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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햄릿 ㅣ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최영열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8월
평점 :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학창 시절 책과 가까이 지내지 않았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구절이지요. 바로 오늘 읽은 <햄릿>의 대사입니다. 그동안 몇 세기에 걸쳐 명작으로 칭송받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궁금해 여러번 도전했지만 도전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고는 했습니다. 본문만큼 긴 각주들을 볼 때마다 잠이 쏟아지더라고요. 그런데 출판사 미래와 사람에서 읽기 쉬운 현대어로 번역한 햄릿을 출간한다고 하여 직접 읽어보았습니다.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햄릿
저자 윌리엄 셰익스피어
옮긴이 최영열
출판 미래와 사람
출간일 2022.09.05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 1564년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배우를 꿈꾸던 청년은 고향을 떠나 런던에서 거주하며 약 30년간 수많은 희곡을 써냅니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고 알려진 <오셀로><리어 왕><맥베스><햄릿>은 아직도 전 세계 교과서에 실리고, 영화로 제작되는 등 꼭 읽어야 할 고전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이토록 유명한 작품이지만 많은 이들이 짧은 단락이나 줄거리로만 접했을 것입니다. 그의 희곡은 현대인들이 읽어내기에 다소 어려운 표현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이 책은 한양대학교 연극 영화과를 졸업한 연극배우이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인 최영열님의 손을 거쳐 <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햄릿>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총 5막으로 구성된 이 책은
덴마크의 왕자 햄릿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인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슬픔에 빠진 햄릿 왕자.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작은아버지 클로디어스 왕과 사랑하는 어머니, 거트루드 왕비의 재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죽음, 어머니와 작은아버지의 배신으로 고통받던 어느 날. 햄릿 왕자는 선왕의 모습을 한 유령을 마주하게 됩니다. 유령을 통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햄릿. 자신의 아버지를 독살한 것도 모자라 형수였던 자신의 어머니를 꾀어내고, 자신의 왕위까지 빼앗은 클로디어스를 향해 복수심을 불태우지만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비극으로 끝나게 됩니다.
이 책을 읽고
읽는 내내 한편의 연극을 보고 있는 관객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엘시노아 성 안에서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한 배신감과 작은 아버지를 향한 분노에 치를 떠는 나약한 왕자의 방백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 느껴졌습니다.
쉬운 현대어를 통해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햄릿의 고통스러운 마음을 절절하게 표현하여 끝까지 쉼 없이 읽게 되더라고요. 현대어로 풀어 쓰였다고 해서 독특하고 기발한 셰익스피어의 표현방식이 퇴색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문장은 시 같고, 어떤 문장은 노래 같고. 스토리는 단순할지도 모르나 햄릿의 고뇌는 절절하기까지 했어요.
감정과 이성이 조화를 이룬다는 건 큰 복이지.
행운의 여신이 멋대로 움직이는 손가락에 맞춰 소리를 내는 피리가 아니란 얘기야.
격정의 노예가 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간직해야지
나한텐 자네가 바로 그런 사람이야.
자신의 친구이자 부하인 호레이쇼를 향한 햄릿의 대사입니다. '자네는 믿음직한 충신이네'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다니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절개가 없으면 있는 척이라도 하세요.
습관이란 괴물 같아서 악에 대한 감각을 무디게 하죠.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 독설을 내밷는 장면입니다. 햄릿의 분노가 느껴지시나요?
햄릿의 줄거리만 알고 있었을 때는 불쌍한 햄릿의 실패한 복수극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햄릿을 바라보는 시각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습니다.
가장 악인은 두말할 것도 없이 클로디어스 왕이지만, 결국 모든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햄릿 본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한 나라의 왕자라는 처지 탓에 쉽사리 복수에 나설 수는 없었겠지만, 저라면 진실을 알자마자 검을 빼들고 클로디어스 왕의 침실로 잠입했을 것 같습니다. 그럼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가 아니라 "살리느냐 죽이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 되었겠지요.
러시아의 한 소설가는 인간을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했었죠. 무슨 뜻인지 잘 몰랐는데, 오늘 책을 읽으니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우유부단한 '햄릿'을 참을 수 없는 저는 '돈키호테' 같은 인간인가 봅니다.
책 한 권으로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하게 만들다니 역시 '대문호'는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주인공 햄릿의 입장에서도 읽어보게 되고, 자식으로부터 절개를 강요받는 여인 거투르드 왕비의 입장도 생각해 보게 되네요. 오필리아의 실성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신당한 충격 때문인지, 부모를 잃은 슬픔 때문인지 등 여러 등장인물의 입장을 다각도로 곱씹어 보고 있습니다.
오늘의 독서는 밀린 숙제를 마친듯 개운함마저 주네요. 아주 만족하는 독서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맥베스도 읽어보려 합니다.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읽지는 못해도 '4대 비극'과 '5대 희극'은 올해 안에 읽어야겠다고 다짐하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