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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평점 :
테레즈 라캥은 이 책의 제목이자 그녀의 이름이다.
한국영화 '박쥐'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테레즈 라캥 ! 과연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다.
-사랑,욕망이 불타올라 이성을 잃어버리게 하는.
테레즈라는 여인이 나온다. 그녀의 삶의 가족을 소개해 보자면
허약해 빠진 남편 카미유와 자신을 예전부터 돌보아준 라캥 부인이 있다.
라캥 부인의 소망에 따라 카미유와 결혼을 하는 테레즈. 그녀의 삶은 카미유의
철없는 어리광과 라캥부인의 눈치 속에서 '무관심'한 표정과 무미건조함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중, 뿅!하고 나타난 남자가 있었으니,
카미유가 파리로 옮겨가겠다고 우겨서 취직해 얻게된 철도국에서
예전에 어릴때 친구인 로랭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플러스 된 '목요일 모임'까지 생겨나게 된다.
테레즈는 자신의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허약하고 병약하고 심약한 카미유와
다른 로랭에게 강한 무언가를 느낀다. 그리고 둘은 정인이 된다.
그들은 과감한 만남을 통해 서로의 욕구를 충족하고, 한동안의 시간이 흘러간다.
하지만 그 만남에서 그들은 만족하지 못했다.
곁에 두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갈망했고 그랬기 때문에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되고 과감하게 실천으로 옮기게 된다.
바로 살인! 이다.
-인간의 끊임없는 이기심과 욕망,그 굴레에 서서
친구를 의심하지 않았던 카미유. 로랭을 마치 친아들처럼 여겼던 로랭 부인.
그리고 그들을 속이면서 쾌락을 느꼈던 테레즈.
그리고 살인을 계획해 무참히 실행에 옮기는 로랭.
과연 인간의 끊임없는 이기심과 욕망은 어디까지일까..
로랭은, 카미유를 죽으면 1) 자신의 정인을 차지할 수 있고 2) 로랭 부인에게
따뜻한 아들대접을 받을 수 있으며 3)로랭 부인의 재산을 차지할 수 있다는 이유로
카미유를 무참하게 살해한다.
카미유가 물에 빠져 죽음을 당하기 전에 남겼던
상처는 계속해서 그를 괴롭히고 아프게 하며, 그가 그려주었던
그의 그림은 그의 목을 무섭게 조여온다.
그들이 상을 당하고 일년이 지나서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을 때도,
그들이 서로에게 그렇게 끔찍히 작용하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그들은,
서로를 끔찍하게 증오하게 되리란 것을 알았을까..
몸을 못쓰게 중풍에 걸려버린
로랭부인에게 자신들의 살인을 고백하게 되고,
결국 서로 청산가리와 칼을 각각 품에 넣고
서로에 대한 살의를 느끼게 되리란 걸 알았을까..
그들의 고백을 들을 후,
테레즈의 끊임없는 사과의 행동에도 라캥 부인은 끊임없는 냉소와
저주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녀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그 차가움과 냉소는
그 두 부부가 마지막에 청산가리를 나눠 마시고 난 뒤에도 계속된다.
그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지나친 욕망은 그들에게 아무런 행복도 가져다 주지 못했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었으며,
그리고 바라보는 이에게 냉소의 시선을 던지게 만드는 굴레를 만들었다.
-모든 것들이 생각대로 되어도 옳지 않았기에 행복하지 못했다
우리는 가끔 서로에게 묻는다.
정의는 있는가? 과연 정의가 있다면, 과연 정의는 정의로운자의 편인가?
로랭은 생각대로 카미유를 죽였다.
그리고 원하던 정인을 얻었고 라캥 부인의 아들처럼 행동했으며
재산을 어느 정도 손에 넣었다.
하지만 행복하지 않았고 자살을 택했다.
테레즈는 남편의 죽음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방관했다.
그댓가로 정인을 남편으로 얻었고 시어머니를 통쾌하게 속였으며,
그 전과는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그 어느 누구보다 불행했으며 결국 서로에게 칼을 켜누어야 했다.
삶은 어쩌면 언제나 정의편이 아닐지 몰라도,
테레즈 라캥은 우리에게 말해준다.
결국 그들의 삶은 비참했으며 카미유가 그 어떤 순간에도 그들과 함께했고,
그리고 마지막에 라캥 부인의 차가운 시선에서
우리는 라캥 부인의 마지막 승리가 카미유의 복수를 무언으로
짜릿하게 해내는 그녀의 냉소까지 잃을 수 있었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어쩌면 누군가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행복하지 않았다..라고 단정짓는 내 판단이 과연 옳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에 잠기게 하는
그런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