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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ㅣ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평점 :
청소년 소설을 잘 읽지는 않는다. 청소년 소설이란 것을 접한 것도 문학동네에서 였지, 대부분 소설책만을 주로 읽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어이 뭐야- 청소년 소설?" 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다면 ..... 사뿐히 그 편견은 내려 놓으셔도 좋다고 말씀드리고 싶을 만큼 매력적인 소설이었다. '방미진' 작가의 글을 처음 읽어보지만, 그 임팩트와 여운은 한동안 계속 될 거 같다.
보통 추리소설과는 다른 매력을 가진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다운 추리와 공포가 살포시 섞인 한여름에 너무 잘 어울리는 소설 !
그 이름도 거창한 '괴담' 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삶의 주인공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지인분의 아들 이야기가 떠올랐다. 딱 어울리는 청소년 아이. 학교엣 1등을 하는 아이. 그 1등 때문에 초를 재고 아버지와 여행도 정중히 거절하는 아이. 그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둬두는 아이. 그런 아이가 아닌 알고보면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아이들. 삶의 무게에 짖눌린 아이들. '올해에 oo지역에서는 몇명의 청소년이 자살을 했습니다.'란 기사처럼 .... 삶의 무게에 짖눌려 울부짖는 아이들. 그 아이들이 이 괴담의 주인공들이다.
Reality : 미묘하게 셋이다. 마치 누구와 누가 사랑했는데 중간에 누가 낀 불륜이 아니라 무조건 시작이 트라이엥글 구도다.
작가의 포인트나 글의 매력은 이 트라이엥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치한,보영,미래
지연,연두,인주
요한,지연,연지
아주 교묘하면서도 완벽하게 트라이엥글 구도로 시작하여 끝난다.
이들의 관계는 정말 오묘하게 청소년 같으면서도 성인 같고 그 안에서도 미묘하게 어린아이 같은 면들이 묘사된다.
왜 셋이서 행복할 순 없는거지?
왜 항상 남자 하나 여자 하나여야만 하는 거지? -(145)
물론 셋이서 행복할 수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부모와 외동. 셋이지만 미묘하면서도 좋은 삼각구도다. 아름다운 완벽한 트라이앵글. 하지만 이 앵글이 다른 앵글을 만나 또 다른 구도를 만든다. 마치 거미줄처럼 계속해서 퍼져나가는 트라이앵글. 그 앵글을 즐기면서 만드는 요한, 그 앵글을 조용히 조정하면서도 그 주인공인 지연, 주인공이면서도 결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연두, 그리고 그 연두를 이유없이 좋아하는 보영, 반대로 연두의 존재가 끔찍한 연지, 보영의 존재가 끔찍한 미래, 그리고 미래와보영 사이에서 보영을 택하면서 우유부단하게 연두에게 찝쩍대는 치한.
"너 공부때문에 자살하는 애들 이해할 수 있어?"
.......... "아니"
... 그까짓 공부, 죽을 정도로 싫으면 안하면 될 거 아냐.
........."사람들은 죽을 바에야 포기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얘기해. 너무 쉽게 얘기해.
하지만 사실을 쉽지 않아. 놓을 수가 없거든 살아 있는 한은."
"아 그럼 죽든가." 연두는 자신도 모르게 툭 내뱉고는 흠짓하여 지연을 봤다. -(154)
사실 이 소설의 매력은 '청소년' 소설이면서도 청소년에 국한되지 않는 어른들에게도 시사점을 던진다는 점이다. 아이들이 왜 뛰어내리는가. 아이들은 왜 죽음을 택하는가. 남자친구와 깔깔대고 '까똑'을 하고는 아무 죄책감없이 뛰어내리는 아이의 심리는 무엇일까........ 그들이 남긴 숙제를 마치 방미진 작가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콕' 찍어주는 것 같다.
"괴담이란 그 괴담을 필요로 하는 아이에게 찾아와, 마치 귀신처럼. 살아 움직이는 거야. 그렇게 주인공이 될 아이의 귀에 슬며시 흘러드는 거지. 지금처럼 말이야." -(179)
결국 죽음이란 것은, 내가 의도하든 의도치않든 언젠가는 나에게 찾아오는 것이다.
그 끔찍한 괴담을 내가 내 손으로 만드는 가 아니면 자연스럽게 그 괴담속에 흘러들어가는 내가 선택할 수도 있고 타의에 의해 선택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굳이' 그렇게 무대의 막을 빨리 내릴 필요가 있을까 .....
"네가 사라져 준다면 좋겠어. 더는 내 눈앞에 보이지 않게. 마술처럼." -(205)
사실 살면서 이런 생각을 누구나 해볼 수 있는 것 같다는데서 그것도 선생님이 학생을 향한 질투에 대해서 매우 흥미로웠다. 다 가진 아이. 겉으로 보면 완벽한 아이. 하지만 사실 알고보면 그 안에 허함. 무능력한 아버지, 참고 인내하고 좋은 어머니를 지향하는 엄마, 그리고 무능력을 매꾸어야 하는 친외가의 도움으로 인한 자존심의 상처.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모르는 문자처럼 종이에 펼쳐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그저 돈많고 예쁘장하고 교육잘받는 아이로 비춰질테고, 그것이 진실처럼 보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고민은 있고, 신은 공평하지 않다.
우리는 알면서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고 그리고 원망하고 복수한다.
아이러니한 세상이지만, 신이 공평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인간이 끊임없이 갖는 의문이자 숙제인 것.
그 마술의 주문 "네가 사라져 준다면 좋겠어." 이 대사는 마치 이 연극에 하이라이트와 같았다.
마술피리의 주인공이 밤의 여왕이 아니지만
우리가 모두 밤의 여왕을 주인공처럼 기억하는 것과 같은 이치처럼.
Fiction : 둘이 아닌 셋이라는 뭔가 뾰족하고 불안정한 시도로 시자간 소설이 결국 트라이앵글로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 주인공들이 정리가 된다. 모든 것들을 물흐르듯이 흘러가고 결국 불안한 경고와 유유히 흘러가는 삶이 교묘하게 공존을 한다.
책은 그저 책일 뿐이고 소설은 그저 소설일 뿐이고 청소년 소설은 그저 청소년을 위한 소설인 것일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그런 뭔가 섬짓하게 하는 "너 그 얘기 알아?"라고 묻는 현실의 공포를 느끼게 하는 '괴담' 이다.
얇은 책속에 냉정한 서늘함을 남겨준 작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