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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제니 로슨 지음, 이주혜 옮김 / 김영사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미치지 않은 것 같다면, 잘 숨기고 있을 뿐일 테니까.
-「살짝 미친 것 같아도 어때?」 서평 -


확실히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첫 장을 넘겼을 때, 여느 다른 책들처럼 이 책에 유명인사들이 보내온 찬사가 있었다. 책을 읽을 때 작은 글씨를 읽지 않는 나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에 정신과의사의 한 마디를 보기 전까진 말이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추천사를 받다니! 아직 프롤로그도 나오지 않았는데, 순간 생각했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거, 잘 선택한 걸까?"

내 생각에 대답이라도 하듯, 프롤로그에서 제니 로슨은 경고했다. 안타깝게도 그만 읽으라고 경고를 무시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책을 즐길 만큼 충분히 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가 미친사람인지 시험해보기 위해, 다음 장을 넘겼다.


이 책의 원제는 「FURIOUSLY HAPPY」, 즉 "격하게 행복하라"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로슨이 언급한 '살아남기'와 '살아가기'는 큰 의의를 가진다. 아마 두 단어를 읽자마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후자가 행복이고, 전자는 불행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살아남기'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로슨이 바로 그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로슨은 류마티즘, 우울증, 강박신경증, 거기다 극단적인 불안장애까지 안고 '살아남는 중인' 사람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사람이 썼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해학적이다. 나는 살면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나오는 구슬을 언급한 책은 처음 읽어봤다. 그 주석을 잃었을 때 두 눈을 의심했지만, 그 정도에 놀란다면 책을 끝까지 읽기 전에 심장마비에 걸릴 것이다. 언젠가 사람은 '살아가는'게 아니라 '죽어가는'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순간 섬뜩했지만 이성적으로 돌아보면 매우 이성적인 말이다. 한창 염세적일 때에는 

「살짝 미친것 같아도 어때?」는 마치 한 편의 가족시트콤 같기도 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게 정말 좋다. 엄마는 내게 어떤 관점을 안겨주니까." (-25page)


엄마를 잔뜩 한숨짓고 피곤하게 만든 후 로슨이 하는 말은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딸이 우울증, 류마티즘, 강박신경증을 앓고 있다는 걸 아는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이 가끔씩 자해를 하고, 수시로 "나는 미친 사람이야"라고 읊조리린다면. 로슨의 어머니는 매번 "넌 미친 게 아니야, 색다른거지."라고 답하지만, 로슨은 그런 어머니에게 조목조목 반박하며 어머니가 한숨짓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로슨을 어머니가 끝까지 보듬어주는 모습, 또 로슨이 어머니를 마음 속 깊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모습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았다. 또 이런 모녀의 모습을 보며 만약 내 주변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를 되돌아보게 했다. 로슨은 책에서 자신이 정신과의사에게 돈을 주는 것이 기이하게 느껴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자신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는 것을 업으로 삼는 의사인데, 마치 가장 친한 친구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다가도 진료가 끝나면 방금까지 눈맞추며 이야기하던 사람에게 비즈니스 관계처럼 카드를 건네니까 말이다. 정신과 의사의 역할이 경청이라고 생각하는 로슨처럼, 나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친구의 말을 잘 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실제로 정신과 전문의들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일반인들이 정신병 환자에게 공감하고 경청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다. 아마 그들에게 필요한 건 실질적인 도움보다 인정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들이 정신을 잃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잠시 정신이 아픈 사람들일 뿐이라는 것을. 

사실 내게 '정신병을 앓고있는 사람'이라 하면 나와는 판이하게 다른 사람일 거라고 생각됐다. 하지만 로슨의 모습 중 나와 정말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로슨이 일터에서 자신감을 잃고 패닉상태에 빠졌을 때 그녀를 구해준 단 한마디는 바로 이것이었다. "잘하는 척해." (-82page) 나도 마찬가지다. 대학생이 된 후 대외활동이나 학회, 또는 장학금 등 수많은 면접을 마주하게 된다. 그 때마다 친구들이 내게 전혀 긴장하지 않은 것 같다고, 여유로워 보인다고 말한다. 그 때마다 전혀 아니라는 대답과 함께 겸연쩍게 웃으면서 넘어가지만, 사실 나는 엄청나게 긴장한다. 그 때마다 내게 도움이 되는 생각은 "잘하는 척하자."는 것이다. 청산유슈로 말을 하는 사람, 지식과 지혜를 겸비한 사람, 열정있는 사람…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주문을 걸다 보면, 그리고 정말 그런 사람인 척을 하다 보면 어느샌가 나도 내 최면을 믿고 있다. 어쩌면 정신병과 싸우고 있는 로슨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을 때, 왠지 모를 안도감과 씁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로슨이 나와 먼 사람이 아니라는 데서 오는 안도감과, 어쩌면 나도 전혀 미치지 않은 건 아니라는 데서 오는 기분이었으리라. 

