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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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어떤 책들을 보면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그러니까 나와 아무 상관도 없고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경험을 지인의 지인을 통해 건너 들은 것도 아닌데 그냥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런 이야기들이 있다.
"생강" 김치에서 생강을 씹으면 불쾌하다고. 생강이란 것은 그런 것이라고. 
김치 맛을 내기엔 꼭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씹으면 기분이 한없이 불쾌해진다고.
이 소설은... 생강을 말하고 있다, 그런 생강을 !  

우연히 천작가가 티비에 나와서 생강에 대해서 독자와 나누는 프로를 보았다.
천작가는 이 글을 통해 그녀도 한층 성장했다고 했다. 이 소설을 통해서 그녀도 자라났다고 이야기 한다. 어릴 때 싫어하던 생강을 이제는 씹어넘길만큼이 되자 자란 것 같다고 작가는 느꼈다고 한다. 그만큼 성장이란 것은 성장통을 겪는 다는 것은 어느 한 시점을 두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우리 모두의 영혼에게 각자의 성장통의 시기가 주어지는 것 같다.
사실, 생강을 성장 소설만 볼 순 없지만 분명히 여기에 나온 사람들은 하나둘씩 성장하고 크고 그리고 생강의 쌉쌀한 맛을 느끼면서 인생의 진미를 느낀다. 그래서 쌉쌀하지만 꼭 필요한, 김치를 담글 때 생강 없이는 상상할 수 없는, 마치 수정과를 넣는데 계피맛이 없으면 "이게 수정과야?"라고 하는 것처럼, 그녀의 글에 인생을 나눈 '생강'이 없다면 이 소설이 과연 생강이란 제목을 가지고 당당하게 탄생을 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꿀이 살짝 감이된 그린티를 얼음에 주욱 따르고 잠시 생각해 본다. 언제부턴가 '아저씨' 같은 영화를 종종 만나게 되는데, 우리는 그 영화의 눈알을 도려내어 들고 달랑이는 잔인함이나 피를 수없이 보는 고문하고 남을 괴롭히고 죽이는 것보다는 '원빈'이란 배우의 멋진 모습과 그의 연기력, 그리고 그가 주인공이 되어 날라다니는 영화 포인트에 더 주목하게 된다. 그러니까 '원빈 뭐 별로야.'라고 하고 옆을 바라봤는데 왠 오징어가 오징어를 씹고 있더라는 유행어가 나올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영화의 잔인성에 익숙해져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씁쓸해 진다.

자! 잘생긴 옆집 아저씨는 뒤로 하고 그럼 이제 생강의 본연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서 생강 속으로 들어가보자!
"사람들은 아버지를 악마라 부룬다. 아버지가 내 다락방에 숨어 들었다."
물론 나는 북한 이란 존재하면 빨갱이가 먼저 떠오르지 않는 세대에 태어났다.
인터넷에서 북한을 욕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고 중국과 미국 그리고 세계 정세를 두고 북한을 논하지 북한을 한 개체로 바라보면서 북한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나 북한에 대한 어떠한 연민도 느끼지 못하는 세대인 것이다.
'고문'이란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다. 생각해보면 대한민국만큼 특별한 나라도 없다.대통령이라는 사람들이 감방을 다녀오고 본인이 아니면 자식이라도 보냈던 나라. 뭐 다른 나라도 라인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무려 18년간이나 장기 독재 집권을 한 사람의 기념관이 세워지고 수많은 고문과 죽음을 독재란 이름으로 합리화 시킨 집안에서 또다시 정치를 하겠다고 얼굴을 내미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이 책은 떠올리게 했다. 물론 나는 지역감정에 동요되는 지역 태생도 아니고 그런 환경도 아니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가끔은 든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해 나의 세대도, 나의 윗세대도, 또 그 윗세대도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이라는 명 연설문을 남긴 링컨같은 생각을 가진 정치가가 나라를 통치하는 나라에 살고 있지 않음은 아쉽지만 분명한 것이다. 
"아름다워야 한다. 승리는 언제나 아름다움의 차지다. 완벽한 기술이야말로 진정 아름다운 것. 아름다운 기술. 완전한 굴복. 완벽한 승리." -(7)
"사람들은 아저씨를 뭐라고 불러요?"
"반달곰. 장의사집 둘째주인. 안부장." -(25)
우리의 주인공이다. 고문기술자. 안이다. 사실 유신 독재 시절에 우리가 떠올리는 독재자와 그 뒤를 이은 정치판을 이어받은 군부들에게 '고문'이란 단어가 얼마나 익숙했을까. 그들은 눈에 거슬리면 죽였을 것이다. 그냥 죽이지 않고 고문을 해서. 그런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눈에 가시들은 외국으로 출장보내 조용히 처리한다는 말까지 들은적이 있으니..(그 방법에 대해서는 입에 올리고 싶지 않기에 생략하겠다).
그 고문기술자들 중 한명인 '안'이 이제는 남을 고문하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쫒기는 신세가 된다.
사실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고문하고 죽이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받을 수 없는 정말 인간으로서 치가 떨리고 소름이 끼치는 방법이다. 인간이 인간을 고문한다는 것. 독일인들이 유태인을 생체실험 한 것과 일본인들이 한국인들과 중국인들을 가지고 생체실험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고문.

