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시대 - 캐롤라인 왕비의 1460일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2
페르 올로프 엔크비스트 지음, 이광일 옮김 / 들녘 / 2011년 4월
평점 :
절판


일루저니스트 시리즈는 어느정도 매력은 가진 작품들이 얼굴을 하나씩 내미는 그런 느낌이다. 

이 소설은 가면의 시대라는 제목을 가지고 나온 소설인데,
북유럽 소설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장르는 아직까지는 아닌 것 같지만 캐롤라인 왕비와 덴마크의 이야기.
사실 재미있는 것은 덴마크의 왕세자의 러브 스토리로 유명한 일화가 현대에 있기에 
더욱 흥미가 갔다.

덴마크 왕실은 영국 왕실보다 더욱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고 하는데, 왕세자가 호주 요트 대회에 참가 했다가 반해서 결혼한 호주의 평범한 여성이 왕세자비이고, 어린데도 근엄하게 생겼다하여 근엄이가 그의 아들이다.
사실 참 단란해 보이는 이 가족을 보면 덴마크의 역사도 역사지만 왕실 자체가 상당히 친근감이 간다. 
실제도 덴마크 국민들은 왕실을 무척 사랑하고 아낀다고 하니, 왕실의 역사와 역사적인 중요성을 떠나서 국민들에게 환영받고 있음도 알 수 있겠다. 아무튼, 그런 밝고 화사한 이야기가 아닌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면 가면의 시대의 시대적 배경이 나온다. 

아무튼 이 책은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덴마크 역사소설로, 스칸디나비아 문학의 거장 페르 올로프 엔크비스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발표한 후 평단으로부터 "1974년 이후로 스칸디나비아 쪽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어쩌면 이 작품이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줄지도 모른다"며 호평을 받은 바 있다고 하니, 또 그만큼 유럽에서는 역사 소설이 얼마나 사랑을 받고 있는가 하는 반증이기도 한 것 같다. 

사실, 이 글을 읽다보면 왕과 왕비의 슬픈 그러나 역설적인 러브스토리가 나오는데, 이야기를 듣기만 해서는 20대의 불타는 혈기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큼 정렬적이지만 사실 이 두사람이 처음 결혼을 한 것은 왕이 18세 왕비가 15세 였다.
사실, 영국 왕실의 무슨 행사가 있으면 프랑스도 같이 들떠서 들썩인다던데, 이미 왕실의 뿌리를 잘라버린 프랑스 혁명이 시작되기 20년 전부터 덴마크에서는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슈트루엔제라는 인물은 말이 없는 조용한 사람이다. 사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말이 있듯이 이 얌전하고 조용하고 정치와는 아무 관련도 없이 의사일을 하고 싶어하는 듯한 금발의 남자는 왕실에 들어가서 어마어마한 일들을 벌이고 역사속에서 사라진다. 처음에는 자의반타의반으로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7세의 주치의로 궁정에 들어갔다가 그의 전폭적인 신뢰에 힘입어 덴마크 개혁 작업을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왜소하고 정신이상 증세를 계속 보이는 크리스티안 7세는 영국의 공주인 캐롤라인 왕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편으론 귀찮아하고 무서워하면서 그에게 "고독한 왕비를 보살펴 달라"고 명한다. 이렇게 해서 이 때문에 세 사람은 파국으로 치닫는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

명민하고 직관적이나 불안정한 심성을 가진 크리스티안 7세, 금지된 사랑의 덫에 걸려 한 여인을 마음에 두고 그 여인을 찾아 나서기까지 하는 대단함을 보인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지만 결국 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 이야기의 한 페이지가 되버리고 만다. 그리고 왕의 아들을 낳았지만 스스로의 감정과 욕정을 주체하지 못해 결국 왕가를 버리고 파멸하는 당돌하면서도 한편으론 무모한 왕비 캐롤라인, 나름은 원하지 않는 권력과 사랑의 정점에서 반동세력의 음모에 말려 파멸하여 단두대에 사라지고 마는 순수한 이상주의자 슈트루엔제, 자신을 정의의 대리자로 인식하고 덴마크 왕궁의 순결을 지키고자 했던 그래서 권력에 중심에 서있었고 그리고 계속 그 자리를 지켜나간 총리 굴베르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굴베르는 화가와 초상화를 정치의 시녀로 여겼다. 그들이 하는 일은 사실을 형상화하는 것이었다. 사실의 형상화란 이런 경우 보잘 것 없는 외모에 가려진 내적 진실을 의미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보잘 것 없는 외모가 꽤 오랫동안 쓸모가 있었다. -(가면의 시대 中) 