제니 로슨은 이제 유명인사가 됐다. 그녀의 블로그는 매달 2백만 명이 방문하고, 닐슨이 선정한 파워블로거, 허핑턴 포스트가 선정한 오늘의 가장 위대한 인물 등 많은 수식어가 그녀를 따라다닌다. 하지만 이러한 유명세를 얻기 위해서 제니 로슨은 자신의 정신병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고백해야 했다. 책을 읽으며 내내 그녀가 자신의 진솔한 고백을 후회하지는 않는지 걱정했다. 그녀는 가장 마지막 장에서 그렇게 말한다.  

"그렇지 않다.

 … 그러나 내 어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대가로 나는 거대한 목소리의 파도를 받았다. 

… 첫 책의 출판 기념 투어를 다닐 때 종종 개인적 고통을 고백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지 질문을 받았고, 

내 대답은 늘 똑 같았다. 그 스물 네 통의 편지가 내 고백으로 받은 최고의 보답이라고." (-408~409page)"


때때로, 아니 거의 항상 우리는 내가 한 행동이 불러올 효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후회할 수도 있다는 나의 어리석은 추측과는 달리 로슨의 진솔한 고백은 그녀를 확실히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녀 덕분에 최소한 스물 네 명은 더 행복해졌다. 로슨의 아픔이 불행이 아니라 행복으로 변모하는 순간이다.


"우리는 모두 정말 특이한 사람들이다. 단지 그걸 잘 숨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이 책이 마음에 든다. 프롤로그에서 로슨이 말한대로, 나도 미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당신도 이 책이 마음에 들 것이다. 미치지 않았다고 느낀다면, 잘 숨기고 있을 뿐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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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기분
김종완 지음 / 김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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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을 가진 사람빛이 나는 사람

-공간의 기분」 서평-

 


공간전략디자이너’.

세상에는 참 많은 직업들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낀다처음 들어보는 직업이었기 때문이다동시에 인테리어 디자이너와 같은 말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그러나 저자 김종완은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설명한다. :

공간의 시작부터 끝 그리고 그 속에 담기는 사람들의 마음과 철학까지 책임진다.

누군가의 철학을그리고 마음을 파악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없다무형적인 것을 유형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도 마찬가지다최근 가치를 생각하는 디자인인 서비스 디자인·유니버셜 디자인에 관심이 생긴 만큼색다른 그의 직업 뒤에 얽힌 이야기들을 기대하며 첫 장을 펼쳤다.

 

[내 인생에 가장 선명한 행운]

아무래도 내가 현재 학생인만큼 먼저 건실히 커리어를 쌓은 사람의 학창시절 이야기가 궁금했다김종완의 학창시절은 당돌함’ 그 자체였다마치 불도저를 보는 것 같았다지금도 부모님들이 허락해주기 쉽지 않은 유학을 머나먼 프랑스로 중학생 때 떠나는 당돌함이란자신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자기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항상 행운이 따르기 마련이다김종완도 그랬다김종완은 아무것도 없는 내게 선명한 행운이 주어졌다고 말하지만면접관들은 김종완의 눈빛에서 확신을 읽었을 것이다이런 행운을 잡으려면 항상 준비된 자세가 필요하다준비를 하려면 내 목표 설정부터 분명해야 한다벌써 대학생이 돼 버린 나에게도 없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중학생의 김종완이 존경스러워졌다.

