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소설이다. 나는 우아한 문장을 좋아한다. 건축이라는 소재와 삶의 연계가 신선하면서도 자연스러웠다. 무라이 사무소의 여름 별장에 다녀온 기분이다. 나의 일상은 비록 몹시도 건조하고 지루하지만 지하철에서 이 소설을 읽는 짧은 순간들은 평안했다. 마음이 고요해졌다.
역시 김금희구나, 했다. 너무 한낮의 연애.만큼 반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안심이다. 첫 번째 소설집보다 더 좋은 두 번째 소설집을 낸 작가이다. 앞으로 그녀의 소설이 기대된다. 나는 왜 소설을 좋아할까. 소설 속에는 멋지고 잘생기고 알아주는 직업에 성격도 끝내주는 그런 사람은 없다.(아, 있을 수도 있는데 적어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에는 잘 안 나온다.) 대신 찌질한 사람들, 한숨 나오는 인생들, 불쌍한 사람들, 나약하지만 약한 것만은 아닌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마치 나 같아서 그래서 읽는 것일까.
소설을 읽는 동안 인도 남부의 뜨겁고 축축한 공기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라헬이기도 했다가 에스타였다가 암무였다가 벨루타이기도 했다.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 하나같이 모두 불쌍하다. 심지어 베이비코참마까지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쩌면 이토록 안쓰러운지. 산다는 것은 이다지도 힘겨운 일인지.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채로 있을 수 없는. 그러나 그것을 그려내는 문학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어쩌면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닐까. 물론 회를 거듭할수록 늘어가는 촛불의 수를 보고 있으면 이 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닐 듯 하기도 하고.(촛불은 정말 감동이다. 세상은 변화하지 않을 것 같지만 분명 변화하고 있고, 퇴보하는 것 같지만 분명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전에 우리나라 단편 소설들을 줄기차게 읽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쩐 일인지 한동안 읽지 않았는데, 또 어쩐 일인지 최근에 한국 단편 소설집을 연달아 읽고 있다. 최근에 읽은 소설집들이 정말이지 너무 다 좋아서 그동안 이걸 안 읽고 뭐했나 싶기까지 하다. 쇼코의 미소는 실은 책의 제목도 표지도 너무 소녀스럽고 예뻐서 오히려 손에 잡히지 않았던 책이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었는데 표제작인 ‘쇼코의 미소‘뿐만 아니라 이 책에 실려 있는 모든(6편인가 7편인가) 단편들이 다 좋았다. 좋았다는 말로는 부족하지만 좋다는 말이 가장 정확한 말인것 같기도 하다. 이제 30대 초반인 이 작가의 글은 이 나이대의 시선이라고 믿기 힘든 깊이가 느껴지기도 해서 역시 작가는 다르구나, 생각되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 책에 대해 한마디로 설명해달라고 한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마디로 표현하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또 누가 실제로 물어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한마디로 해 보면 ˝아름답다˝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아름다웠다. 문학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