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정해져 있지 않다 ∴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함이 있기에
전체적인 소설 전개는 긴박감 넘치고 생생한 묘사로 이어진다.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분명한건 독자는 충분한 예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기전 정교한 심리묘사를 통해 사전에 감정이입할 준비를 하도록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빈'관점의 여주인공만 모를 뿐이다. 많은 사랑·연애 관련 게시판에 아무리 제3자가 염려하는 반응을 보내도, 게시자는 오히려 그 반응을 '냉정하게만 여긴체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처럼...
가학적인 전개로 일관하는 막장드라마에 욕하면서도 매료되는 원리는 '권선징악'의 애처로움에서 시작된다. 더이상 주인공이 상처를 겪지 않기를 바라는 소극적인 맘에서 발전해 감정이입하면서 본인 내면에 가둬둔 감정까지 분출해낸다. 아닌걸 알면 돌아서야 하는데, "나없이는 세상은 돌아가지 않는다."는 자기기만과 환상은 사랑과 접목되면서 미련을 낳는다. 위험의 순간을 더 위험천만하게도 뛰어들어 궁지에 처하는 연약한 여주인공들을 많이 본다. 소설에서도 여지없이 잔다르크 같은 기질을 발휘 위험의 순간을 고조시킨다.
반전은 소설속에서 여성으로서의 '로빈'의 성찰 스토리에 있다. 고가의 미술재료를 탐미하고, 와인을 즐기는데 익숙한 내 남자를 방관하면서도 대신 빚을 갚아주던 그녀의 위안은 솔직히 본능적인 성의 애착밖에 없다. 어쩌면 아이가 간절했던것도 일종의 자기애착일 수 있다. 적어도 자신의 생각대로 순순히 따를 생물학적으로 나보다 약한 존재를 통해, 그동안의 상처감에 대한 자기보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했기에 출산의 기대감을 산산히 깨어버린 남편은 증오의 존재인 동시에, 어떻게 해서라도 내 존재감을 확인시켜줄 존재인 것이다. 사실 남편 폴은 절대적인 무능력함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능력범위내에서 소비지향적일 뿐이다. '저축의 미학'이 절대시되던 동양의 가치에선 낭비로 비춰지겠지만, '저축의 역설'을 제기한 서구문화권에선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계산대를 두들기던 '로빈'이 가난한 제3세계의 헐벗은 사람들에게 덤을 통해 나누는 변화를 통해 역설적으로 나누면 행복해지는 '공유경제'를 일깨워주고 있기도 하다. 단순히 그 나라의 화폐가치로 환산해 착취하는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런 가치관의 변화는 생명이 위협받는 극단적인 순간에 순수한 조력자를 발견하는 계기를 만들어가고 있다. 어떤 순간에도 자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주는 시스템이 구축된 모습을 보면서 왜 미국문화의 사조를 비판하면서도 동경할 수 밖에 없는 지를 알 수 있었다. 최선을 꾀하기 힘들다면, 실리를 찾아 노련한 셈법으로 차선의 해결을 하는 선진국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졌던 삶은 극한의 상황속에서의 냉철한 성찰을 통해 전화위복으로 승화되고 있다. 극히 저평가하던 것들이 가치를 인정받으며, 모두에게 행복한 결과물을 창출하는 순간까지 그려내고 있다. 단 미스테리한건 과연 홀연히 사라진 '폴'이 과연 뜨겁고 메마른 '사하라사막'에서 생과 이별했을까? 하는 것이다. 그동안 읽었던 책중 가장 오랜 시간 읽어본 책이다. 특히 정독의 습관상 오랜만에 밤새워 읽어봤다. 앞으로 전개될 결과값은 충분히 예상되었지만, 넘겨갈수록 세밀한 묘사가 더해져 현장에서 직접 바라보는 느낌이다. '사랑'으로 번민스럽기만 하다면, 이 책을 적극적으로 권한다. 적어도 '지혜'로서 바라보는 독서의 관점에서 적어도 이 책에 담긴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며칠간은 홀연히 책을 벗삼아, 힐링할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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