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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식사 ㅣ NFF (New Face of Fiction)
메이어 샬레브 지음, 박찬원 옮김 / 시공사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이국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어느새 내가 있는 실제의 시간과 장소가 흐려지고, 책 속의 공간에 내가 존재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나는 마치 꿈을 꾸듯 책 속의 공간에서 작중 인물들이 눈치 챌 수 없는 어딘가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이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수많은 소설들 중에서도 특히 이국적인 색체가 강하고, 그래서 읽는 내내 한적한 시골마을의 풍경과 순박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눈으로 귀로 밀려오는듯한 느낌이 들었다.
소년 자이데는 이스라엘어로 노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사랑하며 아버지를 잧처하는 세명의 남자가 각자의 방식으로 그를 사랑하며 그의 성장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세 아버지 중 한 명인 야콥은 중요한 순간마다 자이데를 집으로 초대하여 정성스럽게 차린 식사를 대접한다. 각 식사의 간격이 길기 때문에 그 사이에 자이대는 어린아이였다가 소년이었다가 청년이었다가 장년이 된다. 유디트를 향한 야콥의 순애보적인 사랑은 책의 후반부로 갈수록 감동이 된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정서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 한 문장 한 문장을 곱씹으며 천천히 읽어야한다. 책이 두꺼워서 언제 다 읽을까 했었는데 한번 중심 주제가 파악되고 난 뒤로는 비교적 쉽게 읽힌다. 그리고 그냥 봐서는 만연체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문장이지만, 자세히 보다보면 마치 탈무드를 읽을 때처럼 그들의 위트와 해학을 느낄 수 있다.
“난 대단하게 현명한 사람이 아닙니다. 잘 생기지도 않았고, 부자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성과 아름다움을 나누어 줄 때 나는 줄에서 첫 번째에 서지 못했습니다. 둘 다 꼴찌는 아니었지만, 둘 다 첫 번째도 아니었지요. 하지만, 하나님이 인내심을 나누어 줄 때, 나는 줄을 선 채 기다렸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더 이상 기다릴 인내심이 없었어요. 야곱 집안은 그렇습니다. 난 글로버만이 아니고, 라비노비치도 아니고, 누구도 아닙니다. 하지만, 내게 7 년의 기다림은 며칠이나 마찬가지입니다.”(541 페이지)
인내심에 대한 이중적 의미를 담고있는 이런 느낌의 문장들을 책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책을 읽다가 꿈속에 암소 한 마리가 등장했엇는데 나도모르게 암소를 따라가면서 ‘라헬, 라헬’하고 큰 소리로 불렀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처음부터 사람의 마음을 사로집지는 않지만, 읽다보면 저도 모르게 책 속으로 빨려드는듯한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역자 후기에서 작가가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는데 타고난 이야기꾼은 짧은 하나의 이야기로 폭소를 터뜨리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래오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굴에 조용한 미소가 서서히 꽃피게 할 수 잇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젠가 내 고장의 이야기를 이런식으로 써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