정말 150도 안되는 키에 보잘 것 없는 한 평범한 장의사집 아들이 권력의 중심의 서서 써내려가는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북유럽 역사, 아니 통들어 유럽 역사에 비교적 약한 나에게도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왔었다. 
사실 키작은 위인들의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지만 (심지어 나폴레옹까지) 이 책에서는 그 작고 보잘 것 없음이 
상당히 리얼하게 다가오는데- 아무래도 필체 자체에서 느껴지는 사실적 묘사가 좋았던 작품이었다.

23살의 어린 나이에 결국 왕비에서 쫒겨나고 영국에 구조를 받아 생활하는 캐롤라인 왕비의 그 동안의 삶은 마치 한편의 인생 드라마를 보는 듯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 있었다. 원하지 않는 정약 결혼. 그리고 그 정약 결혼에서 피어나지 못한 사랑. 감당할 수 없는 충동과 절제 불능. 정말 아주 평범하고 평범하다는 이 여자의 평가에선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 이 책에서 그려진다. 
사랑이란 것은 정말 사람은 변화시키는 것 같다.
노래에서만 듯던 그 사랑 이야기, 사랑사랑사랑 이라는 것은 평범하고 그저 물흐르듯이 세월에 
몸을 맞길 것 같은 여자조차 강인하고 예리하고 결단력있게 만든다.

사실 북유럽 소설이란 것 자체가 조금은 생소하지만 북유렵 혁명에 대해서도 특히 조용히 일어나거나 조용히 지나가는 혁명에 대해서는 무심히 지나치기 일 수 이다. 인물을 검색해봐도 딱히 특징있다거나 많은 관심을 받지 않은 주인공들이었던 것 같다. 그 주인공들의 역동적인 삶을 마치 한편의 웅장한 클래식의 한편처럼 써내려간 책이다.
비록 해피엔딩이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만 존재하지 않는 소설이지만 재미있다. 재미도 재미이지만 무엇보다 역사와 함께 역동적인 한 시대를 글로서 풍미할 수 있어서 기분 좋아지는 그런 역사 소설이다. 

무엇보다 왕실이라는 아름다운 가면속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들, 비화들 중에 한 막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가면속의 그들은 아름답고 화려하고 웅장하지만,
가면을 벗은 그들의 모습은 ........ 

이 소설을 보면서 문득 조선시대를 떠올리는데, 그저 한번 만나면 운이 좋은 것이고 얼굴도 모르고 시집을 갔다가 거기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비운의 세대가 생각난다. 마음이 통하고 마음과 마음을 주고 받지 못하는 비운의 결혼.
단지 권력과 화합이라는 면목으로 진행되는 계약 결혼들.
그 안에서 행복을 찾고자 발버둥 친 젊은 피가 들끓는 여자와 그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인 남자.
묵묵하게 모든 것은 귀찮다면서 총명하지만 정신병에 시달리는 지도자.
그 지도자의 밑에서 야금야금 정치적 명목을 이어나가는 키작고 못생겼지만 야망이 있는 남자. 
그들의 이야기가 한권에 오목조목 펼쳐진다. 

책을 일다보면 이 책 속의 주인공들은 매 순간 수시로 스스로에게 외친다. "가면을 벗어요, 그대. 나와 함께 여기서 춤을 춰요. 그리고나서우리의 진짜 모습을 한번 느껴봐요. 당신 상상만하지말고 이리와서 가면을 벗고 함께 (글로써) 즐겨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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