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지애.CNN.서울
손지애 지음 / 김영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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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가장 좋아하던 책 분야는 다름아닌 위인전이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고 꿈도 많던 어린 시절, 마치 내 미래일 것처럼 느껴지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뛰게 했다.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점점 현실을 알게 되면서, 위인전과 자기계발서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책의 분야가 됐다.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는 금수저들의 남다른 출발선을 쏙 빼놓고 뽐내는 이야기같았고, 자기계발서는 허무맹랑한 꿈 같은 이야기들을 써 놓은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김영사의 책 목록들을 둘러보다, <손지애.CNN.서울>을 보고 언젠가는 언론인을 꿈꿨던 나의 과거가 떠올랐다. 또 최근 여성으로서 글로벌 무대에 나서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는데, 더욱 어려웠던 때에 뛰어난 커리어우먼으로 자리매김한 손지애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책을 펼치게 됐다.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단어를 꼽으라면 ‘Light Bulb Moment’를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 들어본 표현인데, ‘전등이 탁 켜지는 순간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손지애는 삼풍백화점 사건에서 인터뷰이(interviewee)의 아픔을 살피는 대신 취재에만 몰두했던 때를 커리어에서의 명예와 기자로서의 양심 사이의 괴리를 깨닫게 해 준 Light Bulb Moment’로 꼽는다. 이 부분을 읽으며 오프라 윈프리를 떠올렸다. 그녀도 세계적인 쇼의 진행자가 되기 전 잠시 기자 생활을 했었다. 당시 오프라 윈프리가 가장 어려워 했던 것은 현장취재에서 피해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쇼를 진행하면서도 공감을 강점으로 내세웠던 오프라 윈프리는, 그러한 자신의 강점을 현장취재에서도 드러냈던 것이다. 피해자들을 이성적으로 인터뷰하는 대신, 함께 울며 공감해주었던 탓에 기자로서는 실패했다는 평을 듣는다. 기자 윤리에 따르면 기자는 항상 이성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객관성을 결여한 편향적인 인터뷰나 취재는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시에 따뜻함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인터뷰이를 배려하고 사회적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따뜻한 가슴과 차가운 머리는 기자에게 참 잘 어울리는 표현이다. 손지애의 이야기를 읽으며 기자란 정말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러한 자세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하는 고민도 했다. 내게도 손지애처럼 ‘Light Bulb Moment'가 올 텐데, 지혜롭게 이겨내고 성장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의 마지막 소제목은 불가능한 꿈을 꿔야 하는 이유. 또 마지막 구절을 하늘을 보고 우주를 꿈꾸라로 마무리한다. 이 구절들은 손지애가 살아온 길을 잘 표현하고 있다. 동양인 최초의 CNN 서울 지국장, 뉴욕 타임스 기자, 청화대 홍보 비서관, 최연소 최초 여성 아리랑 국제방송 CEO까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을 보고 우주를 꿈꾸라는 말은 아직 유효하다. 서론에서 언급했던 허무맹랑해보이는 조언들, 그리고 출발선을 쏙 빼놓은 것 같은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에 좌절해서는 안된다. 그래도 하늘을 보고 우주를 꿈꿔야 한다. 달을 향해 쏜다면, 실패해도 별에 닿기 때문이다.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 여성으로서의 커리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추천하고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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