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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애너벨 리 싸늘하게 죽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오에 겐자부로에 대해 우선 사전지식이 없었다- 노벨 문학상 작가라는데! 사실 우리는 노벨 문학상에 딱히 큰 관심을 가지고 살지 않는가보다 싶었다. 그래도 '애너벨 리'를 읽기전에 조금 먼저 알아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건 왜인지 모르겠지만 어쨋든, 노벨상을 받은 그에 대해 조금 궁금졌다.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본어의 자연스러운 리듬을 깨뜨리는 듯한 거칠면서도 단조로운 문체로 일본 전후세대의 반항을 간결하게 묘사해냈다.
1954년 도쿄대학 프랑스 문학과에 입학해 1959년에 졸업했으며, 재학시절 문필에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미시마 유키오 이래 가장 장래가 촉망되는 신인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60년에는 중국 베이징[北京]에 가서 일본 젊은 작가의 대표로 마오쩌둥을 만나기도 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그가 정치적인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된다.그 후, 오에는 차츰 신좌익 정치사상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그는 1994년 12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행한 '애매한 일본과 나'라는 제목의 노벨상 수상소감 연설에서 "일본이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한 "전쟁중의 잔학행위를 책임져야 하며 위험스럽고 기괴한 국가의 출현을 막기 위해 평화체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사람 자체를 놓고 봤을 때, 특히 아시아인에 대한 발언은 무척 마음에 들었다. 피해 의식을 떠나서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잘못은 떳떳하게 사과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동물과 다른 인격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한 길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름다운 애너벨리 싸늘하게 죽다'는 우선 제목부터 관심을 끌었다. 아름다운 그녀가 도대체 어떻게 죽었다는거야? 라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펼치고 읽는데, 그의 애너벨 리는 포의 시와도 많은 연관이 있음을 알았다. 과거 회상 형식으로 쓰여졌는데, 쉽다고 쓱쓱 잘 읽힌다는 일반적으로 내가 접했던 일본 소설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뭔가 흐름이 쓱쓱 나가지 않는 느낌과, 이야기의 요점이 그렇게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체 자체가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듯이 흘러가지 않아 술술 흘러가지 않는데도.. 그래도 뭔가 자꾸 읽고 싶게 만드는 그리고 그 문체의 매력에 빠지게 만드는 그래서 계속 읽게 되는 매력이 있는 책이었다.
책 자체는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읽다보면 진도가 은근히 멈춰서는 듯한 느낌을.. 그리고 조용히 생각을 하게 하는 그런 글이었다.
'에너벨 리'는 오로지 소설 쓰기만 한 작가의 '문학'에 비치는 오마주라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고모리라는 사람이 종체적인 지휘를 담당하고 겐자부로가 시나리오를 쓰고 사쿠라가 여주인공을 맡기로 한 'M기획'이 난관에 봉착하면서 자신만이 의식하지 못한 부분이 적나라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애너벨 리는 미국인에게 성적인 희롱을 당한 한 아름다운 소녀의 이야기로 보인다. 또 희롱으로 인해 괴로움을 당한 여성들의 恨 같은 것...이 느껴진다. 표면적으론 한 여자의 성적 노예 이야기 갔지만 안에는 많은 사람들의 슬픔과 이야기들이 곁들여져 있다. 결국 그들이 만들고자 했던 영화는 좌절되었지만, 다행히도 '미하엘 콜히스의 운명'이 일본에서 재구성 되면서 사쿠라씨는 자신의 상처를 조금은 극복하고 치유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사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등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를 볼 때,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상처가 단지 한나라에 국한되는 단지 한여자에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의 글을 읽다보니, 우리나라 김지하 시인 석방 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던 그라서 그런지, 왠지 이런 글들을 단지 '상상속에 어떤'으로 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올바른 역사 의식이나 사회 비판 문제의식을 정확히 가지고 있던 진보적인 작가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오에 겐자부로의 등단 50주년 기념으로 쓰인 작품인만큼, 단순한 소설이 아닌, 작품안에 인생에 대한 이야기들이 속속들이 엿볼 수 있다.
오랜만에 재회에서
"what! are you here?"
"뭐야, 자네는 이런 곳에 있었나....라는 건가?"
"바로 그 대사가 되돌아 올 줄 알고서 한번 말해 본거야."
"여전하군. 여러가지 의미에서 말이야. 이게 몇 년 만이지?"
"30년 만이군." -p191-192
재회에서 만난 그들은, 인생은 결국 '지금 여기'가 아닌 '아직 여기'임을.. 시간이 지나도 결국 서로의 기억 속에 맴돌고 있음을 이야기 해준다. 비록 '지금 여기'를 살고 있지만 우리는 과거의 기억들과 더불어 '아직 여기'를 살고 있는 것이다.
고모리는 '사랑은 그저 한편의 영화일 뿐'이라고 한다. 작가에게 어쩌면 '인생은 한편의 소설일 뿐.' 이겠지만, 고모리를 통해 애너벨 리를 통해 보여준 작가의 이야기는 짧지만 굵었고 한편으론 인생은 어쩌면 아름다움과 고통, 삶과 괴로움이란 쳇바퀴로 얽히고 설켜서 계속 맞물려 돌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