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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끝을 디자인하다 - 한국형(韓國型) 생전 장례식으로 만나는 나의 인생 이야기
가재산 외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26년 3월
평점 :

수년 전에 OO에게 남기는 글로 유언을 적어본 적 있다. 그날 이후로 매일을 삶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다. 그러고 나니 하루, 이틀, 3일... 금세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으며, 몇 달이 지나 한 해가 지났다. 수년째 살아간다. 사람에게 생명만큼 존중해야 할 가치는 없다. 모든 법과 질서도 생명경시에 대한 징벌이며, 단속체계로 이뤄졌다.
코로나를 정점으로 하여, 유래 불문의 허례의식의 상당 부분이 사라졌다. 처음으로 시골의 부모님들이 "이번 명절은 오지 말거라" 신신당부를 했다. 덕분에 며느리들은 허리 펼 새 없는 음식 장만의 고충에서 벗어났다. 또한 명절 때면 반복되는 결혼·취업 잔소리 후유증에서도 벗어났다. 평소에 소통·교류할 일 없는 친척들끼리 할 말 없어 때우는 고정 레퍼토리이다.

메르스가 발발했을 때, 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음 해 사촌 매형이 돌아가셨다. 삶과 죽음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 비로소 나의 역할을 실감했다. 졸업 이후 명절 때 내려가지 않았다. 나 자신에 당당할 수 있을 때 내려가리라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소중한 분들과 함께 한 추억은 까마득하게 멀어지고, 그분들은 이제 생의 순간 마주할 수 없었다.

한편으로 살아있는 순간에 왜 서로 자주 못 보고 살았을까? 의례적으로 명절 때나 집안 행사 때만 친척들을 보는 게 관례였다. 하지만 점점 생활을 찾아 수도권에 집중하니, 지방에는 같은 항렬자의 친척들만 살게 되는 형국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장례식도 간소화해지고, 모든 집안 행사의 참여 인원이 줄어들었다. 천재지변이 아닌 한, 집안 행사는 필히 참석하는 것을 도리로 여기는 우리 집 같은 특수한 경우 제외하고, 각자의 생활환경이 다변화되어갔다.

「인생의 끝을 디자인하다」 책은 깊은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은 군더더기 없이 이어져,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에 책 한 권을 모두 읽었다. 장례식을 치를 때마다 느낀 삶과 죽음에 대한 참회가 담백하게 반영되어 있기도 했다. 분명 훨씬 오래전의 삶을 멋지게 살아온 저자일 것인데, 하나의 이정표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게도 생전에 먼 길 가리지 않고, 장례식에 참석하셨던 작은 큰아버지께서 작년 제헌절 무렵에 돌아가셨다. 연락이 되지 않던 찰나에 아프시다는 비보를 듣고 본 큰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왜 난 그토록 살아계실 때 자주 뵙지 않았나? 눈물이 쏟아졌다. 며칠 뒤 돌아가신 날 장례식은 강이 범람 위기에 놓인 폭우 속에서 치러졌다.

작은 큰아버지께서는 본인이 아프시다는 것도 심려할까 봐 알리지 않고, 병원에서 몇 달 마지막 생을 이별하셨다. 어렸을 때 그 많은 친척들은 이제 고인이 되었다. 그토록 집안일 챙기시다, 본인 건강 챙기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마음은 참담했다. 친형이 떠난 순간을 목도한 아버지가 있으니, 더욱 수십 년간 고착화된 가부장적 아집을 누그러뜨려야 했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음에도, 본인이 기동성 있게 다녀올 처지가 아닌데도, 아버지는 그동안 다 못다 한 미안함 때문일까? 외골수로 나선다. 그러면 그럴수록, 남아 있는 가족들은 더욱 심란해질 수밖에 없을 것인데, 유독 재촉하신다. 대체 무엇을 위해서? 조상을 매년 기리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나, 그것을 놓고 와 가부가 할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유독 작업반장처럼 매년 벌초 시기가 다가오면, 도맡아 하는 6촌 형님을 비롯해 다른 사람들을 재촉하신다. 평소에 교류하지도 않고, 오로지 몇 대조 뿌리 깊은 산소 지기로 요청하신다. 가까이 있어 일을 거들 처지도 아니고 형편도 못 되는데, 여간 입장 난처한 게 아니다. 집안 경조사엔 빠짐없이 빚을 내서라도 가시니, 그 정도는 요구할 자격이 되시는 건가?