 

[철학을 담은 디자인]

책에 담긴 그의 작업물들 중에 단연 눈에 띈 것은 아난티 코브의 펫호텔 이야기였다아난티 코브가 있는 부산 기장이 내 고향이기 때문이다내 고향 이야기를 디자이너의 책에서 보게 되다니지난 번 잠시 내려갔을 때 아난티 코브를 방문한 적이 있다당시에는 상가가 모두 들어서기 전이었는데아난티 코브에 새로운 형태의 북카페가 생겼다고 해서 방문했었다하지만 크게 실망했고 어머니와 다시 오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난다실내 디자인이 미적으로 뛰어나기는 했지만 전혀 실용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북카페라면 책이 읽기 쉽게 구비돼있고 카페가 매력적으로 자리잡고 있어야 하는데아난티 코브의 북카페는 내 키보다 훨씬 높은 책장에 빽빽하게 책을 넣어두고 심지어 책을 분류하는 기준이 표지의 색깔이었다평소 책읽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새로운 분류기는 했지만전혀 실용성이 없었다소설책을 읽고 싶으면 해당 코너에 가서 찾는 게 아니라 알 수 없는 표지 색깔들 사이에서 꾸역꾸역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게다가 북카페의 평수가 아주 넓었는데 카페는 아주 작았고 메뉴도 5개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의자도 오랜 시간 앉아 책을 읽기에 불편했고 전경만 좋았을 뿐이었다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평소 나도 공간 디자인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또 아난티 코브의 다른 장소인 펫샵을 김종완은 어떤 식으로 디자인했을지 궁금해졌다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소비자의 눈높이였다독특한 것은 여기서 소비자는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라는 것이다디자인뿐만 아니라 실용성도 고려했는데동물의 배변 냄새를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했던 흔적이 흥미로웠다아예 냄새가 나지 않는 소재가 없기 때문에 냄새가 적게 나면서도 최대한 자주 바꾸기 용이한 소재에 집중했다고 한다아난티 코브 외에도 김종완이 디자인한 요리스튜디오 중 공간의 용도를 고려해서 물청소가 용이한 바닥소재를 적용한 사례가 있었는데디자인도 물론 중요하지만 실용성도 아주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앞으로 나도 어떤 장소를 가든 디자인과 실용성을 살펴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공간의 기분에 담긴 이야기는 내 인생과 커리어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였다책을 읽으며 가장 심장이 했던 부분은 그의 성공이야기도그에게 찾아온 운명적인 기회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지만.’이라는 무심한 한 마디였다이 짧은 문장을 쓰면서 저자의 심장이 얼마나 아려왔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저자의 아버지가 쓴 편지가 그림으로 수록돼 있는데한 글자 한 글자에 진심이 녹아있어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나 또한 고향인 부산을 떠나 서울에서 산지 3년이 돼 간다고등학교를 기숙학교로 갔기에 집에서 떨어져 생활한 햇수를 세 보면 6년이다지난 번 어머니가 스치듯 진짜 효녀는 공부 잘하는 자식이 아니라 내 곁에 있어주는 자식이라더니널 보면 그 말이 떠오른다고 하셨던 게 자꾸 생각이 난다지난 달부터 서울에 올라오시겠다고 하셨는데 학회대외활동시험 준비 등으로 자꾸 미뤄오던 것도 맘에 걸린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고 하는데나도 내 인생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커리어 측면에서도 김종완은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다무엇보다 나는 그의 확신이 무척 존경스럽다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고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은 표정에서그리고 눈빛에서 그 확신이 읽힌다그런 사람은 이야기를 할 때마다 정말 빛이 난다는 인상을 받는다나 또한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고 끊임없이 배워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해본다내가 모르는 디자인 전략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책공간의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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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주의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 - 빅뱅부터 2030년까지 스토리와 그래픽으로 만나는 인류의 역사
김민주 지음 / 김영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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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중인 학과에서 필수로 지정하고 있는 네 과목이 있는데, 철학사, 과학사, 서양사, 그리고 예술사다. 이렇게 많은 교양과목을 졸업 전 필수로 들어야 할 과목으로 지정해놓은 학과나 학교는 잘 없는데, 무려 네 과목이나 필수라니 처음 입학한 후에는 많이 놀랐다. 또 독특한 점은, 네 과목이 모두 역사에 관련된 과목이라는 점이다. 해당 네 교양과목을 필수로 지정한 학과장과의 면담에서 학과장님은 "글로벌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세계의 역사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나도 네 과목 중 벌써 두 과목째 듣고 있는 입장에서, '철학' '과학' 등 한 분야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세계사를 통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책을 펼쳤다.