그가 도망을 치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락방 생활을 시작한다. 사실 아주 좁은 공간에 홀로 심리적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그러니까 독방에서 평생을 썩게 하는 것과 사형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이 더 낳은 것일까? 라는 딜레마처럼, 자수해서 벌을 받는 것과 다락방에 공소시효가 끝날때까지 숨어있는 것의 숨막히는 대결이다.
딸과 아내가 그의 수족이 되어 또 다른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랑을 선택하는 두가지 방법- 메두사의 머리를 바라보고 돌이 되거나, 아니면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나도 차라리 간첩 자식이었으면 좋겠어. 그럼 동정이라도 받지. 아버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내 편이 되어 준다고 했잖아. 무소건 내편이라고 했잖아!"
고백을 한 순간부터 잘 못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한번 내리막길을 뛰기 시작한 내 혀는 걷잡을 수 없는 속력으로 나락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133)
첫사랑이었다. 그녀에겐. 안의 딸에겐. 하지만 그 사랑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마치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편두통이 이제는 머리 안켠을 훅훅 쑤지는 두통으로 매일 자리잡는 것처럼 아버지의 다락방이 그녀의 어깨를 잔인하게 짓누루고 있는 한은 그녀는 그 무엇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 없는 것이다.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메두사의 눈을 바라보고 돌이 되고 만다. 즉 그 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아 누군가를 지켜주는 경우가 드물다는 것이다. 결국 돌이 되어 망부석이 되어 그 사랑은 그냥 그 자리에 굳어져 깨져 버린다. 마치 단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것처럼.
아버지라는 편두통은 이미 두통으로 뼛속깊이 내려 친구도 사랑도 모두 차갑게 식혀 버린다.
다락방의 괴물은 그녀의 스무살 마음부터 처참하게 짓밟기에 손색이 없었다.
 

#삶의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에 대하여
보조들은 대부분 보조라는 말을 싫어하지만 나는 그 말이 주는 어감이 참 좋다. 새초롬하면서도 발랄하고 어슬프면서도 조숙한 느낌. 새곰하면서 아릿아릿한 아오리 사과의 맛 -(161) 
대학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가위질을 시작한다. 머리를 만지는 가위질. 엄마가 하던 일을 딸도 한다.
그리고 그녀는 큰 미용실에서 재능을 발휘한다.
하지만 다락방의 괴물은 쉴세없이 그녀를 괴롭히고 그녀는 그 괴롭힘에 익숙하지 않다.
결국 마음을 다시 잡지만 괴물이 튀어나올 때마다 슬픔과 분노에 사로잡힌다.

잘못 없으면 왜 숨어.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그렇게 가르친 건 아빠잖아.
네 아빠야!
.......................
네 아버지라구
........................
우린 가족이잖아. 가족은 서로 지켜야 하는 거야. 무슨 죄를 지었든, 어디 떨어져 있근, 그게 가족인거야. -(85)

우리집에도 유령이 살아요. 초대장도 안 줬는데 제멋대로 들어앉은 막돼먹은 유령이요. 사람들은 누구나 유령을 하나씩 품고 살아. 그 사람 정말 악마였을까요? 악마였을까? 지옥을 보여 줬잖아요. 영혼을 팔면 천국을 주겠다고도 약속했지. 누구 죽이고 싶었던 적 있어요? -(233)

결국 지키기 위해 다락방에 사람들이 악마라고 부르는 아버지를 숨기고 돌본다. 사실, 그 안에서 겪는 갈등들... 그리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심리적 변화와 지침,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결국 새구두를 사달라는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는 자꾸 늘어나는 공소시효에 발목이 잡혀 죄값을 치르게 된다. 열아홉살부터 그런 일을 겪어야 했던 그녀는 이제 서른살이 되었고 낡은 간판을 새로 단다. 그리고 앞치마에서 두 손을 빼고 기지개를 편다. 봄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머리를 짓누르던 편두통을 살포시 내려놓고 봄을 맞이한다. 또 그렇게 살아지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불가사리는 썩은 발을 잘라낸다. 그러면 새 발이 자라기 때문이란다. 이제 썩은 발은 아무 필요가 없으니, 미련없이 잘라야 한다. 그런 미련따위 용납되지 않는다.

장의사집 둘째 아들, 죄값을 치루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지만, 
그는 정치적 산물인가? 아니면 그저 시대를 풍미하는 죄인인 것인가?
마지막까지, 그런 여운이 머리를 맴돈다.

천운영 작가는 마지막 작가의 말에 생각이 꼭 자신의 첫소설 같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 다락방 생활을 아직 끝내고 싶지 않다고도 적었다. 사실 한가지에 있어서 그녀는 성공한 것이다. 나에겐 천운영 작가의 생강이 첫소설이었다. 그리고 그 첫 소설의 여운이 깊이 있게 남는다. 소설가와는 당연히 글로 소통하는게 맞는데, 그 글이 한 곳을 뱅글뱅글 도는 단조로움을 주면서도 손에서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녀가 다락방 생활을 오래오래 했으면 좋겠다. 그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기 때문에. 

끝까지 다 읽고 책을 덮는 순간 떠오르는 불가사리의 썩은 발이 야곰야곰 생강의 맛처럼 쓰고 텁텁하더라도 그 잘려나간 발이 생강처럼 보기에 좋지 않더라도 우리는 한때 그 발을 필요로 했고, 그리고 그 발을 유용하게 잘 썼음을, 마치 예전에 그렇게 갖고 싶었던 물건을 샀으나 손에 넣자 아끼지 않고 시큰둥해지는 것처럼, 그런 불가사리의 발을 품은 생강이란 소설.  

그냥 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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