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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오성의 집결을 관측한 기록을 보고 동국이 이미 큰 나라를 이루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교수가 죽었다. 죽을 이유도 없고 죽어야 할 이유도 없고 동기도 없으며 죽은 이유도 모른다. 아무튼 여교수가 죽었다. 경찰은 속수무책이고 그냥 자살 정도로 넘기기로 한다. 여기서 정의의 경찰 한분이 끊임없이 의심을 던진다. ‘왜?’
죽은 자가 남긴 다섯 개의 별자리, 실종자가 남긴 한 통의 메일 ETER의 물리학자 이정서는 귀국 후, 옛 친구의 자살소식을 접한다. 미진은 사서삼경에 목매달아 죽었고 은원은 실종 상태다. 사건의 미궁 한가운데에 대韓민국이 있다.
우리나라의 한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한국인으로 살면서 우리는 이 물음에 쉽게 답하지 못한다. 조금 배웠다는 사람은 삼한이라고 대답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나 이 삼한이 또 어디서 왔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삼한은 한(韓)이라는 웅혼한 뿌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의 친구가 등장한다. 구세주이다. 정확히 말해서 주인공이다. 그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엘리트’ 나라에 속해 있는 능력있는 일꾼일뿐더러 더 놀랍게도 언어에 능통하다. 결국 그는 친구가 자살을 절대 하지 않을거라는, 자기가 잘 아는 친구는 절대 자살을 하지 않을거라는 그런 동기 따위는 없다고 확신을 하면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역시 엘리트답다. 그의 이름은 이정서.
한은원. 또다른 친구. 그녀는 사건의 ‘키’이다. 그런데 그녀 또한 사라져 버렸다. 일본으로 출국한다던 사람이 일본에서 실종이다. 그녀는 과연 어디로 갔을까?
그녀를 찾아 중국까지 가게된 정서. 거기서 의도치 않게 휘말리는 역사. 한은원이 남겨준 메모 하나로 찾고 또 찾고 그리고 기나긴 여행을 하게 되는, 엘리트 정서군.
결국 은원을 찾아 단 한번의 망설임이나 지체함 혹은 엇갈림도 없이 잘 따라가는 정서군을 보면 정말 엘리트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정서가 한은원이 남긴 단서를 들고 중국에 홀홀단신 들어가 여기저기를 들르면서 그것도 사건이 너무 자연스럽게 풀려 나가는 우연을 보면서 우연에 우연이 너무도 많이 난발된 느낌을 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엘리트니까 하고 웃어 줄 수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중국 당국의 역사서에 대한 행동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사실 자기에게 불리한 역사는 그 어느 누구도 밝히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군들이 광개토대왕비를 뭉그러 뜨려 놓은 것이나 거기에 대한 연구를 가지고 아직도 말이 많은 것은 역사의 현실성보다는 자기 유리한 쪽으로 만들고자 하는 서로의 입장 차이일 것이다. 여기서 중국 또한 빠질 수 없는 관계 아닌가..
사실, 읽으면서 느낀 일이지만, 여권 도용으로 후배가 대신 여행을 갔다는 설정등 종종 나오는 좀 어설픔을 남기는 설정들에 피식 웃기는 했었다. 소설의 설정 한계는 언제나 있는 것이니까..
사실, 김진명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역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역사에 관심이 많으며 그만큼 많은 준비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그렇지만 그렇다고해도 한번쯤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어디까지 인 것일까?
사실, 가끔 그의 글을 읽다보면 진실이었으면 하는 부분이 없지않아 있는 것은 사실이니까. 그런 생각이 들게 하는 그의 그들이니까. 그만큼 우리의 역사를 날카롭게 꼬집는 그의 글들이니까.
최근 역사가 아닌 대한민국의 한(韓)의 근원을 밝히는 데서 출발한다는 데서 예전 어렴풋이 기억나는 한단고기 등이 떠오른다. 잘 알다시피 한단고기(桓檀古記)는 위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어쨌든 결론은 고조선 이전에 한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며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시발이라는 것이다.한이 멸망하고 한의 후세가 한반도로 넘어와 마한, 변한, 진한 삼한을 건국했다는 것이다.또한 작가는 지구를 돌고 있는 5개 행성이 일렬로 늘어선 기록(오성취루)과 바닷물이 3척(흔히 우리가 아는 척=30㎝이 아닌 그 당시 단위)이나 빠졌다(남해조수퇴삼척)는 기록을 남길 정도로 문명국가를 이뤘다는 것을 주지시켰다. 또한 韓의 기원을 누구나 다 알 법한 ‘시경’과 ‘잠부론’을 통해 증명, 보편·타당성을 갖춘 것으로 풀어나갔다.
단군세기를 참조했다는 작가의 말도 있다. 과거 각종 역사책들이 기록된 시대로 돌아가지 않은 이상 위서·진서의 진실은 영원한 논란거리일 수 밖에 없다.
김진명 작가는 이 소설에서 1948년 제헌의회에서 제정된 국호 대한민국(大韓民國)의 유래를 추적하면 또 하나의 대한민국(1919년, 임시정부)과 대한제국(1897년, 고종황제)이 등장한다. 대한제국(大韓帝國)에서 '제(帝)'를 '민(民)'으로 바꾼 것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고종은 왜 국명을 조선(朝鮮)에서 한국(韓國)으로 바꿨을까? 물론 사료에는 "삼한(三韓)을 잇는다"(고종실록)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김진명 작가는 여기서 커다란 모순을 발견했다고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현대 사람들은 과거 일본인이 위안부에 문제로 사과하는 문제나 역사 교과서 문제보다 방송인들의 한마디에 더 열광하고 광분하고 관심을 갖는다. 역사는 그저 흘러간, 지나가버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관심거리는 되지 않는 ‘과거’일 뿐이다. 이런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다.
이런 역사적 무관심 가운데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꿋꿋이 역사소설로 그것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김진명 작가의 소설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너무 허구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날카롭게 꼬집어 주고 싶다. 당신도 그만큼 공부를 했냐고! 사실 허구성이 들어간게 소설 아니냐고! 진실만 말하자면 그건 역사서라고! 그리고 역사서도 언제나 진실만을 말하지는 않는다고! 단지 그것이 허구일지라도. 실현 가능성이 없다 할 지라도. “그래도 그런 꿈을 한번은 꿔 봤어. 꿈꾼 것 정도는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잖아.그래도 되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그의 그들이 나는 좋다. 김진명의 ‘천년의 금서’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분명 그만의 매력이 발산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그로부터 천 년 후, 이들의 자손이 주를 찾았으니 그 내력이 중화에 못지않으리라. 놀라운 일이로다. 놀라운 일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