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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게 - 제144회 나오키상 수상작
미치오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소녀시대라는 그룹이 불렀던 소원을 말해봐라는 노래가 생각난다. "소원을~말해봐~"라는 경쾌한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사실 개인적으로 요 몇년간 읽었던 나오키 수상작들은 흠잡을 곳 없이 만족스러웠다.
2011년, 새로운 나오키 수상작 망설임없이 빼들었다.
"예부터 카니는 먹어도 가니는 먹지 말라는 말이 있지" 로 시작한다. 신이치는 아빠를 잃은 어린 소년으로 한쪽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와 엄마와 함께 산다. 초등학교 고학년으로 이젠 어리다와 조금 컸다의 중간쯤 되는 나이로 암에 관한 다큐를 본 이후로 게의 형상을 한 함이 아버지를 먹어치우는 환영에 시달리며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고 사는 소년이다.
1. 신이치의 세상 - 엄마의 남자가 사라지게 해주세요
신이치의 세상을 바라본다. 그의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모두에게 있는 게임기가 없어서 외로운? 같은 전학생과 밖에 어울릴 수 없는 단절감? 사실 그에게 주어진 세상은 그리 공평하지 않다. 신이치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무언가 희미하게도 닫혔다가 열렸다가 하는 것 같다. 신이치가 바라보는 세상은 적당한 단절과 적당한 인내가 섞여 있는 회색빛 세상이다. 그에게 엄마의 남자친구는 그에겐 적인 것 같으면서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하나의 마음속 돌덩어리다. 그 돌덩어리가 무거워 내려놓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마음이 텁텁하고 답답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몸을 던질만큼 내가 상처를 입어서라도 내려놓고 싶은 만큼 그렇게 소라게에게 잔인하게 소원을 빈다.
2. 하루야의 세상 - 눈을 감으면 달님이 나를 보고 웃고.
사실, 하루야라는 아이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마치 지방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얼핏 있는 이미지로 경상도 남자 같은 느낌을 주는 아이다. 사투리를 쓰고 말이 없고, 그저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의 눈은 신이치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신이치가 받은 편지를 보면서 "그런 거 무시해라" "누가 그랬나!" 라고 소리를 지르는 그의 모습에서 사실은 자기가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그렇게 외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소라게를 지지면서 그는 어떤 소원을 빌었을까? 어떤 마음을 가졌을까? 알것도 같고, 그러다가도 또 모르겠다. 어른이라는 사람이 어린 아이 마음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겠다는 나약함과 무력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하루야의 닫혀 있는 문을 열고 나면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감미로운 노랫소리처럼 달님이 활짝 미소를 지어줄지도 모른다. 아니 나는 그러기를 바란다. 부모의 학대와 무관심 속에서 이 아이가 그래도 잘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은 나의 이기심인걸까......
3. 나루미의 세상 -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신이치의 엄마가 아빠의 애인이라는 것을 알면서, 아니 아빠가 만나는 여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묵묵히 지켜보는 아이. 아빠를 자신의 품으로 돌려받고 싶으면서도 어른이라는 것은 그렇게 땡깡을 부리면 안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알면서도 모른척 해야 한다는 것, 모르는 것도 아는 척 해야 할 때도 있고, 알면서도 감쪽같이 숨겨야 한다는 것을 아는 아이. 그래서 슬픈 애어른. 이 아이는 신이치에게 묻는다.
"토요일에 뭐했어?" 라고. 가족들이 함께 있었냐고.
그리고 신이치의 반응을 바라보면서 알면서도 모른척 한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의 죽음과 관련된 신이치의 할아버지 쇼조를 용서하는 듯 하면서 용서하지 못한다.
결국 마음의 앙금이라는 것은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이다. 마치 몹시 분한 일이 있는데 그걸 꾹 참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주문을 걸다가 새벽에 일어나 입술을 꽉 깨물고 분해서 눈시울을 붉히는 것처럼.
그렇게 이 아이의 세상은 두가지 뿐이다. 어른이 된다는 것과 어른이라는 것.
세상은 결국 마음을 다해도 마음을 다해 그것을 원하거나 원하지 않아도 결국 결과는 내 뜻과는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아이. 그 아이의 눈이 무척 슬퍼 보일 것 같아 잠시 눈을 감아 본다.
4. END 그리고 AND
"무슨 소원 안 빌어 볼라나?"
하루야의 목소리는 좁은 방에서 소근거리는 것처럼 분명하게 들렸다.
"소원?"
자기 목소리도 가슴속에서 다른 누군가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모처럼 신령님이 있다 아이가."
"소원 같은 거 특별히 없어."
"뭐라도 있을 낀데."
"그럼.........."
대답이 떠오를 때까지 잠시 시간이 걸렸다.
"그럼 돈을 갖고 싶어."
"뭐꼬, 그기."
하루야는 어처구니 없는 듯 웃었다. -(102)
세 아이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기에는 왠지 버거울 법한 걱정과 고민거리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들을 잘 승화시켜 어울리는 법을 알고 있다. 마치 이기주의적인 요즘 아이들과는 다르게 서로 그것을 잘 보듬어 준다. 이 아이들이 얼마나 절박했으면 소라게를 태우면서 소원을 빌까? 라는 생각이 아니라 이 아이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 줄 무언가의 매개체로 등장한 소라게. 일본에서 유명한 이지매 그리고 부모의 죽음, 편부모 가정, 부모의 폭력, 그리고 비록 사별했다고는 하나 부모님에게 생긴 애인등으로 정말 우울할 법한 소재들을 다 붙여 놨으나 결과는 결코 우울하거나 침체 분위기의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결말은 따뜻하게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을 거라는, 세상이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다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돌아봐 줄 수 있다는 격려의 메세지를 담고 있다.
이 소설 타이틀은 "제 2의 하루키" 라고 말한다.
제 2의 하루키라. 그래 일큐팔사를 통해 하루키와 대화를 하면서도 달을 보았다. 두개의 달을. 아주 매력적인 두개의 달을.
하지만 슈스케의 달은 좀 다르다. 제 2의 하루키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더 따뜻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하루키의 달이 차가우면서 밝은 빛을 내는 두개의 달이라면 슈스케의 달은 떡방아를 찢는 토끼 두마리가 은근히 보일 듯 말 듯 비치는 그런 보름달 같은 느낌이다.
사실 이 책을 덥고 나서 곰곰히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어른들을 위한 소설일까?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 그렇다고 청소년이라고 하기도 애매한 나이의 아이들에게 인간의 교묘한 심리를 부각시켰다. 그리고 그 마음의 소리로 우리와 대화를 시도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도도 매력적이었고, 그만큼 임펙트도 충분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과거를 곰곰히 돌이켜보면 그 순간으로 도저히 돌아가고 싶지 않은 때들이 있다. 한마디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들. 하지만 다시 돌아간다해도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은 사실들의 배열. 그 배열들 속에 점점 커지는 마음속의 회색빛 그림자를 덮으려고 눈을 감았던 기억. 어쩌면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기억들. 마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인연들을 교묘하게 엮어서 세 아이의 눈을 통해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은 어른들의 입장이라곤 좀처럼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우리는 아이로 돌아가 이 글과 소통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치, 하루야, 그리고 나루미. 이 아이들의 눈이 번득인다. 마치 어둠속에 수많은 눈들이 깜박이는 것 같이 섬짓함을 느낀다. 그래서 하늘에 떠있는 달에게 소원을 빌어 본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달이 마치 소원을 말해보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