<김민주의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는 500쪽 분량의 책 무게에도 불구하고 술술 잘 읽히는 책이다. 목차 부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시대별로 크게 나눈 뒤 한 챕터당 굉장히 많은 수의 질문들로 구성했다. 때문에 일반적인 역사책들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차례로 읽어야한다는 부담감도 없다. 내가 관심이 있거나 평소 알고 싶던 질문들부터 선택해서 읽어도 된다. 나의 경우에는 최근 중세 과학사를 공부하고 있던 차라, 어떤 분야든 중세 역사를 공부한다면 빠질 수 없는 기독교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중세 챕터의 여덟 번째 질문, "왜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하다가 국교로 공인했을까?"에서는 네 페이지에 걸쳐 기독교의 전파를 이해하기 쉬운 컬러풀한 그림과 함께 설명해주고 있다. 아예 역사에 무지하기 보다는, 해당 시대에 적당한 관심이 있어야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한 챕터에서 해당 역사에 대해 상세하고 깊게 다루기 보다는 가벼운 개요서 느낌으로 다가가고 있다. 때문에 초보자가 읽을 때 부담이 없고, 자신이 좀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을 알고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책을 읽으며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동서양의 역사를 고루 다루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학교에서 철학사와 과학사를 공부했는데, 제목만 '역사'로 달아놓고 막상 수업을 들어보면 온통 서양의 역사만 다룰 뿐이다. 특히 근대에 올수록 더 그렇다. 개인적으로 동양 철학에 관심이 많은데, 철학사에서도 서양 근대 철학만 다루어서 아쉬웠다. 동양철학도 서양과 비교했을 때 그 방대함과 깊이가 지지 않는데 말이다. 과학사도 마찬가지다. 이슬람과 유럽의 역사만 다루다보니 아쉬운 점이 많았다. 그런데 프롤로그에서도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동서양 균형에 대한 부분을 무척 많이 의식한 듯 해 보였다. 중국이 자기 나라의 역사를 자꾸 바꾸는 이유를 탐색하면서 힌두교 이야기, 이슬람교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십자군전쟁을 다루면서 명나라의 항해 기록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프롤로그에서 <미드나잇 인 파리>이야기를 했는데, 미드나잇 인 파리를 '전 세계 버전', '빅히스토리 버전'의 텍스트로 본 듯 했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빅히스토리 관점에서 다루고자 욕심을 냈다고 썼는데, 욕심이 아니라 매우 좋은 결정이었다고 보여진다. <김민주의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 덕분에 앞으로 들을 서양사, 그리고 예술사 수업이 더 재미있어 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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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 - 유병재 농담집
유병재 지음 / 비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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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병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처음 유병재가 화제가 되었을 때, 지금까지의 개그맨들과는 사뭇 다르다고 생각했다. 몸으로 웃기거나 유행어를 밀기 보다는, 사회풍자나 스탠드업 코미디에 열중하는 모습이 그랬다. 최근 NETFLIX에서도 유병재의 쇼를 방송하는데, 한국에는 없던 형태의 코미디쇼라서 색다르면서도 재미있다는 게 신기했다. 우울할 때마다 유병재의 SNS를 보고, 그의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보는 것이 요즘 20대들의 일상이 됐다. 나 또한 그렇다. 유병재의 팬으로서, 그의 책이 궁금해서 읽어보기 시작했다.