어렸을 때는 그렇게도 붙어 다니던 옆 동네 친척조차도,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하다. 친척들 얼굴은 장례식이나 결혼식에 가서야 온전히 보게 된다. 떠날 때의 뒷모습을 아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 언제 어느 순간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는데, 생전에 좋은 기억으로 뿌리 깊게 남게 언행일치 행동하는 게 생전 장례식의 근본이 아닐까? 한다.

'코로나'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삶의 의미와 함께 대한민국의 가치를 알게 해 준 자연의 대변혁이었다. 인류는 질병 극복을 통해 문명이 발달하는데, 저성장의 세계적 침체 상황이 코로나를 기점으로 AI로 이어지게 하는 징검다리가 되었다. 많은 죽음을 마주하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생명존중이 더해진 국면이 해소될 무렵 되니, 어떤 미친 변이가 작동되어 의료대란 같은 사태를 겪었으며, 나라의 근간을 송두리째 훼손 시도한 사태도 벌어졌다.

우리는 위대한 저력으로 빠르게 극복해나갔다. 노인의 빈곤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노인의 양극화를 논해야 한다. 평생을 고생한 노인들은 어느 정도 자식들이 안정적인 자리를 잡아가도, 본인들을 위해 소비할 줄 모른다. 안 먹고, 안 쓰고 저축만 한다. 그러다가 골병들고 나서야 각종 건강식품을 비롯하여 병원에 평생 모은 것을 헌납하고, 자식에 요구하는 물욕은 늘어난다.
있을 때 잘하는 것이 웰다잉의 기본 아닌가? 아무리 재력을 생전에 이룬 들, 그것을 주변에 베풀지 않으면 인심을 얻기 힘들고, 허망한 끝으로 귀결될 뿐이다. 묘비에 새길 때의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가 아닌, 얼마나 오랫동안 건강하고 유용한 가치로 가족과 주변에게 가치를 이어주고 떠났는가? 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평소에 본인들이 잘 쓰지도 않는 것엔 평가 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곤 혹해서 거금을 바가지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책 한 권 읽지 않는 어른이 너무 많다. 두뇌를 주기적으로 단련시키는 뇌 활동은 웰다잉을 실행해야 할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지치고 퇴행한다. 단 정신을 통해, 육체의 고통이 완화되는 순간 건강한 삶으로 개선할 여지는 많다. 요즘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미용실 가는 주기가 웬만한 젊은 층보다 짧다. 경제적 여유를 어느 정도 이뤄냈다면, 거침없이 생전에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용하는 것이 아름답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갈 때, 자랑 무용담 대신, 그 사람들을 수평 지향적인 동료로 서로 대우하면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생전에 재산 정리 잘 하는 것도, 사후의 재산 분쟁을 예방하는 지혜이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놔둬라. 하는 순간 사후의 엄청난 분쟁거리를 야기한다. 자식들이 20살 넘어 가족들과 함께 한 시간이 많을까? 낯선 곳에서 만난 동료들과 함께 한 시간이 많을까? 당연히 형제자매 남매간에 서먹한 경우가 허다할 것이고, 미주알고주알 옮겨 담는 순간 같은 사이에서도 시기 편애가 유발된다. 사람은 셋만 모여도, 적이 되기도 하고, 동지가 된다.
천천히 읽어도 좋을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여정을 준비하는 지혜를 발휘하길...
이 책 서평은 글로벌 콘텐츠 협찬, 문화충전 200 기획 제공받아, 솔직하게 읽고 작성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