가 더해졌던 것 같다.

터틀넥을 입는 따라쟁이 룩을 말하는 게 아니다.

스티브잡스처럼 작은 크기, 휴대성, 예쁜 디자인에 신경 쓰는 모습, 되든 안 되든 자신이 말한 시한까지 모든 일이 마무리되야한다는 태도,

직원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테라노스의 소모적인 부품으로 여기는 모습이 그러하다.

어쩜 그렇게 스티브잡스와 소름 끼칠 정도로 똑 닮을 수 있는지......

스티브잡스의 길을 쫓으려는 의도인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니면 그 둘이 합쳐진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만약 그녀가 직원들에게 조금만 부드러웠다면, 직원의 복지에 신경 썼다면, 이러한 파국의 시점이 조금은 늦춰졌을 지도 모른다.

비록 회사가 비윤리적인 행위를 저질러도 복지와 연봉과 회사의 대우에 감동받아 스스로 테라노스를 떠나는 직원들이 훨씬 줄어들었을 테고,

그에 따라 감사하거나 미안한 마음에 존 캐리루에게 제보를 하길 꺼렸을 지도 모른다.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IT 범죄 실화, 하지만 알고 보면 경제경영서인 [배드 블러드] 의 주인공 엘리자베스 홈즈는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한 편, 소설같은 이 도서는 제니퍼 로렌스 주연의 영화로 2020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된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전(前) 시사인 기자 주진우를 연상시키는 월스트리트저널의 저널리스트 존 캐리루의 [배드 블러드].

끌린다면 읽어보길 바란다.

경제경영서임에도 불구하고 다 읽는데 채 4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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