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왕 살해사건 - 은고
김홍정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백제의 해동증자에 대해 들어본적이 있을까? 백제의 의자왕의 별명으로 해동에 증자라는 말이다.

그만큼 의자왕은 총명하였던 사람인데, 어느날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주색을 탐한 삼천궁녀와 의자왕이라는 말 밖에 남지 않았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 초기에는 신라를 정복할 정도로 백제의 위세는 강력하였다. 백제의 다시 돌아온 흥기라고 봐도 모자르지 않다. 그러나 생각과 다르게 백제는 당나라가 개입하고 며칠 만에 멸망한다. 이를 두고서 학계는 왕권 강화를 통해 귀족을 숙청하면서 귀족과 틈이 생겼고, 이것이 유발되어 쉽게 멸망했다거나 아니면 최근에 밝혀진 예식진 묘지를 통해서 의자왕은 웅진성으로 도주하여 당나라에 대한 항전 준비를 하였지만 예식진의 배반으로 멸망하였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중에 나오는 이야기가 요녀 군대부인이다. 일본서기에 기록된 백제의 멸망에 관련된 내용으로 요녀 군대부인이 백제를 멸망시키는 화를 초래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요녀가 은고일까?


이 소설은 요녀 은고가 아닌 백제의 여인, 그리고 백제의 강대함을 꿈꿨던 여인 은고로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잊고 있지만 사실 백제는 소서노로부터 시작된 여성의 국가였고, 아이후와 팔수태후 등 걸걸한 여성들이 그 이름을 사서에 남긴다. 백제에서는 여성의 권위가 어느정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요녀가 은고일 확률은 없다. 은고는 의자왕의 처였고, 그 말은 다시말해서 의자왕의 왕후였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요녀는 오히려 조선상고사에 등장하는 금화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은고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의자왕이 도망치고 3000명의 후궁이 자결을 선택한다. 일반적인 후궁의 생각들로 가능했을까? 어쩌면 강력한 내명부(왕비가 다스리는 부서)의 법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본다면 오히려 우리가 생각하는 은고는 요녀라는 이미지보다 이 소설에서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뒷받침하려는 은고와 많이 닮아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은고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 백제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