유병재의 <블랙코미디>는 술술 읽히는 책이다. 조금만 훑어보면 알겠지만, 유병재가 주목받던 초기에 썼던 짤막한 사회풍자를 비롯한 다양한 소재들로 쓴 반전이 있는 시들을 모은 것이다. 유병재의 센스와 위트는 누구든 알고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신 이번에는 서평이라기보다는 유병재와 그의 코미디 자체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나는 그의 성공요인을 익숙한 참신함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얼마 전 한 현업자분께서 성공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는 익숙한 참신함이라고 했다. 아이디어는 참신해야 하지만, UI는 새로워야 한다고 한다. 결국 빛나는 아이디어라도 사용자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에 흠이 있다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유병재는 굉장히 지혜로운 것 같다. 그는 <코미디빅리그><개그콘서트>같은 저명한 코미디쇼에 나온 적이 없다. 대신 유튜브와 넷플릭스, 그리고 인스타그램이라는 개그계에서는 새로운, 그리고 소비자들에게는 익숙한 플랫폼으로 다가갔다. 인스타그램에서 꼼꼼하게 소통을 하고, 유튜브에서도 실시간으로 팬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그의 코미디쇼는 이미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소비자들에게는 익숙한, 그러나 개그계에서는 참신한 방식과 내용을 아울렀다는 것이 흥미롭다.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점은, 유병재가 평소 사회 문제와 우리 주변에 매우 관심이 많고 깊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유병재의 영상이나 글들을 읽으면 모르는 사회 문제가 없어 보인다. 어떻게 우리의 가려운 부분을 이토록 잘 긁어줄까 싶다가도,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주 큰 노력이 필요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블랙코미디의 내용들도 그렇다. 피식거리며 웃다가도, 책장을 닫으면 유쾌함과 함께 유병재가 긁어준 부분들 덕분에 시원함도 든다. ‘블랙코미디의 아주 큰 강점이다. 또 유병재의 코미디는 생활밀착형이다. “이 사람은 매일 우리 주변에서 무엇을 풍자할까만 생각하고 사나?”하는 의문이 드는 재밌는 글들이 많았다. 덕분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다 읽은 후 어머니께 드렸는데, 나만큼 재미있게 읽으시는 걸 보면 유병재는 남녀노소를 웃길 수 있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블랙코미디의 들어가는 부분에서 유병재는 자신이 작가라고 불리기에는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독자들을 울고 웃기는 것은 무척이나 숙련된 작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유병재는 아주 뛰어난 작가다. 유쾌한 한 방이 필요하다면, 유병재의 블랙코미디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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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애.CNN.서울
손지애 지음 / 김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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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책 분야는 다름아닌 위인전이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꿈도 많던 어린 시절, 마치 내 미래일 것처럼 느껴지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뛰게 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점점 현실을 알게 되면서, 위인전과 자기계발서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책의 분야가 됐다.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는 금수저들의 남다른 출발선을 쏙 빼놓고 뽐내는 이야기같았고, 자기계발서는 허무맹랑한 꿈 같은 이야기들을 써 놓은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김영사의 책 목록들을 둘러보다, <손지애.CNN.서울>을 보고 언젠가는 언론인을 꿈꿨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또 최근 여성으로서 글로벌 무대에 나서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더욱 어려웠던 때에 뛰어난 커리어우먼으로 자리매김한 손지애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펼치게 됐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를 꼽으라면 ‘Light Bulb Moment’를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 들어본 표현인데, ‘전등이 탁 켜지는 순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손지애는 삼풍백화점 사건에서 인터뷰이(interviewee)의 아픔을 살피는 대신 취재에만 몰두했던 때를 커리어에서의 명예와 기자로서의 양심 사이의 괴리를 깨닫게 해 준 Light Bulb Moment’로 꼽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오프라 윈프리를 떠올렸다. 그녀도 세계적인 쇼의 진행자가 되기 전 잠시 기자 생활을 했었다. 당시 오프라 윈프리가 가장 어려워 했던 것은 현장취재에서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쇼를 진행하면서도 공감을 강점으로 내세웠던 오프라 윈프리는, 그러한 자신의 강점을 현장취재에서도 드러냈던 것이다. 피해자들을 이성적으로 인터뷰하는 대신, 함께 울며 공감해주었던 탓에 기자로서는 실패했다는 평을 듣는다. 기자 윤리에 따르면 기자는 항상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객관성을 결여한 편향적인 인터뷰나 취재는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따뜻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인터뷰이를 배려하고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는 기자에게 참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손지애의 이야기를 읽으며 기자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러한 자세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하는 고민도 했다. 내게도 손지애처럼 ‘Light Bulb Moment'가 올 텐데, 지혜롭게 이겨내고 성장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의 마지막 소제목은 불가능한 꿈을 꿔야 하는 이유. 또 마지막 구절을 하늘을 보고 우주를 꿈꾸라로 마무리한다. 이 구절들은 손지애가 살아온 길을 잘 표현하고 있다. 동양인 최초의 CNN 서울 지국장, 뉴욕 타임스 기자, 청화대 홍보 비서관, 최연소 최초 여성 아리랑 국제방송 CEO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우주를 꿈꾸라는 말은 아직 유효하다. 서론에서 언급했던 허무맹랑해보이는 조언들, 그리고 출발선을 쏙 빼놓은 것 같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에 좌절해서는 안된다. 그래도 하늘을 보고 우주를 꿈꿔야 한다. 달을 향해 쏜다면, 실패해도 별에 닿기 때문이다.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 여성으로서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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