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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 제14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은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손편지를 써본 것이 언제인가 싶다. 그나마 그것을 주로 받고 쓰던 고등학교 시절에 모아놨던 편지도 해외로 떠나고 나서 아빠의 방정리에 폐휴지로 사라져 버린지 오래인 추억들이 되어 버렸다. 그저 기억에 꼬깃꼬깃 종이 찢어서 쓰고 종이 붙여서 쓰던 그 학창 시절이 지나 이젠 문자를 쓰고 이메일을 주고 받고 깨깨오똑(?)을 한다. 손으로 편지를 쓰라면 그게 어색해서 몇번을 썼다 지웠다 워드로 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시대를 실감하고 세월을 실감하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자연스럽게 되어 버린 거 같다. 마치 편지는 영화나 소설에서만 나오는 산유물 뭔가 구시대적인 발상과 구시대적인 추억을 포함하는 것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던 와중 접하게 된 정한아 작가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라는 '편지'가 들어가버린 책을 발견하고 읽기 시작한다. 문학동네작가상 수장작은 언제나 뭔가 신선함이 있을 거란 기대도 있고 구시대적인 산물과 뭔가 친근하면서 서민적인 표지 디자인이 눈을 사로잡는 그런 책이다.
1. 도시와 편지
개인적으로 이 조합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건물을 통과하는 지하철의 모습, 인공위성 나로호를 발사하는 모습의 도시적인 냄새에서 편지란 것은 마치 사라져가는 빨간우체통을 연상케 하는 뭔가 부조화 스러운 것이 있다. 하지만 결국 도시에 여전히 빨간우체통이 존재하고 우리는 지나가면서 그것을 인식하고 추억하니 또 묘하게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겠는가 ! 그리고 주인공은 부족하다. 조금은 뭔가 이상하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 이상한 것만큼 자연스럽게 특이한 것만큼 독특한 것만큼 튀지만 뭔가 의미있게 다가오는 그런 인물이다. 그리고 그 옆엔 그를 지켜주는 와조가 있다.
1-1 편지
편지라는 것은 정말 이상한 것 같다. 주인공이 쓰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게' / 혹은 '누구누구에게'라는 것이 참 친근하게 다가온다. 글만큼 자신의 생각을 요목조목 잘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거 같다. 몇번이고 읽어서 수정할 수 있는만큼 정성과 시간 그리고 진심이 들어가는 것이 글이 아닐까 싶다.
편지하면 떠오르는 것은 나의 유렵 여행이었다. 갈까말까 많은 고민을 하고 떠난 여행인만큼 많은 도시를 욕심을 냈고 그만큼 강행군이 되어버린 여행. 그 피곤한 와중에도 나는 들르는 도시마다 엽서를 사서 부모님께 편지를 썼다. 어느날은 아빠에게 어느날은 엄마에게. 전화보다 더욱더 따뜻하고 느낌을 전할 수 있다는 것이 의미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한달 넘는 여행에서 전화는 고작 2~3번. 주로 엽서에 그때그때 감정을 담고 그때그때 기분을 담아서 보내기도 하고 미처 시간이 허락하지 못해 보내지 못한 아이들은 손수 한국에 도착해서 전해드렸다. 편지라는 것은, 특별한 일이 없어도 특별한 무언가가 없어도 무언가 애잔함을 주는 것 같고, 그리고 따뜻한 솜방망이 같은 느낌이다.
2. 와조야 다음 생애에도 나의 강아지로 '와조'
사실 가장 편지만큼 인상적이었던 건 주인공의 분신 '와조'였다. 정말이지 무언가 인간보다 더 친숙하게 다가오는 그 느낌. 마치 사람보다 더 든든하게 옆을 지켜주는 와조의 모습이었다. 주인공이 마지막에 와조와의 작별인사에선 눈물이 왈칵 솟았다. 그만큼 이 책에서 와조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던 거 같다.
단 한마디의 대사도 없는 이 강아지가 말이다. 거 참.
나는 와조를 품속에 꼭 껴안으며 속삭인다.
"와조야 .... 다음 생애에도 나의 강아지로 ..... 와조." -(270)
가끔 단 한마디로 가슴 전체가 진동하고 눈물샘이 충만해지는 때가 있다. 와조의 죽음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누군가를 보내야 함에 있어서 남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던 거 같다.
3. "아니 그냥 편지예요 편지." 그리고는 덧붙여 말한다. "고마워요......"
그저 32 혹은 109라고 불리던 사람들. 이름보단 숫자로 명시되던 사람들. 그들이 주인공에게 답장을 하고 편지를 썼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내내 우리는 단지 이름만 가지고 아니 혹은 별명 혹은 애칭 혹은 내가 부르고 싶은 어떤 명칭만 가지고도 그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구나 ! 하는 생각을 한다. 마치 까페에서 내 닉네임 하나로 '나'라는 사람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과 같이! 그렇지만 우리는 현실적으로 얼마나 많은 조건들을 따져가며 인간관계를 유지하여 나가는가 !
편지를 다 읽고 나자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다. 나는 편지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여자에게 바로 답장을 쓴다. 와조가 내 곁을 떠난 이야기도 쓰고, 사진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도 쓰고, 내일 아버지의 장난감 가게를 열거라는 것도 쓰고., (중략) 그리고 그 수도꼭지를 고칠 생각이 없다는 말도. 더불어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이 밤이 더없이 숭고하다는 말도 .... (279)
사실, 이 책을 새삼 다시 꺼내읽게 된 것은 마침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을 정리하던 차에 눈에 띄기도 했고 참 좋아하는 스승님께서 아프시단 이야기를 듣고 작은 선물과 편지를 써서 보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침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읽을 때도 따뜻했지만 읽고 나서 더 따뜻해 지는 책.
고독하고 슬퍼도 세상은 따뜻함이 아직 살아 숨쉰다고,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다고.
말해주는 이 책을 다시 펼쳐들고 책을 덮을즈음 벌써 늦가을을 넘어 겨울비가 창을 두두른다.
시간은 바야흐로 지치지 않고 흐르고 그 시간에 몸 담고 있는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다.
오늘도 편지를 쓸 수 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