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동네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 한가득에 읽었는데,
개인적으로 취향이 맞지 않았던 캐비닛, 이 글이 나에겐 좀 많이 실망스러웠기에, '설계자들도 내 취향 아니겠지'
라면서 설거지들에 절대!!! 참여 하지 않은 1人

그러나 설계자들을 들고 읽고 나서는..... 나의 오해와 편견에 대해 과감하게 사과를 하고 싶어졌다. 결론부터 깔끔하게 말하자면 정말, 괜찮은 책이다.


# 내 인생 좀 설계 해줘- 응?

넬의 노래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설계자들을 보면서 넬의 노래를 계속 흥얼거렸다.

그래요 나란 사람 참 힘들죠
고장나버렸단 걸 알아요
그래도 날 포기해버리진
말아줬으면 좋겠어요
고쳐질 수만 있다면
사실 난 아주 아름다울테니
그러니 부디 놓아 버리지 말아요


그냥 책을 읽기전부터 왠지 흥얼거리게 되는 그런 가사였다. 가끔 누군가가 삶을 설계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일반인들에게는 참 동감이 가지 않지만....
예를 들면, 엘리트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교육과 체제로 키워지고, 철저한 설계아래 자기 자신을 다진다.
아쩌면, 그런 삶은 처절하게 불행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삶을 그가 선택한 건지 아닌지....... 사실 잘 모르겠다.
엘리트 당사자도 아니고 더욱이 난 신도 아니기에.


# 닮아서 싫어.

래생을 보면서, 참- 인간적인 사람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계속 돌리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숨을 쉬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빙빙도는 쳇바퀴에 몸을 싫고 빙빙빙 돌고 또 다시 그 삶으로 복귀하지만,
결국 그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래도 그를 보고 뭉클한 것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작가의 표현과 결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자와 래생,
참 많이 닮았지만 다른 사람이다.


# 그래도 나랑 친구해줘서 고마워,

친구가 위기에 처했는데 시세 타령은.."
"좋아. 그럼 형이라고 부르면 내가 해주지. 이 박정안이가 위기에 처한 동생을 방치할 인간성은 또 아니니까. 그리고 솔직히 나이는 내가 너보다 두 살 더 많잖아?"
"래생이 심각한 얼굴로 정안을 노려봤다. 래생이 계속 정안을 쳐다보자 정안은 농담인데 뭘 그리 심각한 표정을 짓느냐는 뜻으로 래생의 어깨를 툭 쳤다.
"형." 래생이 이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안이 뜨악한 얼굴로 래생을 바라봤다.
"에이, 시발, 자존심도 없어요, 자존심도. 너는 어떻게 인생을 그리 쉽게 가냐? 제발, 인생 좀 노력하면서 가자."
-(236-237)

이 부분에서 완전 빵 터졌다. 왠지 상상이 되면서 너무 재미있는거다.
왠지 대사에서 친구의 따뜻한 정과 애정이 느껴진다.
그저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말인데,
그저 무심한 말인데... 그 안에서 왠지 우정이 느껴지는 그런 대사였다.
마치, 서로가 서로에게 친구해줘서 고마워 인마, 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

'나는 이제 그림자도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310)
이 둘의 우정은- 말로 표현하지 않고 눈빛으로 쓰여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정말......... 괜히 뭉클했다.


# 용기를 내요, 그대

사실은 이발사와 래생의 대결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결투로 생애를 마감했던 그였지만 역시 조금은 비겁했다.
우리는 현실에서 사실 조금씩 비겁하게 빗겨가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래! 우리는 그런 거 같다.
현실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지,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난 비겁한게 싫지만,
할 수 없이 비겁해지고 한없이 작아질 때가 있다.

마지막에
래생에 의해 세상을 마감하지만,
결국 그는 래생에게 스스로의 목숨을 맞겼다. 아마도, 그의 친구들을 잃게 한 것에 대한 조용한 사죄였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스스로 죽을 용기는 없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쨋든, 어떤 이유에서든
용기를 내요- 그대. 라고 말하고 싶었다. 
 
# 현실따위 개나 줘버려!

"그래서 설계자들 내용이 뭐야? 결론은 어떻게 돼?"
"죽어, 래생이."
내가 너무 결말이 궁금해서 책을 받자마자 물은 말에 돌아온 대답이었다.

죽는다. 래생이.....
아무것도 바뀐 것 없이, 바뀌지도 않고............
죽어버린다.


그게 현실이 아닐까?
결국 우리는 발버둥치지만 아무거도 바꿀 수 없고, 순리를 어길 수는 없다.
자리가 비면 자리가 다시 채워진다.
그래도 바꿀꺼야!!!라고 외치던 미토도, 인간의 정이라곤 느낄 수 없던 너구리 영감도, 제꾀에 제가 넘어간 정안도, 그리고 끝까지 고치지 못하고 무모하게 머리를 박은 래생도...........

현실은.
언제나 그렇지 뭐.
근데 그런 현실은 개나 줘버려!!!
라고 말하는 것 같은, 왠지 씁쓸하지만 그래도 한구석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그런 글이었다.

나의 과오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면서
이 책을 조심스럽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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